지난 4월 1일, 프랑스를 대표하는 역사가 자크 르 고프(Jacques Le Goff, 1912~2014)가 타계했다. 아날 학파의 대표주자인 그는 43년(1967~2010)간 프랑스 역사지 <아날(Annale>의 편집장을 맡기도 하는 등 93년의 생애 동안 <연옥의 탄생>, <서양 중세 문명> 등 활발한 연구와 활동을 펼쳤다. 그 중 아무도 주목하지 않던 연옥을 사회사적으로 풀어낸 <연옥의 탄생>은 아날 학파의 대표 저서로 꼽힌다. 前 한국 서양중세사 학회장 유희수(문과대 사학과) 교수의 자문을 받아 <연옥의 탄생>을 중심으로 아날학파와 자크 르 고프의 학문세계를 알아봤다.

 ‘아날 학파(Annales School)’는 1929년 이후 프랑스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사학 연구의 한 지파다. ‘아날’이라는 명칭은 1929년 마르크 블로크(Marc Bloch), 뤼시엥 페브르(Lucien Febvre) 등이 결합해 만든 연구지 <아날(Annale)>에서 비롯됐다. 이들은 기존 고전주의, 낭만주의적 역사관을 거부하고 새로운 지평, 연구방식을 지닌 사학 연구를 주창한다.
 블로크와 페브르를 중심으로 한 ‘아날 1세대’는 △전통 역사학의 탈피 △공동연구의 확대를 통한 학문의 개방성을 학문의 중심으로 삼았다. 정치사, 외교사, 제왕 중심의 역사 연구가 중심이 된 전통 역사학을 거부한 아날 학파는 연구의 눈을 ‘인간’으로 돌렸다. 인간으로서 살고 느끼며 행동하는 모든 생활양식에 초점을 맞춘 이들은 인간의 삶의 양식을 이해하기 위해 학문 분과를 파괴하는 초학제 연구를 강조했다. 이를 위해 아날 1세대는 공동연구를 통한 학문적 개방성을 학문연구의 기본 자세로 삼았다. 유 교수는 “아날학파는 사회학, 심리학, 인류학 등 인문사회의 모든 분야를 역사학에 도입해야 한다는 자세로 연구를 지속했다”고 말했다.
 1956년 뤼시엥 페브르의 사후 페르낭 브로델(Fernad Braudel)이 <아날>지의 편집장을 맡아 아날 2세대를 개창한다. 아날 2세대는 인간의 행동, 사고 양식을 형성하는 구조에 초점은 맞추는 연구를 중점적으로 진행했다. 브로델은 1967년까지 <아날>을 이끌었고 1967년 자크 르 고프에게 편집장 자리를 넘겨준 후 <아날>을 떠난다.     
 이후 자크 르 고프는 공동 편집위원 체제를 통해 2010년 말까지 43년간 <아날>의 편집장을 맡아 아날 학파의 대표주자로 자리매김한다. 그가 개창한 아날 3세대는 다양한 특징을 가지고 있지만, 대체로 1세대로 회귀하려는 특징을 보인다. 자크 르 고프의 경우 ‘심성(心性) 사학자’로 불리는데 이는 그가 인간의 심성. 즉,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행동양식과 그것이 만들어내는 권력관계, 사회관계 등을 중심으로 연구를 진행했기 때문이다.
아날학파의 연구 대상은 하나로 좁히긴 힘들지만 연구는 주로 중세사를 중심으로 이뤄졌으며 그 중에서 르 고프는 <연옥의 탄생> 등을 통해 중세 크리스트교 사회의 연옥의 탄생을 설명했다.

 ‘만들어진’ 연옥
 르 고프는 <연옥의 탄생>을 통해 연옥이 등장하게 된 사회사적 원인을 분석한다. 연옥은 성경에 등장하지 않는다. 성경적 근거가 없는 연옥은 12세기 경 사회적 변화의 산물이었다. 유 교수는 연옥 이전을 ‘양극화 된 세계’라고 설명했다. 르 고프에 따르면, 양극화 된 세계에서 사후 세계는 저승과 이승으로만 나뉘어진 세계였다. 변화가 생긴 것은 12세기부터였다. 12세기 상업과 도시의 발달로 인해 직업들이 다양해지고, 교류가 활성화 되면서 더 이상 양극화 된 단순한 사후 세계관으로는 사람들의 다양성을 수용할 수 없게 됐다. 사고방식에 있어서도 사람들의 다양성을 고려하는 사고방식이 유행하게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도덕적 잣대에 대한 변화가 일어난다. 12세기 이전에 사람들이 행위에 대한 결과만을 가지고 판단을 했다면, 12세기 들어 여러 가지 상황을 고려해 도덕적 판단을 내리는 새로운 방식의 도덕적 잣대가 등장하는 것이다. 유 교수는 이를 ‘사례윤리학’이라고 칭했다. 사례윤리학에 대해 유 교수는 “행위를 한 사람의 신분, 나이 등부터 시작해 의도와 기타 모든 것들을 고려한 다음에 행동에 대한 신중한 도덕적 판단을 내리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사례윤리학의 발달은 연옥의 탄생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르 고프는 아우구스티누스의 구분을 제시한다. 신학자 아우구스티누스는 인간을 ‘매우 착함(very good)’, ‘착함(good)’, ‘나쁨(bad)’, ‘매우 나쁨(very bad)’의 네 가지 범주로 나누었다. 이 중 ‘매우 착함’과 ‘매우 나쁨’은 각각 사후에 천국과 지옥으로 보내졌으나 ‘착함’과 ‘나쁨’. 즉, 천국도 지옥도 가기 애매모호한 사람들이 갈 사후세계와 도덕적 판단이 12세기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12세기 이후 사례윤리학이 발달하면서 이 같은 ‘애매한’ 사람들을 수용할 도덕적 판단의 잣대가 생겨났고 이에 따른 사후세계의 지형도 역시 생겨났다는 것이다.
 연옥이 갑작스럽게 받아들여지진 않았다. 12세기 연옥이 탄생할 당시 연옥은 일부 성직자와 도시에만 적용되는 개념이었을 뿐, 두메 산골 등에는 아직 연옥의 영향이 미치지 않았다 이를테면 오늘날 유일하게 기록이 남아있는 프랑스 중세 산골 마을인 ‘몽타이유’의 주민들은 연옥의 존재를 알지 못했다.
 16세기 종교 개혁 시기엔 루터는 성경적 근거가 없다는 이유로 연옥 신앙을 거부했으며 오늘날까지도 개신교는 연옥을 거부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르 고프는 연옥이라는 단어의 등장에 초점을 둔다. 연옥이 등장하기 전 라틴어 단어 ‘Purgatorium’은 ‘정화’를 의미했다. 이후 1380년대 연옥신앙이 등장하면서 ‘Purgatorium’에 시간과 공간의 의미가 부여됐고, ‘정화하는 장소’. 즉 연옥이라는 단어로 의미가 바뀌었다. 유 교수는 호칭과 의미를 동일시 했던 중세의 상황에서 단어의 탄생 자체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설명했다. 그는 “중세인들은 병을 치료할 때 병명을 부르기만 하면 치료가 된다고 믿었다”며 “말은 곧 사물이었기 때문에 연옥이라는 말이 나타난 것은 연옥이라는 공간의 등장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연옥은 어떤 장소였을까. 르 고프는 “연옥의 이미지는 지옥에 가까웠지만 오히려 천국을 바라는 열망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말했다. 천국도 지옥도 가기 애매한 사람들이 사후 연옥으로 가게 되면, 그들은 지옥의 불로 지금까지 지은 크고 작은 죄들에 대한 정화를 받는다. 이 때 영혼은 지옥과 흡사한 고통을 받게 되 연옥의 이미지는 지옥에 가깝지만, 오히려 남아있는 벌들을 제거하고 천국으로 갈 수 있다는 점에서 연옥은 희망의 공간인 것이다. 이것을 인식한 로마 교황청은 연옥 신앙을 받아들이고 이후 연옥에서 받을 벌을 줄여주는 면벌부 판매를 실시하기도 했다.

 르 고프 학문세계의 의의
 르 고프는 평생에 걸쳐 중세의 복권을 시도했다. 이전 서양 사학계에서는 중세에 대한 지나친 혹평 또는 미화만 존재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르네상스 시기 계몽주의 사학은 중세를 암흑시대로 간주했고 이후 낭만주의 사학은 중세를 미화하며 중세를 황금시대라 칭했다. 르 고프는 이 같은 가치판단을 거부하고 있는 그대로의 중세를 보고자 노력했다. 유 교수는 “르 고프가 추구했던 것은 그저 중세인들이 실제로 어떻게 살았느냐에 대한 것”이라며 “그는 중세에 근대적 태동이 있었음을 인정하지만, 그렇다고 기근과 폭력 등 중세의 어두운 측면을 부정하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학문적 업적 이외에도 르 고프는 조르주 뒤비, 움베르토 에코와 함께 서양 중세사를 대중화시킨 대중 저술가로도 유명하다. 또한 학문적 개방성을 주 목적으로 하는 아날학파의 특성을 확대시켜, 역사학 전체의 학문적 소통을 진작시켰다는 평가를 듣는다. 유 교수는 “1992년 르 고프의 초청을 받아 프랑스로 세미나를 갔을 때, 그에게서 가장 크게 느껴지던 것은 개방성이었다”며 “43년간 <아날>을 공동연구체계로 이끌어온 점과 새로운 연구 의제를 던지는 천재성을 지니고 사학연구의 지평을 넓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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