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가장 핫한 음악 장르를 꼽자면? 단연, 힙합이다. 신사에서나 홍대에서나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는 비트와 함께 힙합이 흘러 나온다. 대중음악으로 자리 잡은 힙합은 음악 장르에 그치지 않고 먹거리로, 패션으로, 학문으로 젊은 세대에게 스며들고 있다. 힙합이 삶을 향유하는 하나의 태도이자 방법이 된 것이다.

 

▲ 종로구 혜화동에 위치한 '아워 프레임'에선 올드 힙합을 들으며 쉬림프와 파스타를 즐길 수 있다. 사진|김주성, 심동일 기자 press@

 

힙합, 청년의 문화가 되다
  혜화동 로터리의 골목길에 위치한 어느 식당에는 힙합이 끊임없이 흘러나오고, 홀에는 미러볼이 반짝인다. 박성훈(남·33) 씨가 운영하는 힙합 식당 아워프레임이다. 어렸을 때부터 힙합에 매료됐던 박 씨는 4년 전 힙합을 메인 컨셉으로 삼아 새우요리 전문점을 차렸다. 전공이 요리였던 그는 자신이 줄곧 좋아했던 힙합과 요리를 더해 힙합 식당이라는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 냈다. 박 씨는 “최근 힙합이 유행하면서 힙합 커뮤니티에도 가게가 점점 알려지기 시작했다”며 “힙합을 좋아하는 학생들과 20대 중후반의 손님들이 많이 찾아준다”고 말했다.

  합정역 7번 출구에서 10분 거리 Coffee Workers는 보기 드문 힙합 카페다. 카페 내부에는 강렬한 색상의 그래피티가 군데군데 그려져 있고, 1층에는 보드를 탈 수 있는 보드장이 있다. 힙합과 스트리트 컬쳐를 좋아해 손수 카페를 꾸민 한경탁(남·34) 씨는 올드 힙합부터 블랙 뮤직까지 다양한 뮤직 리스트를 손님들에게 선보인다. 그는 “카페의 분위기가 거칠고 어수선한 탓에 일반 손님들에게는 조금 호불호가 갈리기도 하지만, 음악을 듣기 위해 이곳을 찾는 손님도 많다”고 말했다.

  힙합을 전공하기 위해 학교를 찾는 이들도 늘고 있다. 국제예술대 실용음악학과 힙합 전공에서는 힙합의 주요 요소인 랩 스킬과 디제잉, 힙합의 변천사 등에 대해 가르친다. 힙합 전공의 교수를 맡고 있는 가리온의 멤버 나찰 씨는 “쇼미 더 머니 이후 힙합을 배우기 위한 수강생이 많이 늘었고, 힙합에 대한 주변의 인식도 많이 달라졌다”며 “힙합이 대중음악으로 자리 잡아가며 그에 적합한 창의적인 뮤지션을 양성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 지난 25일 홍대 프리즘 홀에선 대힙연의 연합공연이 진행됐다. 본교 흑인음악동아리 TERRA를 포함한 28개의 동아리가 순차적으로 공연을 펼쳤다. 사진|김주성, 심동일 기자 press@

 

힙합, 청년의 놀이가 되다
  2014년에는 본교 힙합동아리 TERRA(회장=김완수)와 연세대 힙합동아리 R.Y.U(회장=전유탁) 간의 사이퍼 영상이 화제를 모았다. 사이퍼란 하나의 비트를 정해두고 래퍼들이 순차적으로 나와 랩을 펼치는 것으로, 래퍼 개인의 역량을 뽐내기에 적합하다. 두 힙합동아리의 사이퍼 영상은 본교와 연세대 동아리연합회에서 진행한 ‘문화정기전’ 행사에서 사용된 작품으로 발표 당시 SNS와 유튜브를 통해 퍼지며 많은 관심을 받았다.

  작년까지 문화정기전은 외부 콘텐츠 회사의 지원을 받아 왔지만, 담당 직원이 퇴사하면서 올해는 각 동아리가 자체적으로 준비하고 있다. 김완수 TERRA 회장은 “작년까지만 해도 사이퍼는 상대를 디스하는 내용으로 빈틈없이 채웠지만, 올해는 힙합 트렌드에 맞춰 느긋하고 거만한 느낌으로 영상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25일에는 대학교힙합동아리연합회(회장=김원중, 대힙연)에서 진행한 연합공연 ‘Watch Ya Bakk’이 홍대 프리즘 홀에서 진행됐다. 올해로 17주년을 맞는 대힙연은 수도권 대학교 힙합 동아리 30개가 가입된 연합회다. 대힙연 김원중 회장은 “대힙연은 힙합 문화를 즐기고 좋아하는 대학생들이 모여 친목을 도모하고, 함께 공연도 만들기 위해 설립됐다”며 “공연과 더불어 힙합 문화가 가져야 할 지향점에 대해서도 서로 공유하고 있다”고 말했다.


힙합, 청년의 목소리가 되다
  젊은 세대가 이처럼 힙합에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힌트는 성공한 랩스타 도끼(Dok2)의 가사에서 찾아 볼 수 있다. ‘내가 번 돈으로 가족들 이사를 갔네 파산했던 우리 집에 쌓인 빚을 깠네, 우리 엄만 내게 억 단위 연봉을 받네 우리 아빤 팔엔 나와 같은 시곌 찼네.’ 도끼가 쓴 <111%>의 한 소절이다. 그는 자신의 곡들을 통해 컨테이너 박스에서 살 정도로 가난했지만, 지금은 자동차 한 대 값 보다 비싼 시계를 차고 있음을 자랑한다. 그리고 가난 속에서 스스로의 능력으로 자수성가를 이뤄낸 그의 성공 스토리에 젊은이들은 열광한다.

  이러한 현상을 보며 대중음악 전문매체 음악취향Y 조일동 편집장은 힙합이 청년의 목소리를 대신 전해주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IMF 이후 빈부 격차가 커지면서 백인과 흑인 간의 인종적 차별처럼 한국에서도 자본에 의한 계급차가 생기기 시작했다”며 “차별과 무시가 팽배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물질적 욕망을 거리낌 없이 드러내는 힙합은 젊은 세대의 답답한 마음을 대신 터뜨려 준 것”이라 말했다. 힙합은 고난을 극복하고 스스로 빚은 성공을 노래한다. 더 큰 목소리로 자랑하고 외친다. 젊은 세대가 힙합 문화에 매료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저작권자 © 고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