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누군가의 말을 쉽게 믿으며 귀 기울일 수 없게 됐다. 누구의 말을 듣기보다는 자기 자신만을 믿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환경이 만들어진 것이다. ‘꼰대’ 우리 사회에 언제부턴가 만연하게 사용되고 있는 단어이다. 우리는 현재 많은 꼰대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 흔히 ‘꼰대질’이란 ‘자신의 경험을 일반화해서 남에게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것’이라 정의된다. 여기서 듣는 이가 ‘상대방은 꼰대다’라고 느끼는 것의 핵심 부분은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것’이다. 상대방에 일방적으로 무언가를 강요한다면 상대방은 쉽게 반감이 들 수 있다.

  꼰대의 또 다른 대표적 특성은 자기 자신의 주장만을 고집하고 남의 얘기를 들으려 하지 않는 것이다. 과거에 내가 맞았다고 느낀 것이 현재에도 맞아떨어질 것이기에 ‘넌 내 얘기를 귀담아들어야 해!’ 듣는 이는 ‘과거는 과거고 현재는 현재인데 왜 지금 와서 과거 얘기를 얘기하는가’라 느낄 수 있다. 이러한 특성들이 속으로라도 상대방에게 ‘꼰대’란 생각을 심어주는 것들이지 않냐 묻는다면, 동의한다. 하지만 우린 앞선 경험자 혹은 인생의 선배를 꼰대와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 과거로 거슬러 얘기가 시작된다 해서 미리 짐작 ‘꼰대 짓’이라 판단하지 말아야 한다. 우린 어느새 과거와 현재의 차이를 인정하는 열린 선배들의 조언과 소소하게 재밌는 과거 이야기를 듣게 되지 못할 수 있다.

  꼰대는 ‘선생’을 비하하는 은어로도 사용된다. 초등학교 선생님을 하고 있는 동창 친구는 얼마 전 자신의 제자가 꼰대라는 단어를 쓰는 것에 놀람을 금치 못했다. 종례시간에 들어온 친구는 자신의 반 학생들에게 과거 자신의 학창시절을 얘기하며 “선생님은 어렸을 때 재밌는 추억거리가 없었던 것 같아. 선생님으로서 공부를 열심히 하라는 말도 중요하지만, 공부 이외에 너희가 좋아하는 일을 하나씩이라도 해봤으면 해 …” 진심 어린 한 선생의 조언에 대한 한 학생의 답은 잔인했다. “아. 역시 꼰대 같이 얘기하네.” 조언이 꼰대 짓이 됐다. 그 이후 친구는 누군가의 행동이 꼰대로 느껴져 피곤한 것보다 누군가가 자신을 꼰대라고 느낄 수 있다는 것에 슬펐다고 고백했다.

  꼭 상대방만 꼰대가 된다는 생각은 버려라. 우리도 꼰대가 될 수 있다. 만약 당신이 누군가에게 진심 어린 조언을 하려 하는 데 “꼰대처럼 그런 말 하지 마”의 말이나 불편한 반응을 보이며 귀찮아하는 태도를 봤을 때를 생각해보라. 다시 그에게 조언이나 옛이야기를 꺼내기가 두려워질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꼰대는 이렇다. ‘우리가 이만큼 고생했기에 너희도 고생해야 돼’가 아니라 ‘우리가 이렇게 고생을 했는데 고생한 만큼 너희가 나아졌으니 다행이다.’ 예전의 경험담의 시작이 곧 꼰대 짓의 예고편은 아니다. 도리어 지금 가장 두려운 건 훌륭한 선배들이 자신을 꼰대라 여길까 두려워 섣부르게 조언과 경험담을 꺼낼 수 없다는 것이다.

 

저작권자 © 고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