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평윤씨 모자 미라 및 출토유물전이 2003년 11월 7일부터 11월 22일 까지 2주간 본교 박물관에서 개최되었다. 이 전시회는 세계에서 매우 드물게 분만 중 사망한 모자 미라라는 점 뿐 아니라, 조선시대 최고의 명문가 중 하나인 파평윤씨 집안의 호화로움을 얘기해 주는 다양한 부장품과 함께, 미라가 발생하기 어려운 한국적인 상황에서 미라의 생성기전을 밝힐 수 있는 소견과 당시의 식생활들을 엿볼 수 있는 여러 가지 자료들이 제공되어 매스컴에 대대적으로 보도되었다.

그래서 그런지 연일 많은 사람들이 관람을 하였다. 비록 2주간이라는 짧은 기간이었지만 모두 21,105명이라는 많은 관람객들이 구경하였으며, 특히 마지막 날은 3,980명이 다녀갈 정도로 성황리에 마치게 되었다. 이는 대학 박물관 관람기록 통계상 최고의 숫자를 기록하였음을 의미한다.

 일년 동안 미라에 대한 최첨단의 의학적인 연구가 진행되었는데, 부검을 통한 사망원인의 확인, 조직검사와 미세구조에 대한 연구, 독물학적 검사, 연령 추정, 유전자검사, 다양한 방사선적 검사를 통한 3차원 복원, 체질인류학적 계측 및 미라의 보관처리 등은 본교 의과대학의 많은 교수들과 직원 뿐 아니라 의과대학생들이 성심껏 도와주었기 때문에 가능하였다.

이와 함께 파평윤씨 모자 미라의 가계도에 대한 조사, 부장된 언간에 대한 어문학적 연구, 출토지역 토양 및 회곽에 대한 물리적 화학적 특성 연구, 출토 목관재의 수종에 관한 연구, 16세기 출토 복식에 대한 새로운 접근과 복원도 시도되었다. 본교에서는 처음으로 의학 분야 뿐 아니라 인문학, 자연과학 및 출토복식 분야 등의 모든 전문가들이 대거 참가하여 학제간 연구를 진행하였다는 점에서도 세인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이렇게 파평윤씨 모자 미라를 분석하는데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한 것은 바로 홑바지 한쪽 허리끈에 먹으로 써있는 “병인윤시월”이라는 글귀이다. 이 다섯 자에 불과한 간단한 글귀를 통해 우리는 윤시월이 낀 병인년은 1566년 하나밖에 없다는 것을 알게 되어 미라의 신분을 추적할 수 있었을 뿐 아니라, 윤시월이 12월경에 해당되기 때문에 추운 겨울에 사망한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그래서 사망 후 초기 부패가 더디게 진행되었고 3개월이나 되는 긴 장례기간에도 불구하고 시신이 보존되었다는 사실을 유추해 낼 수 있었던 것이다. 여기에 미라가 매장되었던 지질의 특성, 독특한 회곽구조로 인한 공기의 차단효과, 견고한 이중 목관, 관속을 빽빽이 채운 많은 부장품으로 인한 공기의 희소성, 부패균의 증식과 관련된 소견들의 관찰 등으로 인해 미라 발생에 대한 가설을 세우고 입증하는 것이 가능케 된 것이다.

실로 “병인윤시월”은 430년이라는 긴 시공을 연결시켜주는 열쇠의 역할을 하였으며 모든 관찰소견들을 상호 유기적으로 묶어주는 단서를 제공한 것이다. 그래서 이번 전시회의 제목을 “병인윤시월”로 정하게 되었다.

 미라에서 장내용물에 대한 분석은 여러 가지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 알프스에서 발견된 5300년 된 유명한 동결 미라인 ‘Tyrolean Iceman’은 장에서 꽃가루가 관찰되어 사망시기를 봄으로 추정할 수 있었고, 2000년 된 중국의 미라인 ‘마왕퇴의 귀부인’은 위와 내장에서 참외씨가 발견되어 사망시기가 여름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너무나 유명한 일화이다.

그러나 파평윤씨 모자 미라의 장에서 관찰된 꽃가루는 사망시기와는 관련이 없다. 왜냐하면 사망시기는 윤시월이라 꽃이 피는 시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더구나 여러 종류의 꽃가루가 관찰되었기 때문에 꽃가루의 복합체로서 꿀을 생각하게 된 것이다. 결국 꿀은 임신이나 출산과 관련된 영양식이었거나 약품의 일종이었을 것이다.

 이렇듯 아무리 단순한 소견이라 할지라도 그 의미를 기초부터 차근차근 분석해 들어가면 우리는 미라가 전하는 오래된 과거의 의미를 시공을 초월하여 풀어나가는 것이 가능하다. 그래서 미라를 분석하고 연구한다는 것은 마치 탐정이 단서를 하나하나 찾아가면서 사건을 풀어가는 것처럼 흥미가 있다.

미라는 단순히 오래 보존된 시체가 아니라 수백 또는 수천년 전의 정보를 간직한 생명체이다. 이 정보를 해독하고 이해하기 위해서는 현대과학의 최첨단 분석방법과 함께 당시의 생활상, 심지어 장례풍습 까지도 이해해야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의학, 자연과학 및 인문과학의 체계적이고 종합적인 연구를 시행하여야 한다. 앞으로 더 많은 미라연구가 활발하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본교 미라연구소가 설립되기를 바라는 바이다.

김한겸(의과대 교수, 병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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