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를 통해 부안군의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접해서인지 서울에서 부안으로 향하는 길은 긴장감이 지배하고 있었다. 하지만 오전시간대 여서 그런지 부안읍에 도착한 뒤 본 것은 치열한 시위의 현장의 뒷모습이 아닌 평범한 읍내의 모습이었다.

그러나 그 가운데서도 차량들과 상점 곳곳에 걸린 핵폐기장 반대 메시지를 담은 노란색 깃발과 스티커, 그리고 주요지점에 배치된 전경들의 모습에서 긴장감을 간접적으로 엿볼 수 있었다. 또한 부안군에서 만난 사람들 모두 핵의 위험성과 함께 부안군민을 무조건 나쁘게 표현한 잘못된 언론보도에 대해 아쉬움을 나타냈다.

처음 찾아간 부안성당은 오후에 있을 선전전 준비로 다들 분주했다. 프레스카드가 필요해 발급받는 간단한 절차를 마친 뒤 부안읍의 모습을 보기 위해 나섰다.

부안읍에서 찾아간 곳은 부안수협 앞에서 2주일 넘게 단식투쟁을 하고 있는 문규현 신부였다.

대학생 기자라고 신분을 밝히자 문 신부는 요즘 대학생들이 예전과 다르게 사회문제에 무관심하다며 대뜸 화를 냈다. 그리고 자신이 단식투쟁을 하는 것보다는 부안군민들의 실제 모습을 거짓없이 그대로 말해 주라고 당부했다. “지금은 경찰 때문에 주민들의 기본적인 생계에도 영향이 많아. 시장이나 사람이 다닐만한 곳에는 웬만큼 경찰들이 다 배치되어 있으니 사람들이 살수가 없다”고 토로했다.

또 그는 “주민들의 시위를 무조건 폭력으로 치부하고, 폭도로 몰아가고 있다”며 “농민이 농기구를 차에 싣고 가도 불법집회 도구로 취급하기도 한다”고 했다. 그리고 자신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 뿐이라며 처절한 부안군민들의 모습을 직접 다니면서 볼 것을 부탁했다.

대부분의 부안주민들은 핵폐기장을 반대한다는 이야기와, 정부의 에너지 정책, 그리고 계엄분위기를 연출하는 전경들에 대한 비판을 늘어놓았다.

상서면을 찾았을 때는 이러한 주민들의 분노가 곳곳에 표현돼 있었다. 추석 직전에 귀성객들이 찾아온다는 이유로 핵폐기장 반대와 관련된 플래카드와 홍보물들이 모두 강제철거 당하자 벽과 도로에 페인트로 핵폐기장 반대 메시지를 칠해 놓았기 때문이었다.

상서면 입구에 도착하자 노란바탕에 김종규 부안군수와 노무현 정권에 대한 적나라한 욕설을 칠한 벽이 길옆으로 늘어져 있었다. 하지만 며칠 전 그 위에 새로 페인트를 덧칠해서 지금은 대부분 지워진 상태였다. 다만 도로와 벽 일부에 남아 있는 메시지는 부안군민들의 분노를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상서면으로 가는 길에서 만난 택시기사 서정기 씨는 “가는 길에 보면 알겠지만, 지금 전경들이 읍내로 향하는 길목에서 시위용품을 색출하기 위해 차량들을 일일이 검문하고 있는데, 완전히 사람들이 읍내로 모이는 것을 막는 것이나 다름없는 겁니다”고 말했다. 실제로 주요 길목마다 전경들이 차량들을 하나하나 검사하고 있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상서면에서도 보건소를 비롯해서 주요 관공서에 전경들이 배치돼 삼엄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농약을 판매하는 한 상인은 “여기는 노인들이 대부분인데도 저렇게 경비를 하고 있으니 완전 80년 광주사태도 아니고 이게 뭐냐”며 “나이드신 분들이 보건소에 가려해도 전경들이 있으니깐 왠지 꺼림칙하게 느끼고 있어 제대로 가지도 못한다”고 하소연했다.

다시 찾은 부안성당에는 저녁때의 촛불집회 준비와 다른 언론사들의 취재가 한창이었다. 그 와중에 촛불집회의 음향을 담당하는 김병국씨가 고대에서의 추억을 되새기며 말을 걸어왔다. 80년대 민주화 운동시절에  대학교에서 숙식을 해결했던 추억으로 운을 뗀 그는 이내 핵폐기장과 관련된 외부의 따가운 시선에 대해 아쉬움을 토로했다.

“핵폐기장을 부안만의 문제로 보고 우리들의 행동을 님비현상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쉽다”며 “체르노빌 사건의 경우 1천키로 넘게 떨어진 곳에서도 피해가 있었는데, 우리나라에 폐기장 뿐만 아니라 원자력 발전소가 하나라도 사고가 일어난다면 그 피해는 어떻겠느냐”고 했다.

또한 1백일 넘게 사태가 지속되면서 지금 웬만한 부안사람들은 원자력이 가지는 위험에 대한 지식을 다들 갖고 있기 때문에 막연한 두려움에 반대하는 것은 절대 아니라고 했다. 그는 “프랑스나 대만 등 다른 나라에서는 이미 원자력의 위험성을 알고 다른 대체에너지로 전환하려 하는데 유독 우리나라만 원자력을 고집하고 있다” 며 부안군민들은 이제 핵폐기장 뿐만 아니라 원자력 위주로 가는 정부의 에너지 정책에 대해서도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어 김 씨는 병원에 입원한 사람들을 한번 보지 않겠느냐며 부안성모병원으로 기자를 데리고 갔다. 가는 길에 그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려줬다. 아들이 전경으로 가게 되면 탈영하라고 말하고 싶다는 말부터 촛불집회가 주민들의 격한 마음을 그나마 가라앉혀 주고 있다는 말까지.

이내 도착한 병원에는 시위 중에 전경과 충돌해서 다친 사람들이 입원해 있었다. 김 씨가 “기자들이 하도 많이 몰려오니깐 입원한 사람들이 기자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했던 것처럼 입원한 사람들은 들어서자마자 화를 냈다. “싸우면서 피터지고 할 때는 오지도 않더니만, 잠잠하니깐 다들 몰려오고. 뭐하는 거냐”며 기자들에 대한 불만을 쏟아냈다. 입원한 사람들은 도움이 필요할 때는 무관심하다가 일이 터진 뒤에 뒤늦게 관심을 가지는 것에 대해 아쉬워하는 듯 했다.

열흘 가까이 입원한 사람들을 잠시 둘러보고 다시 성당으로 돌아가는 길에 김 씨는 “다친 사람들이 웬만큼 움직일만 하면 다시 병원을 나와 집회에 참가한다”며 주변의 생업을 제쳐놓고 몸도 상한 동료들을 걱정하고 있었다.

성당에서 다시 만난 사람은 대책위에서 일하는 김희정 씨. 그는 정부가 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의 잘못을 시인하고도 바로잡는 것에는 발을 빼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정부가 TV나 일간지 등에 수십억을 들여 광고를 하고도 홍보가 부족하다며 주민투표를 반대하고 나서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이렇게 정부가 질질 끌다보니 주민들의 분노가 지난 19일에 폭발한 것인데, 그 뒤로는 아예 모이는 것 자체가 원천봉쇄되고 있다”고 했다. 이어 “전국민을 상대로 하는 국민투표는 2개월안에 준비할 수 있다고 하고선, 부안군에서만 하는 주민투표는 8개월 이상이나 걸린다는 것이 말이냐 되냐”면서 정부의 안일한 자세에 대해 비판했다.

핵폐기장이 주민들의 생계에 어떤 영향이 있냐고 묻자 김 씨는 “만약에 방사능이 누출되면 바다에 스며들어 주변의 환경이 오염되는 것은 뻔한 것인 데다, 사고가 안나더라도 방폐장이 있다는 인식이 사람들에게 퍼져 부안에서 생산되는 물건을 누가 먹겠느냐”고 했다. 이어 새만금 때도 그랬지만 주민들은 단순히 주민들에게 경제적 혜택이 돌아가는 것 보다는 자연 그대로의 모습으로 일하고 싶어한다고 했다.

저녁 7시 30분. 비가 조금씩 내리는 가운데서도 부안성당에서 125일째 촛불집회가 열렸다. 비가 왔지만 어린이들에서 나이든 노인들까지 수백명의 부안군민들이 하나둘 모여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촛불집회를 진행했다. 촛불집회는 서로를 걱정하는 말과, 앞으로의 투쟁의지를 다지는 자리로 진행됐다. 수백명이었지만 그들이 지르는 함성은 핵폐기장 건설을 반대하는 마음을 널리 전달하려는 듯 수천명이 모인 것처럼 크게 울려퍼졌다.

집회가 끝난 뒤 부안읍내로 내려오는 길에서는 사람을 찾기 힘들었다. 해가 진뒤 부안읍에서 볼 수 있는 것은 전경들뿐이었다. 전경들이 양쪽 인도를 가득메워 간혹 지나가는 사람들도 차도로 지나갈 정도였다. 끝없이 길게 늘어진 새까만 전경들이 읍내의 분위기를 장악하고 있었다. 상점들도 대부분 7시가 넘으면서 문을 닫아버려 대부분 불이 꺼져있었다. 그야말로 부안의 밤은 경찰들만이 살아있는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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