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류세평] 임효준의 귀화와 스포츠 민족주의
[탁류세평] 임효준의 귀화와 스포츠 민족주의
  • 고대신문
  • 승인 2021.03.28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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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성옥 문화스포츠대 교수·국제스포츠학부

  추성훈이 격투기 선수로 변신하기 전까지 유도복을 입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남자유도 81급에 일본 대표로 출전했던 그는 결승에서 만난 한국의 안동진을 꺾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재일교포 3세로 전국체전에 출전했던 아버지의 뜻에 따라 그는 유도복 가슴팍에 태극기를 달기 위해 19984월 현해탄을 건넜다. 3년 넘게 할아버지의 나라에서 구슬땀을 흘렸지만 허사였다.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번번이 좌절을 맛봤던 그는 2001년 전국체전 우승 뒤 일본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아버지가 지어준 추성훈이란 이름을 버리고 아키야마 요시히로라는 낯선 이름과 함께 일장기를 달고 아시안게임 무대에 올랐다. 당시 언론은 특정 대학 출신이 독식하는 한국 유도계의 병폐가 한 핏줄인 그를 받아들이지 못했다고 질타했다. 하지만 정작 추성훈은 아시안게임을 마친 뒤 인터뷰에서 자율적이지 못한 한국의 유도 문화가 나와 맞지 않아 귀화했다고 털어놨다. 좀 더 나은 환경을 찾아 일본으로 귀화한 그를 비난하는 사람은 지금도 찾아보기 어렵다.

  2014년 러시아 소치에서 열렸던 동계올림픽 쇼트트랙에서 낯익은 러시아 선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전통적인 금맥이었던 쇼트트랙 링크를 휩쓰는 그의 활약상은 한국 스포츠계를 충격에 빠뜨렸다. 한때 안현수라는 이름으로 한국 쇼트트랙을 이끌던 빅토르 안은 이 대회에서 금메달 3개와 동메달 1개를 새로운 조국에 바쳤다. 한국 대표로 출전했던 2006년 토리노 동계올림픽에서도 금 3개와 동 1개를 목에 걸었던 그는 부상과 소속팀 해체로 국내에서 선수 생활을 지속하기 어려운 상황에 몰렸다. 더구나 국내 쇼트트랙은 대표팀 선발이 올림픽 메달보다 어렵다는 말이 나올 만큼 유망주가 수두룩했다. 나이까지 적잖은 그를 빙상계는 퇴물 취급했다. 동계올림픽을 자국에서 개최하는 러시아의 구애는 집요했다. 그는 결국 2011년 여름 귀화를 결정했다. 매달 지급됐던 올림픽 메달리스트 연금을 일시불로 받는 등 귀화를 비밀리에 준비했던 과정이 나중에 알려져 거센 비난이 일었다. 소치올림픽 당시 그는 경기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에서 운동하고 싶어 귀화를 결심했다고 밝혔다. 약물 파동의 여파로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출전이 좌절됐던 그의 러시아 생활은 그리 만족스럽지 못했다는 후문이다. 한때 한국 국적을 회복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지만 이미 돌아선 국내 여론은 그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평창 동계올림픽 쇼트트랙에서 금메달과 동메달을 한 개씩 따냈던 임효준이 중국으로 귀화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한국 스포츠계가 다시 발칵 뒤집혔다. 그의 귀화 파문은 20196월 진천선수촌 실내 암벽훈련 도중 벌어진 사건이 진원지였다. 장난기가 발동한 그는 암벽을 타던 후배 선수의 바지를 벗겼다. 신체 일부가 노출된 피해 선수는 추행으로 임효준을 고발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피해 선수 역시 다른 선수의 신체 부위를 만지는 등 당시 훈련 분위기는 자유로운 수준을 넘어 다소 문란했다고 한다. 어쨌든 이 사건으로 대한빙상경기연맹으로부터 자격정지 1년 징계를 받았던 그는 지난해 51심 재판부로부터도 벌금 300만 원을 선고받았다. 꼼짝없이 성추행 범죄자로 낙인이 찍힐 판이었다. 소속팀 훈련 명단에서 제외되고 코로나 팬더믹까지 겹쳐 1년 가까이 쉬었던 그는 한국에서 운동을 지속할 수 없다고 판단한 듯싶다. 1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자 한 달 만에 중국으로 귀화했다. 지난해 112심 재판부는 그에게 무죄를 선고했지만, 검찰이 상고해 대법원의 최종 판결이 남아있는 상태이다. ‘안현수 트라우마가 생생한 탓인지 현재까지 임효준에 대한 여론은 지나치게 부정적이다.

 

  메가 이벤트를 앞두고 우수 선수를 확보하려는 여러 나라의 노력이 선수들의 귀화를 부추긴다. 우리도 평창 동계올림픽을 앞두고 15명의 외국 선수를 받아들였다. 이 가운데 지금까지 한국 국적을 유지한 선수는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귀화와 함께 작성했던 계약서의 시한이 끝났기 때문이다. 혈통을 앞세운 민족주의는 이제 구시대적 산물이다. 스포츠를 지배했던 민족주의의 전통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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