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한 SF, 시대를 이해하는 은유와 비판의 여정
남북한 SF, 시대를 이해하는 은유와 비판의 여정
  • 박다원 기자
  • 승인 2021.11.21 23: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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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SF 문학 100년사

외국 SF문학 번역본에서 출발

아동문학과 체제 선전으로 발전

“새로운 스토리텔링의 전형이 되길”

 

  SF(Science Fiction) 문학은 과학적 사실이나 가설을 바탕으로 새롭게 그려진 세계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를 담은 문학장르다. 오늘날 서점가에서 SF문학은 인기를 견인하는 중심축이다. 한국 SF의 새 지평을 열었다고 평가받는 김초엽 작가의 소설집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은 20만 부가 판매되고, 일본, 중국, 대만, 스페인까지 판권이 팔리며 전 세계를 열광시켰다. 이외에도 천선란 작가, 김보영 작가 등을 필두로 한국의 SF는 최근 몇 년간 ‘부흥기’를 맞이하고 있다. 

  한반도에서 SF문학의 역사가 시작된 지도 어언 100년이 넘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2016년부터 발현된 오늘날의 SF문학 열풍이 이례적인 일이라고 입을 모은다. 이지용(건국대 몸문화연구소) 교수는 “20세기 전반에 걸쳐 SF문학의 창작이 시도됐지만, 대중문화 시장의 반응이 명확하게 나타나는 확산 시점은 2016년 이후가 최초”라고 말했다. 

  국내 SF문학은 오랜 시간 변방에 자리하며 불모의 시기를 거쳐왔다. 하지만 현실적 제약에서 벗어나 새로운 세상과 시대의 모습을 자유롭게 논의할 수 있다는 점에서 SF문학은 다양성을 풀어내기에 매우 유리한 장르다. 박상준 서울SF아카이브 대표는 “20세기 전반에 걸쳐 확장된 SF문학은 새로운 기술에 대한 동경부터 계몽적 성격을 담은 작품까지 다양하다”며 “작품 속에 담긴 은유와 비판을 바라보는 작업은 오늘날의 시대를 이해하는 데 크게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20세기 초부터 오늘날까지 남북한의 SF문학이 각각 걸어온 같은 듯 다른 행보를 살펴봤다. 

 

20세기 초:
사회비판적 성격 띠어

  1900년대 초반 국내 SF문학은 외국작품에서 내용은 그대로 두고, 지명, 인명 등을 자국에 맞게 고쳐 번역한 소설인 번안 작품들이 주를 이뤘다. 한국에 SF문학이 처음 유입된 것은 1907년 학회지인 <태극학보>에 쥘 베른의 <해저2만리>를 번역본으로 올린 것이다. 이후 쥘 베른의 작품들 중 <인도왕 비의 유산>은 <철세계>로 번안, <지구에서 달까지>는 <월세계 여행>으로 번역됐다. 또 영국의 소설가 허버트 조지 웰스의 작품들이 일어, 중어 번역본을 거쳐 우리나라에 소개되기도 했다. 

  국내 최초의 창작 SF소설은 1929년 발표된 김동인 작가의 단편 <K박사의 연구>로 알려져 있다. 이는 똥을 원료로 대체식량을 개발했다가 시연회에서 봉변을 당한 과학자가 막상 개로 만든 보신탕 앞에서 구역질을 하는 결말을 그린다. 이 짤막한 글은 인간의 이율배반적 태도를 풍자했다. 

  초창기 국내로 유입된 SF문학은 과학모험과 탐험의 서사를 띠는 작품과 계몽적 성격을 가진 작품들로 대부분 구성됐다. 사회의 부조리와 모순이 과학모험의 서사 속에 은유적으로 결합했다. 1926년 국내 취미용 교양잡지 <별건곤>에 연재된 허버트 조지 웰스의 <팔십만년후의 사회>가 그 대표적인 예다. 시간여행을 최초로 다룬 작품으로도 유명한 <팔십만년후의 사회>는 80만 년 후 미래사회의 극단적으로 분화된 인간사회 모습을 그린다. 자본가 계급과 생산직에 종사하는 노동자 계급의 극단적인 계급투쟁에 대한 신랄한 풍자였다. 이에 일제강점기 한글로 연재되던 <팔십만년후의 사회>는 사회주의적 요소를 내포해 일제 당국으로부터 금서로 지정됐고, 11월호(창간호)와 12월호에 2회 연재 후 중단됐다. 박상준 대표는 “기존 사회의 부조리를 비판하고 사회개혁을 요구했던 당시 작품들은 본격적인 연재 전에 중단되는 경우가 많았다”고 전했다. 

<K박사를 찾아서>(1929년작)

 

20세기 중반:
남한, SF장르 발전 더뎌

  1950년대 말에서 60년대에 접어들며 분단 이후 남한과 북한 SF문학의 발전은 서로 다른 양상을 보였다. 20세기 중반 남한에서는 미국의 영향을 받아 ‘SF소설’이 발전했고, 북한은 소련과 중국의 영향을 받아 ‘과학환 상문학’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며 장르의 기반을 닦았다. 이 시기부터 1980년대까지 남한사회의 SF문학 창작과 수용의 움직임은 다소 미진한 편이었다. 이는 일본의 영향으로 과학소설 앞에 ‘공상’이라는 단어가 덧붙여지며 ‘황당무계한 공상에 기반을 둔 아동용 이야기’라는 인식이 굳어졌던 탓이다. 최애순(계명대 교양세미나) 교수는 “‘공상과학소설’이라는 장르명이 대거 달리면서 소위 본격문학에서 과학소설을 폄하하거나 비판하기에 좋은 이유가 되었다”고 말했다. 또 독재정권 타도와 민주주의가 60, 70년대 거대 담론을 형성하면서, 문학계에서 사실주의 소설을 소설문학의 근간이라고 인식했던 점도 원인이 됐다. 주민재(명지대 방목기초교육대학) 교수는 “당시 남한은 한국전쟁, 군부독재와 같은 현실의 급박한 문제에 지속적으로 직면했다. 이러한 역사적 특수성도 SF문학의 발전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남한의 SF문학은 성인독자를 대상으로 한 작품은 부재했지만, 아동・청소년 문학분야를 중심으로 확산세를 보였다. 1949년에 출간된 아동・청소년 과학소설 이봉권의 <방전탑의 비밀>을 시작으로, 많은 아동・청소년 잡지 <새벗>, <학원>, <학생과학> 등에 작품들이 꾸준히 발표됐다. 한국전쟁 이후 남한사회는 과학기술을 발달시켜 국가를 재건하고자 했고, 정부의 과학기술발전 장려정책 기조가 문학에 반영됐다. 최배은(숙명여대 한국어문학부) 교수는 “과학기술 강국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어린이와 청소년에 대한 계몽과 교육이 활발히 이루어져야 했다”며 “정부에서 아동・청소년 과학소설을 권장했다”고 말했다.

 

북한, 체계적 작가 지원으로 발전

  북한에서는 국가 차원에서 SF문학과 작가들에 대한 체계적인 지원을 마련하며 꾸준히 발전했다. 박상준 대표는 “당시 북한사회의 SF 문예작가 수와 작품의 비중이 적긴 하지만, 그래도 꾸준하게 ‘과학환상문학’의 창작과 수용 흐름이 있었다”며 “남한사회는 일부 과학잡지에 SF소설이 연재되고 어떤 것은 단행본으로 묶여 출판되는 것이 전부였던 반면, 북한은 SF작가와 작품에 대해 일정 지면을 지속적으로 보장해주는 현상이 많이 목격된다”고 말했다.

  한편, 냉전체제 아래 미국과 소련의 우주 경쟁이 치열했던 5, 60년대의 남북한 SF문학은 모두 우주정복과 개척을 향한 폭발적인 반응과 열망을 보였다. 특히 <혹성간비 행선 달 1호>를 필두로 우주에서 외계인을 만나거나 화성을 개척하는 등의 이야기가 급증했다. 최배은 교수는 “당시 미국과 소련의 우주개발경쟁과 1945년 미국이 일본에 원자폭탄을 투하한 것의 영향이 당대 사람들에게 커다란 충격을 줬다”며 “남북한의 SF문학에도 외계인 침략, 우주 탐사, 우주 미아 등을 소재로 한 소설이 많이 등장하고, 원자탄 폭발로 멸망한 행성에 대한 이야기도 나타났다”고 말했다.

<혹성간 비행선 달 1호>(1954년작)

 

20세기 후반:
SF, 변방에서 주류로

  1980년대 후반에서 90년대 전반이 되자 남북한 사회 모두 SF문학의 공급과 수요가 확대되고, 변방에서 특정 이들 위주로 향유되던 SF문학이 점차 주류문학의 반열에 들어섰다. 남한에서 1987년 발표된 복거일 작가의 <비명을 찾아서>는 주류문학 작가들과 독자들의 이목을 끌며 화제가 됐다. <비명을 찾아서>는 평행우주를 소재로 해 한반도가 1945년 해방되지 않고 계속 일본의 식민지로 남아있는 상황을 가정하고, 식민지 조선에서 직장을 다니던 조선인 주인공이 만주 지역의 독립운동가를 찾아가는 내용이다. 이 시기 북한에서도 우주개발과 대체에너지 개발의 염원을 담은 <지구 밖으로> 등이 출간되며 새로운 소재를 활용한 SF문학의 창작이 나타났다. 박상준 대표는 “이 작품은 당시 생소했던 대체역사, 평행우주의 개념을 활용했다는 점에서 당시 주류문학에 상당한 자극을 줬다”고 말했다. 이지용 교수는 “이 작품은 SF장르가 주류장르로 떠오르는 데에 결정적 역할을 한 작품으로 평가받는다”고 말했다.

  1990년대 PC 통신의 보급은 SF장르의 창작과 교류를 더욱 활성화했다. 온라인 속 창작이 나타나면서 일부 집단에서 이뤄지던 SF문학의 창작 주체가 점차 대중 전반으로 확대됐다. 이지용 교수는 “이러한 경향은 곧 SF 장르에 대한 팬덤의 형성을 촉발했다”며 “통신사별로 ‘SF 동호회’라는 명칭의 커뮤니티가 형성됐고 동호회를 통해 창작, 번역, 교류 등 작품의 생산 및 소비가 일어났다”고 말했다. 

  북한에서도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 중공업과 과학강국이라는 목표를 세우고 이에 활용하기 위한 콘텐츠로서 SF문학에 대한 관심을 드러냈다. 1993년 황정상 작가의 <과학환상문학창작>이라는 비평서이자 이론서가 당 차원에서 발표된 것이 대표적인 예다. 이는 현재까지도 북한 과학환상문학의 정전과도 같이 여겨지는데, 북한은 이를 통해 ‘근거있는 과학적 환상’을 강조한다. 서동수(신한대 리나시타 교양대학) 교수는 “이론서에서는 과학기술적으로 가능한 것을 형상화하라는 의미도 담았지만, 동시에 인간이 과학보다 우위에 있으며 인간을 위협하는 무기로 변모하는 것을 철저히 경계한다는 점을 드러내고 있다”고 말했다.

<비명을 찾아서>(1987년작)
<지구 밖으로>(1990년작)
<과학환상문학창작>(1993년작)

 

21세기:
남한은 사회비판, 북한은 체제 선전

  2000년대 이후 지금까지 남한과 북한은 각기 다른 양상으로 끝없이 발전하고 있다. 남한에서는 현대사회의 부정적인 측면이 극단적으로 그려진 미래상을 의미하는 ‘디스토피아’를 구현한 작품이 많이 창작된다. 최배은 교수는 “조지 오웰의 <1984>와 같이 독재자에 의한 ‘가짜 유토피아’와 거기서 배제된 ‘수용소’를 그린 작품이 많이 등장한다”며 “특히 학교를 아동・청소년의 생명권을 억압하는 수용소로, 청소년 주인공이 그러한 체제에 저항하거나 탈출하는 내용이 특징적”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러한 작품들은 우리 사회의 억압적, 물질 중심적, 차등적 교육현실을 비판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북한의 경우, 과학기술의 힘을 이용해 국가의 이념과 이상을 실현하려는 체제 목표에 충실한 SF창작이 이뤄지고 있다. 이지용 교수는 “북한의 과학환상문학은 오늘날까지도 국가의 정책적인 면이나 선전활동에 유용하게 활용돼 정권도 호의적인 입장을 가진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앞으로의 한반도 SF문학의 발전 가능성이 무궁하다고 전망하며 이에 대한 활발한 연구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심완선 SF 평론가는 “지금 한국의 SF는 제국주의적이고 남성중심적인 분위기에서 멀어진 작품들 위주로 번역돼 해외로 퍼지고 있다”며 “주류의 서사를 벗어나는 다양한 한국만의 SF작품이 주목받는 흐름이 앞으로도 이어지리라 예상한다”고 전망했다. 한국의 전통적인 가치관이나 사상을 바탕으로 한국만의 SF라는 새로운 틀을 모색해나갈 것에 대한 기대도 있다. 박상준 대표는 “우리나라 작가와 독자들이 스스로 한국의 문화예술 정신,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 노력하며 새로운 이야기의 전형을 창조해나가길 바란다”고 말했다.

 

글 | 박다원 기자 wondaful@

일러스트 | 조은결 전문기자

사진제공 | 서울SF아카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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