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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눈으로 적은 시대의 기록

한글 활용한 최초의 문학 갈래

세계기록유산 등재 첫발 내딛어

 

  안동의 부녀자들은 내방에서 그들의 삶을 기록했다. 일상부터 일제강점기 시기의 투쟁까지, 여성들의 삶이 담긴 내방가사가 한국의 기록유산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내방가사는 여성이 주체가 돼 한글로 작성한 기록물이라는 점에서 세계적 가치가 있다. 지난달 17일 이상호 한국국학진흥원 기록유산센터장은 내방가사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아시아·태평양 지역 기록유산(아태기록유산)으로 등재하기 위해 세계기록유산 한국위원회에 신청서를 제출했다. 이상호 센터장을 만나 내방가사의 기록유산적 가치에 대해 물었다.

 

이상호 기록유산센터장은 “내방가사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 세계기록유산 등재의 시작”이라 말했다.

 

  - 내방가사를 세계기록유산에 등재 신청했다

  “2017년, 한국국학진흥원에서 기록유산 등재 추진을 전담으로 하는 ‘기록유산센터’를 조직해 50만 점이 넘는 기록유산을 검토했습니다. 한글로 작성된 기록물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처음 만들어질 때부터 한글을 사용한 문학 갈래인 내방가사를 검토 대상에 포함했습니다.

  내방가사는 주로 안동의 가문 내에서 전승돼 온 문학이에요. 안동에서만 집중적으로 창작됐기도 하고, 집안에서 전해지던 문학이었기에 연구자들이 내방가사에 크게 주목하지 않았습니다. 80년대 이정옥 위덕대 교수의 연구를 시작으로 내방가사에 대한 점점 많은 연구가 이뤄지고 90년대 들어 내방가사 보존회가 창립돼 그 가치가 드러나기 시작했어요. 저희는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통해 내방가사의 고유한 가치를 세계에 알리고자 한국국학진흥원과 예천박물관 소장 내방가사 348점을 아태기록유산 국내 후보에 신청했습니다. 세계기록유산 한국위원회와 문화재청에 의해 국내 후보로 선정되면 등재소위원회를 중심으로 내방가사 기록물에 대한 조사와 평가가 시작돼요. 이후 국제자문위원회의 합의와 유네스코 사무총장의 승인을 거쳐 최종 등재가 결정됩니다. 아태기록유산으로 등재가 된다면 더 많은 내방가사를 확보해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추진하려 합니다.”

 

한국국학진흥원은 상태 보존을 위해 내방가사를 별도의 수장고에 보관한다.

 

  - 내방가사의 기록유산적 가치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가장 중요한 등재 기준은 ‘세계적 중요성’입니다. 세계적 중요성이란 ‘왜 세계 사람들이 해당 기록물을 보존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나’를 묻는 것입니다. 인류의 역사 혹은 문화사 발전에 기여한 인물과 사건을 대변하는 기록물이어야 하죠.

  내방가사의 세계적 중요성은 크게 3가지입니다. 첫 번째는 내방가사의 주체가 여성 집단이라는 점입니다. 17, 18세기 엄격한 남성중심주의였던 동아시아 내에서 여성 집단이 주체적으로 활동했다는 점은 매우 중요해요. 서양에서는 여성들이 참정권 운동같이 물리적인 행동을 통해 그들의 권리를 주장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한국의 여성들은 대개 문학 활동 속에서 사회의 불만을 고발했어요. 그들은 작품을 통해 일제강점기 일본의 강제병합, 여성들에게 주어진 과도한 노동 등을 비판했습니다. 즉 내방가사는 조선의 여성들이 문학 활동이라는 고유한 움직임으로 여성의 인권 신장에 관여했음을 인류에게 보여줍니다.

  두 번째는 내용적인 측면입니다. 우리나라는 개항과 서구화, 일제강점기, 산업화 등의 사건을 압축된 시간에 겪었습니다. 그 시기에 남자들의 눈을 통해 기록된 글은 많지만, 여성들의 입장으로 그 시대를 바라본 글은 내방가사가 유일해요. 예컨대 ‘만주망명가사’에서는 여성들의 눈으로 바라본 일제강점기의 모습과 독립운동의 모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세 번째는 내방가사가 한글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최초의 창작물이라는 점입니다. 한글은 창제 원리와 배경, 창제 시기와 창제자를 알 수 있는 특별한 문자임에도 불구하고 초반에 활발히 사용되지 못했습니다. 단순한 기록 번역 또는 소설 등에서 사용되는 데에 그쳤죠. 하지만 내방가사는 18세기 첫 등장부터 한글을 사용했습니다. 한문과 비교해 한글은 누구나 배우기 쉬웠기 때문에 내방의 여성들이 잘 활용할 수 있었어요. 또한 의성어 등 한글의 풍요로운 표현을 활용해 여성들의 일상과 그들의 정서가 생생하게 드러납니다. 한글에 딱 맞는 창작물이 등장한 것이죠.”

 

한국국학진흥원에서 소장 중인 <쌍벽가>는 현존하는 내방가사 중 가장 오래됐다.

 

  - 등재를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가

  “세계기록유산 등재는 국가와 기관, 학계와 개인이 함께 움직이지 않으면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기관에서는 내방가사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에 관한 전반적인 과정을 진행합니다. 전문가들은 내방가사의 새로운 가치를 계속해서 발굴해야 하고, 국가의 지원도 뒷받침돼야 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국민의 관심입니다. 내방가사의 세계기록유산 등재는 끝이 아니라 시작입니다. 등재를 통해 국민들이 내방가사의 역사와 가치에 관심을 지니도록 하고, 함께 보존 의지를 다지며 앞으로도 가치 있는 기록물을 지속해서 만들겠다는 데에 등재 의의가 있습니다. 내방가사의 세계기록유산 등재는 우리가 이 기록물에 관심을 가지는 것부터 시작합니다.”

 

글 | 윤혜정 기자 samsara@

사진 | 문원준 기자 mondlicht@

사진제공 | 한국국학진흥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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