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규모 자본으로 블록버스터화

서사 강조된 ‘한국판’ 좀비물 강세

좀비보다 잔혹한 인간빌런 등장

 

2016년 개봉한 영화 부산행은 국내에서 천만 관객을 동원했다.
2016년 개봉한 영화 <부산행>은 국내에서 천만 관객을 동원했다.

  한국의 좀비물은 2016년 개봉한 영화 <부산행>을 시작으로 넷플릭스 드라마 <킹덤>, 영화 <반도>와 올해 공개된 넷플릭스 드라마 <지금 우리 학교는>까지 이르며 열풍을 이끌고 있다. 부두교에서 죽은 자를 노예로 만든다는 설화에서 등장한 ‘좀비’는 1968년 영화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을 통해 대중문화 속에 처음 나타났다. 좀비는 저예산 ‘B급’ 영화에 자주 등장하며 대중들에게 익숙한 콘텐츠가 됐고, 이후 대규모 자본을 들인 좀비물이 양산되며 하나의 장르가 됐다. 송아름 영화 평론가는 “좀비에 익숙해진 이들이 주된 관객층을 형성하면서 좀비물은 하나의 장르가 됐다”고 설명했다. 

  한국에서는 1981년 개봉한 영화 <괴시>를 시작으로 좀비가 다양한 콘텐츠에 등장했으나 큰 주목을 받지 못했고, 저예산 영화나 단막극 등의 소재로 이용되는 데에만 그쳤다. 천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 <부산행>을 계기로 한국의 좀비는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추기 시작했다. 이때 ‘빨리빨리’를 강조하는 한국의 특성상 한국 좀비 또한 빠르다는 하나의 ‘밈’(Meme)이 생기기도 했다. 이렇게 한국 좀비물은 ‘K-좀비’라는 하나의 장르로 굳혀졌다. 한국 좀비 콘텐츠는 밀폐 공간을 활용해 오락성을 강화하고, 인물 간 서사를 강조하거나 현실 사회의 문제들을 비추는 등의 특성으로 정체성을 공고히 하고 있다. 윤성은 영화 평론가는 “우리 사회의 축소판을 그려낸 한국 좀비물은 정서적인 요소들로 대중에게 인기를 끌고 있다”고 말했다.  
 

  블록버스터화로 대중화돼

  저예산 ‘B급’ 영화 소재에만 그쳤던 한국 좀비물은 거대 자본을 만나며 대규모 블록버스터 영화로 성장했다. <부산행>의 경우 제작 당시 115억 원의 예산을 투입해 좀비물을 블록버스터 영화로 탄생시켰다. 블록버스터 좀비물의 주요 특징은 대규모의 좀비가 떼를 지어 등장한다는 것이다. 윤성은 평론가는 “수많은 좀비떼만으로도 시각적 공포를 줄 수 있다”며 “대규모 좀비떼가 사람에게 덤벼드는 장면은 <부산행>부터 <지금 우리 학교는>까지 나타나며 하나의 트레이드마크가 됐다”고 말했다. <부산행>에서 군인 좀비떼가 기차역의 유리를 깨고 쏟아지는 장면과 좀비떼가 달려들어 기차에 매달리는 장면은 한국 좀비물의 명장면으로 회자된다. <킹덤>에서도 대규모 좀비떼가 등장해 세자가 있는 성벽으로 달려드는 장면이 나타나며 공포감을 자아냈다. 아무런 의식 없이 사람을 공격하는 대규모 좀비떼는 한국 좀비물에 오락적 성격을 부여했다. 최수웅(단국대 문예창작과) 교수는 “인간을 공격하는 대규모 좀비떼는 ‘사람이 아닌 존재들’로 여겨지며 영화 속에서 대량 살상 등의 극적 연출을 가능케 한다”고 말했다.

 

블록버스터영화 부산행엔 대규모 좀비떼가 나타난다.
블록버스터영화 <부산행>엔 대규모 좀비떼가 나타난다.

  블록버스터 영화로 성장한 한국의 좀비물은 ‘공간’을 효과적으로 사용해 흥미를 유발한다. <부산행>은 ‘기차’에서, <지금 우리 학교는>은 ‘학교’에서 좀비와 싸워나가는 사람들의 생존기를 그렸다. 인물들이 좀비를 피해 공간을 이동하며 각 공간에 있는 물건, 지형을 활용해 좀비를 물리치는 모습은 하나의 미션을 해결하는 게임을 연상시킨다. 윤성은 평론가는 “<부산행>과 같이 흥행에 성공한 좀비물에선 공간의 특성을 잘 살려 좀비와 대항하는 모습을 효과적으로 그려냈다”며 “롤 플레잉 게임처럼 느껴지게 만들어 관객들의 몰입도를 높였다”고 전했다.
 

  감성 자극하는 K-좀비 서사

  K-좀비물에서 인물들의 ‘서사’는 빠질 수 없는 흥행 요소이다. 수많은 좀비떼가 몰려오고, 그들과 싸워야 하는 상황에서도 한국 좀비물에선 등장인물 간의 사랑과 갈등, 가족 이야기 등의 서사가 강조된다. 윤성은 평론가는 “인물 간의 서사는 스릴과 액션 사이에서 한 템포를 쉬어가게 만든다”며 “관객들의 감수성을 자극해 관람 후 잔상을 길게 남긴다”고 말했다. 

  특히 한국 좀비물은 ‘좀비’에게도 서사를 부여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서구의 좀비물은 인간과 좀비의 이분법적 대립 구도를 그려 ‘좀비로부터의 생존’을 강조한다면, K-좀비물에선 흔히 주인공의 가족과 같은 익숙한 사람들이 감염되는 이야기가 전개된다. <지금 우리 학교는>에선 주인공의 같은 반 친구들이 좀비로 감염되는 모습이 나타난다. 주인공 ‘온조’는 친구 ‘이삭’의 감염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끝까지 ‘이삭’을 지키려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부산행>에서도 좀비에 감염된 친구 ‘진희’의 곁에 남아 결국 자신도 감염되는 ‘영국’의 이야기가 그려진다. 주인공과 가까운 인물의 감염은 좀비물의 공포를 배가시킨다. 최수웅 교수는 “좀비가 공포를 일으키고 대량 학살을 할 수 있는 존재로 그려지기도 하지만, 한국에서는 좀비들과 인간의 관계성에도 집중한다” 고 설명했다. 또한,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는 “과거 미지의 존재였던 좀비가 현재는 익숙한 주변 사람이 변한 대상으로 그려지며 현실적인 공포감이 강조됐다”고 말했다.
 

  좀비물에 비춰진 현실의 이면

  한국 좀비물은 좀비에게 나름의 서사를 부여하지만 좀비보다 더 잔혹한 ‘인간 빌런’을 등장시킨다. <부산행>의 ‘용석’ 캐릭터는 주인공 ‘석우’ 일행을 위험에 몰아넣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생존을 위해 좀비에게 등장인물을 던져버린다. <지금 우리 학교는>의 ‘윤귀남’은 학교 폭력을 저지르는 등 악행을 일삼는 인물로 등장한다. 그는 돌연변이 상태로 좀비 바이러스로부터 끝까지 살아남으며 타인의 목숨을 희생하고 주인공들의 생존을 위협한다. <킹덤 2> 속 중전은 권력을 위해 좀비를 이용하며 가족뿐만 아니라 자신마저 희생하곤 한다. 이러한 K-좀비물 속 ‘인간 빌런’은 재난 상황 속에서 나타나는 인간의 생존본능이 극단적으로 나타난 캐릭터로 표현된다. 최수웅 교수는 “인간 안에 내재된 이기적인 속성 혹은 잔혹성을 드러내는 도구로 ‘인간 빌런’이 사용된다”고 설명했다.

 

넷플릭스 드라마 킹덤은 K- 좀비의 세계적인 열풍을 일으켰다.
넷플릭스 드라마 <킹덤>은 K- 좀비의 세계적인 열풍을 일으켰다.

  좀비물은 극한의 재난 상황 속에 처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려내며 ‘우리 사회의 축소판’을 보여준다. <킹덤>은 조선 시대에 발생한 좀비 사태를 통해 부패한 관리들과 하층민들의 열악한 현실을 그려냈다. 드라마 <지금 우리 학교는>에선 좀비 바이러스 개발자를 학교 폭력 피해자의 아버지로 설정하는 등 학교 폭력을 비롯한 사회 문제와 불평등을 꼬집었다. 김헌식 평론가는 “한국의 좀비는 현실의 문제를 다루며 오락성뿐만 아니라 작품성, 사회성까지도 충족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넷플릭스 드라마 지금 우리 학교는에선 좀비바이러스 개발자를 학교폭력 피해자 아버지로 설정했다.
넷플릭스 드라마 지금 우리 학교는에선 좀비바이러스 개발자를 학교폭력 피해자 아버지로 설정했다.

  한국 콘텐츠의 ‘좀비’는 단순한 공포 소재를 넘어 ‘K-좀비’라는 정체성을 만들었다. 한국 좀비물은 웹툰, 뉴미디어 등 다양한 플랫폼을 만나며 끊임없이 성장하고 있다. 송아름 평론가는 “앞으로의 한국 좀비물은 좀비라는 익숙한 장르에 감염 방식이나 시공간 배경에 변화를 주는 등 신선함을 부여해 더욱 발전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헌식 평론가는 “좀비라는 소재에 한국 문화산업의 강점인 사회적 메시지나 감성적 이야기, 공동체에 대한 고민을 효과적으로 담아내며 발전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글 | 김시현 기자 poem@

사진출처 | 네이버 영화, 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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