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승과 게임 속 괴물 동작 참고해

본능에 충실한 ‘시체’ 디테일 살려

“단조롭지 않은 신선한 동작 필요”

 

  할리우드 영화 등 해외의 좀비물과 다르게 한국 좀비의 움직임은 CG가 배제된 채 배우들의 연기로만 만들어진다. 아무렇게나 뒤엉켜 보이면서도 생동감 넘치는 이 동작들은 댄스 장르인 ‘본 브레이킹’을 활용해 만들어진다. 실감 나고 무서운 좀비 캐릭터를 완성시키는 K-좀비만의 비법이다. 전영 안무가는 영화 <부산행>, <킹덤>, <반도> 등 대표적인 한국 좀비물들의 ‘좀비 안무’ 기획을 담당하며 생생한 K-좀비의 움직임을 완성해냈다. 전영 안무가를 만나 한국 좀비의 움직임에 대해 물었다. 

 

전영 안무가는 “배우들의 피나는 노력이 K-좀비의 움직임을 완성한다”고 말했다.
전영 안무가는 “배우들의 피나는 노력이 K-좀비의 움직임을 완성한다”고 말했다.

  - K-좀비 움직임의 특성은

  “할리우드의 고자본이 들어간 작품들과 다르게 한국의 좀비는 움직임을 CG로 처리하지 않습니다. 예산의 차이 때문이죠. 어려운 동작을 CG로 손쉽게 작업하는 할리우드와 달리, 한국에서는 배우들이 직접 연기합니다. 오히려 이 덕분에 좀비 움직임을 더욱 생생하게 구현해 낼 수 있게 됐죠. 무엇보다 배우들의 피나는 연습이 한국 좀비의 색다른 움직임을 완성합니다. 배우들은 좀비로 변할 때의 변이과정을 표현하는 동작부터 인간을 공격하는 자세, 더 나아가 총과 같은 도구로 공격당했을 때의 반응까지도 연기합니다. 좀비물에서는 좀비들이 주인공입니다. 배우들의 노력으로 캐릭터의 움직임이 생생하게 표현되니 관객에게도 신선한 볼거리로 다가온다고 생각합니다.”

 

  - 좀비의 움직임은 어떻게 만들어지나

  “좀비 안무를 만들 때는 ‘본 브레이킹’이라는 댄스 장르를 주로 사용합니다. ‘본 브레이킹’은 플렉싱(Flexing)이라는 장르의 한 요소로 신체를 유연하게 사용하는 특징이 있습니다. 특히 과도할 정도로 신체와 관절의 뒤틀림을 묘사하기에, 좀비물과 시너지 효과가 높게 나타나는 안무죠. 움직임을 구현할 때는 ‘다크소울’이나 ‘더 라스트 오브 어스’ 등의 해외 유명 게임을 참고하기도 했습니다. 액션 게임 속 좀비와 악당들의 움직임을 영화 속 좀비에 반영해 보는 것입니다. 

 

‘센터피즈’의 안무가 언데드와 뮤턴트가 좀비의 모습을 형상화하고 있다.
'센터피즈'의 안무가 언데드와 뮤턴트가 본 브레이킹의 연결동작을 하고 있다.

  좀비 움직임 구현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좀비의 움직임이 단순히 안무처럼 보이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좀비의 움직임은 단순 안무가 아닌 영화 속 캐릭터의 움직임입니다. 기존 안무들처럼 리듬감을 구현하거나, 안무를 구성했다는 티가 나면 안 됩니다. 짜여진 동작이 아니라  ‘현실’처럼 보여야 하기 때문이죠. 그래서 저는 손과 팔의 사용을 배제해 움직임을 짜는 데 중점을 둡니다. 사람이라면 쓰러졌다가 다시 일어나는 상황에서, 또는 장애물을 맞닥뜨리는 상황에서 손과 팔을 먼저 사용합니다. 그러나 본능에 의해 움직이는 좀비는 몸이 망가지든 말든 신경 쓰지 않고 짐승처럼 움직인다는 점을 고려했습니다. 

  또한, 대규모 인원이 활용되는 좀비 안무의 특성상 배우들이 다치지 않도록 가장 신경 씁니다. 불규칙적으로 군집을 형성해 쏟아져 나오는 좀비들의 움직임 속에서 부상을 방지하기 위해, 연습할 땐 집중해서 상대와의 합을 맞추려고 노력하죠. 특히 좀비가 대규모로 나오는 장면에서는 좀비들이 한 쪽에만 쏠리는 병목현상을 막아야 합니다. 이를 위해 이동 동선 속에 재미있는 전략이나 장치를 활용해 틈을 만들어주기도 하죠. 이동 동선에 장애물을 설치해 좀비가 몸이 끼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상황 등을 연출하는 것이 한 예시입니다.”
 

  - 작품별 좀비 움직임의 차이점은

  “크게 <부산행>과 <킹덤> 좀비의 차이점을 말할 수 있겠습니다. <부산행>에서는 가장 공격적인 좀비의 움직임을 만들어내고자 했습니다. SF 애니메이션 <이노센스>, <공각기동대> 속  A.I. 로봇들의 움직임을 사전에 참고했죠. 광견병이라는 질병으로 나타나는 육체적인 증세도 안무 구성의 기반이 됐습니다. 이는 뼈가 부러진 채로 달려오는 좀비의 모습, 과격한 고개 흔들림 등을 디테일하게 표현하는 데에 도움이 됐습니다. 특히 좀비로의 변이 과정에서의 공격적인 모습까지도 CG 없이 격한 몸짓을 구상하고자 노력했죠.

 

킹덤 좀비의 움직임은 한국 전통 귀신의 특징을 이용해 동양적인 요소가 부각된다.
<킹덤> 좀비의 움직임은 한국 전통 귀신의 특징을 이용해 동양적인 요소가 부각된다.

  반면 넷플릭스 시리즈 <킹덤>의 김성훈 감독께서는 좀비에 동양적인 요소를 부여하고자 했습니다. 최근 트렌드인 빠르고 공격적인 좀비와는 다르게 표현하고 싶어 했죠. 그래서 <킹덤>의 좀비에게는 아무것도 안 하고 서 있기만 하는 ‘휴지기’라는 특별한 대기 상태를 부여했습니다. 마치 한국의 전통 귀신들처럼 좀비가 정적인 움직임으로 다가와 갑자기 급변하는 모습을 보여준 것입니다. 또한, 좀비는 의식이 없는 시체라는 점에서 먹잇감을 먹기 위한 본능만을 앞세워 손과 몸보다는 목이 먼저 돌진하는 형태를 강조했습니다.” 
 

  - 앞으로 한국 좀비물에 기대하는 점은

  “한국 좀비물이 매너리즘에 빠져 비슷한 동작과 모습들이 그려지지 않았으면 합니다. 저에게도 포함되는 말입니다. 계속해서 신선한 시나리오에 걸맞게 신선한 동작들이 연출됐으면 좋겠습니다.”

 

글 | 김시현 기자 poem@

사진제공 | 전영 안무가

사진출처 | 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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