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유일 점자 교구재 제작

시각장애아동의 길잡이 역할

“아이들 위해 담심포 지킬 것”

 

박귀선 대표는 “저와 담심포는 시각장애인과 세상 사이의 울퉁불퉁, 불편한 길을 고치는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글자를 익히고 그림책을 읽으며 친구들과 노는 것. 어린 시절은 보는 즐거움으로 가득 차 있다. 시각장애 아동들이 보내는 시간은 다르다. 보이는 세상을 만질 수 있게 고쳐주는 박귀선 담심포대표는 시각장애 아동들에게 일상을 선물하고자 점자 인형, 교구재, 그림책 등 점자 촉각놀이교구재를 17년 동안 만들고 있다. “시각장애 아동도 일반 아이들과 다를 바 없어요. 사람들의 인식을 바꿔 모두가 화합하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제 목표예요.”

 

‘담심포’에서는 시각장애아동을 위한 다양한 점자 교구재를 제작한다.

 

  국내 1호 점자 그림책 만들다

  지난 2004년 박귀선 대표는 자녀 육아를 위해 직접 놀이 교구재를 만들었다. 그 과정에서 박 대표는 시각장애 아동을 위한 점자 그림책이 국내에 단 한 권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놀란 박 대표는 직접 점자 촉각그림동화 제작에 나서고자 맹학교를 찾아갔다. “시각장애 아동이 사용할 인형 및 교구재를 만들 때는 시각장애 아동의 특성을 아는 것이 가장 중요해요.”

  시각장애 아동들과 학부모, 맹학교 교사들과 1년 동안 많은 논의를 거친 끝에 1년 후인 2005, 박 대표는 국내 최초의 점자 촉각그림동화책인 <아기새>를 완성했다. 이후 시각장애 아동을 위한 점자 촉감놀이교구재를 만드는 개인 봉사활동을 기획해 진행했다. 시간이 흘러 2019년 박귀선 대표는 사회적기업가 육성사업을 통해 사회적 기업 담심포를 설립했다.

  공예 기업의 대표라면 화려한 바느질 기술을 기대할 것이다. 박귀선 대표의 바느질은 고등학교 가사 시간에 익힌 실력이 전부다. 박 대표는 공예 디자인으로 승부했다. “제 바느질 실력은 누구나 할 수 있을 정도라서 오히려 더 좋은 반응을 받았어요. 독특한 디자인인데 바느질 방법은 쉬우니까 다들 나도 할 수 있겠다라고 생각한 것 같아요.”

 

  손과 마음으로 읽는 그림 동화책

  박귀선 대표의 동화책 <아기새>에선 포근하고 털이 긴 엄마새의 촉감, 털이 부들부들하고 짧은 아기새의 촉감, 폭신하면서도 묵직한 비를 머금은 구름의 촉감, 거칠고 딱딱한 나무줄기의 촉감 등 수십 가지의 촉감이 필요하다. 점자 동화책은 이야기에 등장하는 주인공, 배경, 사물 등 모든 것이 시각장애아동의 손끝으로 전달돼야 하기에 재료에 각별히 신경써야 한다. 다양한 재료로 섬세하게 촉감을 표현해야 시각장애아동이 손으로 그림동화를 만지며 생생하게 읽는 효과를 줄 수 있다. “일상 속에서 색다른 재료를 만나면, 눈을 감고 재료를 만져보는 게 습관이 됐어요. 새로운 재료를 찾을 때마다, ‘이걸 점자 교구재에 어떻게 활용하지라는 생각을 자연스레 해요.”

  담심포에서 제작하는 점자 그림책은 백설공주’, ‘콩쥐팥쥐와 같은 기존 동화가 아닌 박귀선 대표가 직접 창작한 동화로 구성된다. “기존 동화의 경우, 촉감표현만으로 이야기를 전개하기 어려울 때가 있어요. 반면 창작 동화는 재료를 먼저 정하고, 재료 특성에 맞춘 이야기를 전개할 수 있지요.”

 

  경력 단절 여성과 함께 성장하다

  담심포에서는 점자 교구재 DIY 키트를 판매하고 있다. 여러 기업의 봉사자들이 비대면 봉사활동을 위해 이를 구매한 후 DIY 키트를 이용해 점자 교구재를 만든다. 완성된 점자 교구재는 맹학교와 점자도서관으로 발송된다. 박귀선 대표는 담심포를 설립하기 전 봉사동아리 형태로 점자 촉각동화책과 교구재를 제작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함께해온 봉사자들은 대부분 육아로 경력이 단절된 여성들이다. “저도 연년생 두 아이의 육아로 경력이 단절됐어요. 봉사자들 모두 제가 점자 교구재 제작을 처음 시작하게 된 동기와 비슷한 엄마의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요. 아이들이 장애로 인해 놀이의 기회마저 얻지 못한다는 것에 마음 아파하고, 모두 오랫동안 조건 없이 봉사활동에 참여해주신 분들이죠.”

 

  일상의 즐거움 느낄 때까지

  “맹학교에서 본 아이 하나가 평소엔 씩씩하다가 놀이 시간만 되면 늘 주눅 들었어요. 놀이에 주체적으로 참여할 수 없었기 때문이에요. 점자 윷놀이 교구를 사용한 이후, 아이는 목소리에 자신감이 들어가며 놀이 시간에도 주체적으로 참여하기 시작했어요. 우리의 교구를 즐겁게 사용하는 모습을 보니 눈물이 났어요. 한 명의 아이라도 즐거운 경험을 할 수 있다면 끝까지 담심포를 지켜야겠단 생각을 했습니다.”

  작은 실천에서 시작한 그의 활동은 시간이 흘러 많은 시각장애 아동의 놀이 활동의 길라잡이가 됐다. 박귀선 대표는 나의 작은 재능으로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다이 활동은 나의 남은 삶의 의미가 됐다고 말했다. 흔하게 볼 수 있는 교구재 형태에서 벗어나 점자로 바느질한 그의 교구재들은 우리의 인식을 고친다. “시각장애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장애인들은 일상 속에서 많은 불편을 경험해요. 담심포와 저는 시각장애인과 세상 사이의 울퉁불퉁하고 불편한 길을 고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글 | 윤혜정 기자 samsara@
사진 제공 | 담심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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