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여름을 기다려왔다. 따뜻이 내리쬐는 햇볕과 해진 뒤 불어오는 선선한 바람. 찬란한 계절의 축복 속에서 치열한 하루를 보내고 나면 시원한 맥주의 위로가 간절해진다. 지역마다 자리잡은 맥주의 성지에서는 계절을 즐기고자 하는 이들의 축제가 펼쳐진다.

  고려대와 성신여대가 만나는 보문에서는 겉보기엔 영락없는 슈퍼인 ‘선화슈퍼가맥(선화슈퍼)’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가맥’은 80년대 전주에서 태동한 ‘슈퍼형 맥주집’ 문화로, 과자나 아이스크림 등 일반 슈퍼에서 파는 물건들과 함께 값싸고 다양한 안주들을 제공한다. 이제는 찾아보기 힘든 동네 슈퍼를 배경으로 한 가맥집의 풍경은 그 특유의 감성으로 지역 주민과 주변 학생들을 사로잡는다.

  이곳의 대표 메뉴는 여느 가맥집과 마찬가지로 마른안주, 그중에서도 극상의 바삭함을 자랑하는 ‘먹태구이’다. 첫 입은 소스에 찍지 않고 그냥 먹는다. 먹태의 담백·고소한 맛을 느낄 수 있다. 두 번째 입은 소스에 듬뿍 찍어 맛본다. 고유의 고소함에, 짭짤함이 더해진다. 어떤 음식도 대체할 수 없는 맥주 단짝의 탄생이다.

  배가 출출하다면, 찰순대와 짜파구리를 시키자. 이곳만의 특별함은 없지만, 정석으로 조리된 이 음식들엔 소소한 재미가 있다. 무심한 듯 올라간 다진 청양고추가 찰순대의 느끼함을 잡아주고, 단 ‘세 번’의 분사만이 허용된 짜파구리의 트러플 오일에 왠지 대접받는 기분을 느낀다.

  양쪽의 대문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맞다 정신을 차려보니, 맥주병이 꽤 쌓였다. 주변 손님들이 안주 한두 개만 즐긴 뒤 다음 손님에게 자리를 양보한 지도 오래다. 찬란한 계절, 맥주의 시원한 위로는 치열했던 지난 일주일에 대한 보상이었다. 과제와 시험의 계절이기도 한 이 찬란한 계절은 야속하게도 우리에게 여유를 허용하지 않는다. 찬란한 계절이 절정을 앞두고 있다. 없는 안주 빼고 다 있는 이곳 선화슈퍼에서, 서둘러 맥주가 주는 시원한 이 위로를 만끽해 보는 것은 어떨까.

 

김선규 기자 star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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