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듯 같은 우리
경험을 막론하고 같은 자리에서 본인의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다. 특히나 조직을 이끌어 가는 이들의 책임은 막중하다. 이제 막 리더의 자리에 앉은 사람도, 오랜 시간 그 자리를 지켜 온 사람도 한 단체의 미래를 위해 밤낮없이 고민 중이다. 대학 언론의 편집국장과 기성언론의 편집국장, 대학생 스타트업 대표와 회사원 출신 8년 차 스타트업 대표가 만나 서로의 시선을 공유했다. 흐른 시간, 서 있는 장소는 달라도 그들의 ‘진심’만은 같았다.
"24시간 불 꺼지지 않는 편집국, 전체를 책임지고 결정하기 위해 매 순간 고민해요"
공통 덕목은 소통과 설득
장기적 안목과 결단력 필요해
언론은 당연함에 질문 던져야
기성 언론사와 같이, 학보사는 학교라는 한 사회의 언론 기관으로서 정보 전달과 아카이빙 등의 주요 기능을 수행한다. 편집국을 책임지는 편집국장은 지면에 등장하지 않지만 그 뒤에서 신문의 얼개 구성부터 발행까지 전반적인 업무를 통솔한다.
시사IN 제6대 편집국장을 역임했던 고제규(신방과 92학번) 시사IN 미디어랩장과 이정우(문과대 영문20) 본지 편집국장이 편집국장의 역할과 자세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서 있는 곳은 달라도, 그들이 공유하는 언론의 책무와 힘은 비슷했다.
고대신문 윤혜정 기자 | “편집국장의 일주일은 어떻게 흘러가나요?”
고대신문 이정우 편집국장 | “월요일 기획 회의로 일주일간의 신문 발행 과정이 시작됩니다. 현재 학업을 병행 중이라 아침부터 수업을 듣고 와서 회의를 시작하죠. 회의로 가득 찬 월요일이 끝나면 화, 수, 목요일에는 신문 1면에 어떤 기사를 실을지 고민하고 취재 현황표를 보며 각 부서의 부장들과 소통하며 그 주의 기획을 구성해갑니다. 공식 일정이 없어서 세부 업무지시를 하다 보면 하루하루가 너무 빨리 가죠. 기사 마감날인 금요일에는 아침부터 새벽까지 모든 기사를 확인하고 수정하는 작업을 합니다. 그 후 지면을 편집하는 조판을 하러 갑니다. 토요일 밤 조판이 끝나서야 공식적인 신문 발행 과정이 끝나죠.”
시사인 고제규 미디어랩장 | “학업과 편집국장을 병행하시다니 대단하네요. 시사인 또한 주간지라서 얼추 비슷한 흐름입니다. 우선 하루를 날 잡아, 기획 회의를 합니다. 이후 신문에 담을 기사들을 정하고 계속해서 팀장들과 소통하며 기사를 배분해요. 저희는 수요일과 목요일에 집중적으로 신문을 마감합니다. 마감날에는 자리에서 움직이지도 못하고 계속해서 기사와 지면 디자인을 보죠.”
윤혜정 | “편집국장의 일주일은 일의 연속이군요. 바쁜 생활 속에서 겪는 고충은 없으신가요?”
고제규 | “마감은 정해져 있는데, 결과물은 맘에 안 들 때가 제일 괴롭죠. 혼자 신문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기자들이 기사를 취재하고 작성한 기사들로 지면은 구성되니, 마음처럼 지면이 만들어지지 않을 때도 많습니다. 더 좋은 결과물을 만들고 싶어서 항상 지면에 대해 생각합니다. 머릿속 형광등이 꺼지질 않다 보니 불면증도 생기죠. 국장이란 직업은 24시간 일을 하는 직업 같아요”
이정우 | “너무 공감 가네요. 저는 고대신문 기자들과 함께 숙소 생활 중입니다. 함께 드라마를 볼 때마저도 아이템이 생각나면 기자들에게 기획안을 제안하기도 하고 길을 가다 아이템이 떠오르면 적어뒀다가 부장단에게 바로 전달하기도 해요. 후배 기자들에게 미안하기도 하지만, 지면에 대한 생각이 일상에서도 멈추질 않아요.”
“기록의 힘을 믿습니다”
윤혜정 | “같은 언론이지만, 학보사와 기성 언론은 기자의 시선, 지면에 담는 사안 등이 다릅니다. 두 언론사는 사회와 학교에서 어떤 역할을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고제규 | “언론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가 ‘당연한 것에 질문 던지기’입니다. 기성 언론은 사회에 질문을 던지고, 학보사는 학교와 지역 커뮤니티에 질문을 던지는 역할을 한다고 생각해요.”
이정우 | “기성 언론과 비교했을 때 학보사는 기록하는 역할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등록금 시위, 교육권리찾기운동같이 대학에서 일어난 일은 학생들이 직접 가까이서 목격하잖아요. 그렇기에 학생들만 목격할 수 있는 사안을 담아낼 수 있다는 점에서 가치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 같은 사안이더라도 기성 언론과 차별화되는 학생 기자의 시선으로 사회를 기록하는 역할도 있어요.”
고제규 | “저희 언론사의 중요한 가치를 담은 구호 중 하나가 ‘기록의 힘을 믿습니다’예요. 매주 발행되는 신문도 한 번에 모아놓으면 그것이 하나의 역사가 됩니다. 학보사에서는 그 기록의 힘이 더 특별하다고 볼 수 있겠네요.”
한 발짝 떨어져 사회를 보다
윤혜정 | “편집국장은 기사 작성이 아닌 신문 전체를 총괄하다 보니, 신문을 바라보는 시선이 이전과 달라질 것 같습니다. 두 분은 기자와 편집국장의 시선이 어떻게 다른 것 같나요?”
고제규 | “기자는 마치 사각 링 안의 권투 선수, 편집국장은 심판 같아요. 권투 선수는 상대 선수의 상태가 어떤지 세밀하게 볼 수 있죠. 그들을 관전하며 경기를 해설하는 심판은 그 경기의 전체적 분위기와 어느 대목에서 관중들이 환호하는지를 볼 수 있습니다.”
이정우 | “적절한 비유라 생각해요. 기자는 자신의 취재처를 세밀하게 볼 수 있지만 너무 가까이서 보면 그곳에 동화돼 사안을 객관적으로 못 보기도 합니다. 그럴 때 제3자의 입장에서 볼 수 있는 국장이 기자의 시선을 중화시켜 줄 수 있다고 생각해요.”
고제규 | “한국은 기자가 취재처에 동화되기 쉬운 구조예요. 대개 한국 언론사의 업무는 각 기자들의 담당 출입처를 중심으로 돌아가기 때문이죠. 기자들은 배정받은 출입처를 세밀히 볼 수 있지만, 출입처 안에서만 사회를 바라보게 됩니다. 이때 전체를 볼 수 있는 국장이 기사에 무엇을 객관적으로 담을지 배정해 주곤 하죠.”
이정우 | “저도 기자 시절엔 취재가 바쁘다 보니 어떻게 보여줄까 고민하기보단 최대한 취재를 열심히 하는 것에 집중했던 것 같아요. 편집국장이 되고 나서는 수집한 사실들을 기반으로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를 많이 고민해요. 신문의 면 배치를 할 때도, 중요도에 따라 순서를 고심해서 짜려고 노력합니다. 최근에는 지금 같은 대담회나 좌담회 같이 기존 기사들과는 조금 다른 기사 작법과 취재 방식을 시도하고 있어요.”
고제규 | “굉장히 좋은 자세네요. 중요한 기사를 강조하고 싶을 땐 다양한 형식을 써 보는 것도 추천할게요. 한국 언론은 기사 형식이 정형화돼 모든 기사를 다양하게 쓸 순 없겠죠. 특집기사의 쓰는 방식만 바꿔도 독자들에게 화제가 될 수 있어요.”
토론과 설득으로 소통하다
윤혜정 | “그렇다면 이렇게 다른 시선들로 인해 기자들과의 협업 과정에서 의견 차이도 생길 것 같네요.”
고제규 | “편집국장의 책무 중 하나는 한정된 취재 자원을 배분해주는 ‘자원 배분권’이에요. 이번 주 지면에선 무엇을 강조해야 할지 판단해서 주제를 정하다 보면, 의견의 차이가 나타나기도 하죠. 이럴 땐 대부분 토론과 대화로 해결합니다. 제 지론 중 하나가 ‘최악의 편집국은 침묵의 편집국’이에요. 매너리즘에 빠져 늘 하던 대로 하는 게 아니라, 계급장 떼고 토론하는 거죠. 그렇게 하다 보면 결국 가장 좋은 결과물이 나옵니다.”
이정우 | “저는 리더십이 ‘설득’이라 생각해요. 기자들 대부분이 학업을 병행하고 있기 때문에 일정도 꽤 촉박해서 빠른 결정을 내려야 하는 순간이 많이 찾아와요. 그래서 어느 정도 중심을 잡아주고 기자들을 설득해서 결정하는 편입니다.”
고제규 | “나쁜 리더의 유형 중 하나가 결정하지 않는 리더예요. 성과는 후배 기자들한테 맡기고 이후 최종 책임을 지는 역할이 국장입니다. 비교적 임기가 짧은 학보사 국장이라도, 편집국장은 그 학보사의 역사가 응축된 자리입니다. 어떤 신문사든 국장의 색깔에 따라 신문이 전체가 결정되고 그만큼 매 순간 결단을 내려야 하기에 결정을 잘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윤혜정 | “편집국장의 일주일부터 시작해서 자세까지 잘 들어봤습니다. 마지막으로 질문 있으신가요?”
이정우 | “최근 생긴 고민에 대해 여쭤보고 싶어요. 사회의 상식이 급속도로 전복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치 혹은 성별 등 사람들이 계속 갈라지는 경향이 뚜렷하게 드러나고 있잖아요. 그렇다면 어느 하나의 입장을 진리라고 할 수 있을까요?”
고제규 | “저는 진리가 하나의 고정된 불변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저 갈라진 두 입장이 자유 시장에서 논쟁을 통해 형성되는 의견이 상식이죠. 다만 그러한 과정에서 태도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널리스트는 액티비스트(activist)가 되어선 안 됩니다.”
글 | 윤혜정 기자 samsara@
사진 | 김예락 기자 emancipa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