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병권 공과대 교수·전기전자공학부
                                     주병권 공과대 교수·전기전자공학부

 

  전자 디스플레이의 경연장은 TV(텔레비전) 시장이다. 프리미엄급 TV를 대상으로 하여 크기와 화질, 그리고 가격을 두고 메이커들 간에 치열한 다툼이 펼쳐지고 있으며, TV 시장을 석권하였다는 건 예를 들어 씨름에서는 천하장사를 움켜쥔 것이나 다름이 없다. 즉 시장에서 최고가 되었다는 의미이다. 전자 디스플레이의 역사가 100년에 달하고, 수십 종의 다양한 기술들이 전자 디스플레이 분야에 명함을 내밀었어도 지금껏 TV 시장에 제대로 들어선 기술은 브라운관(CRT)과 플라스마 디스플레이(PDP), 액정 디스플레이(LCD) 그리고 유기 발광 다이오드(OLED)뿐이다. 그리고 지금은 LCD와 OLED가 건곤일척의 경합을 벌이고 있다.

  1990년대에 ‘벽걸이 TV’가 시작되면서 크고 무거운 브라운관 TV의 급격한 소멸이 일어났고 PDP가 평판 디스플레이로의 물갈이의 선두 주자가 되었다. 전기장이 기체를 방전시켜 자외선을 만들고 자외선이 우리 눈에 보이는 빛(가시광선)을 만드는 ‘전계 발광+광 발광’ 원리로 작동된다. 즉, 작은 방전관들이 평면으로 배열되어 각각 빨강-초록-파랑으로 반짝이며 이러한 빛의 3원색이 서로 다른 밝기로 어우러져 하나의 화소(픽셀, pixel, picture+element)가 표시되고 이러한 화소들이 이어져서 영상을 만들어 낸다. 방전관 기술의 결정체인 PDP는 반도체 공정에 크게 의존하지 않는 생산성과 가격 경쟁력으로 TV에서 장기 집권하고 있던 브라운관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하는 주역이 되었지만 화무십일홍이랄까, 20세기에 들어서면서 등장한 LCD TV와 안방극장을 놓고 ‘죽느냐 사느냐’를 결정짓는 10년 대결을 벌이게 된다.

  PDP와 LCD의 대결 뒷담화는 지금까지도 디스플레이 소사이어티에서 회자되고 있다. 의미도 크지만 생각하여야 할 점들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결과를 먼저 말하면 LCD의 완벽한 승리이다. PDP는 퇴출당하였고 지구상에서 사라졌다. 스스로 빛을 만들지 못하여 남의 빛(백라이트)을 얻어 써야 하고, 그 빛의 통과 정도를 조절하는 조각 커튼인 액정(Liquid Crystal)의 느린 속도와 비대칭성으로 인해 빠른 영상 구현이 만만치 않고 시야각에서도 자유롭지 못한 LCD 기술이 TV의 챔피언이 되었다는 점은 적지 않은 궁금증을 내포하고 있다. 물론 시야각과 동작 속도 등에서 기술 발전과 함께 광원을 형광등이 아닌 LED를 사용하면서 색과 화질이 향상된 점이 LCD의 동력이었지만, 이에 더하여 높은 전기세(사실은 전기료), 전자파의 유해성 등 지금 보면 진실과는 거리가 있는 ‘고정 지출과 인체 유해성’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불확실한 불안감이 반상회, 아파트 부녀회 등을 타고 스멀스멀 침투한 연유일까? 브라운관이 100년이라면 LCD는 50여 년을 지탱하여 온 디스플레이 기술이다. 유구한 관록과 치밀한 전략이 결과적으로는 초소형에서부터 초대형에 이르기까지 전자 디스플레이의 전 영역을 석권하였다. 플라이급에서 출발한 복서가 헤비급까지 제패하듯이 그렇게.

  LCD가 액체에 가까운 액정 커튼을 전기장으로 움직여 빛의 투과를 조절하는 액체 기반의 디스플레이라면 OLED는 유기물이 주재료이고 전극만 무기물인 순수한 고체 디스플레이에 해당한다. 고체가 액체에 도전장을 내밀지 못할 이유가 없다. 더구나 OLED는 전자와 정공이 만남을 통하여 빛이 만들어지는 정통파 전계 발광으로 작동함으로써 동작 속도가 빠르고, 시야각 문제가 없으며 명암비를 좌우하는 ‘진정한 블랙’을 만들어 낸다. LCD가 낮에 암막 커튼을 쳐서 어둠을 만드는 대신에 OLED는 밤의 어둠을 구현한다는 뜻이다. 아울러 유기물들의 다양한 합성을 통한 자연색 구현에도 훨씬 잠재력이 있다. PDP TV가 브라운관 TV에 그랬듯이, LCD TV가 PDP TV에 그랬듯이 OLED TV가 LCD TV 판을 뒤집어엎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줄로 알았다. 그런데 OLED TV가 도전장을 내민 지 10여 년이 훌쩍 넘었는데도 LCD TV의 맷집이 대단하다. 명암비의 불리함을 발광다이오드(LED) 백라이트 활용을 통한 로컬 디밍(명암의 국부적인 조절 가능)으로 버티더니, 자연색 구현은 양자점(QD, Quantum Dot)을 접목한 양자점 LCD 기술로 대등하게 견주고 있다. 언젠가는 OLED TV가 챔피언에 오르더라도 KO승이 아닌 고전의 판정승이 될 전망이다. LCD TV는 브라운관과 PDP처럼 소멸까지는 가지 않고 자신만의 영역을 지킬 수도 있다.

 

주병권 공과대 교수·전기전자공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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