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이케부쿠로 동쪽 상점가에는 개성 넘치는 옷을 입은 사람들과 코스플레이어들이 어우러져 활기찬 분위기를 자아낸다. 일본에 처음 와 본 친구는 저렇게 화려한 옷차림을 하고 거리를 거닐 수 있다는 것 자체에 놀랐다고 한다. 그러나 큰 도로를 건너 서쪽으로 가면 35도가 넘는 도쿄의 여름 날씨에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일제히 흰 셔츠에 검은 슬랙스를 챙겨 입고 퇴근하는 회사원들을 발견할 수 있다. 이렇듯 일본에서 엄격한 규율 사회의 면모와 무한한 개성의 면모를 함께 발견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일본에서 자주 쓰이는 어구가 있다. 바로 ‘空気が読めない人’라는 표현이다. ‘분위기를 읽지 못하는 사람’쯤으로 해석된다. 일본인은 이러한 사람들을 가장 불쾌해한다. 사회적으로 약속된 ‘합의’에 따라 행동해 민폐(迷惑, 메이와쿠)를 끼치지 않는 것을 제1의 미덕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규범을 어긴 이를 직접 지적하는 것도 꺼린다는 점이다. 대신 그 사람을 남몰래 ‘아웃사이더’로 단정 짓는 경우가 많아 일본 사회에 어우러지려는 외지인은 그 암묵적 규칙을 체득해야만 한다. 일본에선 날씨, 연차와 관계없이 출근할 땐 완전한 양복을 입어야 한다는 불문율이 있다. 그것이 상사와 거래처에 대한 예의고 이를 깨는 것은 민폐라는 사고방식이 박혀 있다. 도쿄 샐러리맨이 모두 같은 옷을 입고 있는 이유이다.

  그러나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행동해야 한다’는 제1원칙을 달리 생각해 보면 ‘민폐를 끼치지 않는 행위는 묵인된다’는 의미도 된다. 일본인은 이 ‘달콤한 빈틈’을 놓치지 않았다. 빈틈을 벌리자 쏟아져 나온 것들이 일본의 서브컬쳐(サブカルチャー)다. 애니메이션, 캐릭터 산업, 코스프레 등으로 대표되는 서브컬쳐가 일본의 전통적 규율과 다른 것처럼 보여도 그 근간은 일본의 독특한 색채에 두고 있다.

  주중에 열심히 돈을 번 샐러리맨도 주말엔 양복을 벗어 던지고 개성을 표현하며 온전한 자신만의 취미를 즐기는 ‘소확행’의 삶. 도쿄 라이프의 즐거움도 ‘달콤한 빈틈’에서 유래하는 것일지 모른다.

 

이용석(문과대 영문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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