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수학적인 입자물리에 관심

물리학 연구, 마라톤과 같아

“선진국다운 기초과학 발전 필요”

 

실험 입자물리학의 대가인 김영기(물리학과 80학번) 교수는 2024년 미국 물리학회장 취임을 앞두고 있다.
실험 입자물리학의 대가인 김영기(물리학과 80학번) 교수는 2024년 미국 물리학회장 취임을 앞두고 있다.

 

  “물리학의 포용성과 연결성으로 인류의 도전 과제를 풀어내겠습니다.” 김영기(물리학과 80학번) 미국 시카고대 물리학과 석좌교수는 내년 미국 물리학회 125년 역사상 두 번째 아시아인이자 첫 번째 한인 회장 취임을 앞두고 있다. 최근엔 기초과학의 무궁무진한 활용 가능성을 증명하기 위해 가속기물리학 연구에도 주력하고 있다. 평생 우주 만물을 이루는 입자의 고유한 힘과 근원을 찾는 여정을 걷고 있는 그는 물리학 발전에 수많은 협력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대학서 세상과 학문 깨달아

  어린 시절부터 무용을 좋아한 김영기 교수는 고려대 입학 후 탈춤 동아리에 들어갔다. “1, 2학년 땐 탈춤에 빠져 매일 신명 나게 놀았어요. 탈춤에 얽힌 민족성을 깨달으며 춤에 완전히 매료됐죠.” 민중의 애환을 토하는 수단인 탈춤의 저항 정신은 그를 책 밖 세상사에 눈뜨게 했다. “대학에 들어온 후 처음으로 당시 시대적 담론이던 민주화의 존재를 알게 됐어요.” 탈춤과 동아리에 대한 관심과 애정은 그를 학생운동으로 이끌었다.

  대학은 김영기 교수가 그의 인생이 된 물리학을 처음 만난 곳이기도 하다. 대학 진학 전까지 그는 수학에 빠져 있었다. 2학년이 되며 전공을 선택할 때 당연히 수학과로 진학하려 했지만, 친구들이 물리학과를 지망했다. 그는 친구들의 권유로 물리학(Physics)에서 이름을 딴 야구 동아리 ‘KUPHY’에 들어갔다. 동아리 부원들은 대부분 물리학과 학생들이었다. 야구에 대해선 전혀 몰랐고 지금까지도 야구공 한 번 잡아본 적 없지만, 사람들과의 교류가 좋았다. “물리학과 친구들에게 물리학의 다양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호기심이 생겼고, ‘정 안되면 수학과로 돌아간다’는 생각으로 물리학 전공을 선택했죠.” 덜컥 선택한 전공이었지만 공부할수록 현대 물리학의 매력에 흠뻑 빠졌다. “물리를 더 배우고 싶단 생각에 외국 유학을 결정했어요.” 해외여행조차 어렵던 시기, 외국 유학 준비에 1년은 턱없이 부족했다. 김 교수는 졸업 직후 유학은 어렵다고 판단해 고려대 대학원 진학을 선택했다.

 

  다양성·포용성 느끼게 해준 유학길

  수학에 대한 대학생 김영기의 애정은 대학원 진학 때도 여전했다. 그가 입자물리학을 석사 전공으로 선택한 것도 물리학 중 가장 수학적인 분야를 공부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입자물리학은 만물을 구성하는 가장 기초가 되는 알맹이 간 상호작용을 파악하는 데 초점을 둬요. 이를 위해선 전자와 같은 입자의 기본 알맹이가 질량이란 힘을 갖는 이유를 밝혀야 해요.” 그는 서로 다른 기본 알맹이들의 질량이 어디서 오는지 연구하는 것에 전념했다.

  김영기 교수는 꿈꿔왔던 유학 생활을 박사 과정에서 실현했다. 석사 졸업 후 미국 땅을 밟은 그를 환대해 준 이들은 미국 로체스터대 물리학과 한인 학생들이었다. 첫날부터 한인 학생들이 한집에 모여 같이 저녁을 먹으며 자연스레 하나가 됐다. 유학 시절 만난 음악학 박사 과정 대학원생은 김 교수의 가장 친한 친구 중 한 명이다. “외국살이의 어려움을 그 친구와 노래로 털어내곤 했어요. 운전 못하는 저를 미국 이곳저곳 여행시켜 주고 여러 음악 공연에도 데려가 줬죠.”

  외국에서 과학자의 길을 묵묵히 걸어갈 수 있었던 배경엔 고대정신이 있었다. “고대에서의 배움이 사람이 갖춰야 할 됨됨이가 무엇인지 깨닫게 해줬어요.” 그는 미국 페르미 국립 가속기 연구소에 부임하며 양성자-반양성자 충돌을 비롯해 입자가 질량을 얻는 이유를 쫓아 수많은 충돌의 연구를 진행했다. 해당 연구소의 부소장까지 역임하며 700여명의 과학자가 참여하는 연구를 지휘하기도 했다. 이때 모교에서의 경험이 그에게 다른 언어와 배경을 가진 수많은 연구자들을 하나로 연결할 힘을 줬다. “우리가 아직 관측하지 못한 우주 암흑 물질의 입자를 찾기 위해선 한 대학을 채울 만큼의 많은 연구자가 한 가속기에 매달려야 해요. 이처럼 현대 물리학은 그야말로 사람과 사람의 연결에서 시작과 끝이 결정돼요.”

 

  연결의 물리학, 이젠 세계로

  김영기 교수는 우주 물질을 구성하는 입자의 근원에 다가갈수록 자신의 도전이 긴 마라톤 같다고 느꼈다. “2012년 힉스 입자 존재가 완전히 규명됐고, 기본 입자가 힉스 전하와 충돌하며 질량을 갖는다는 것이 밝혀졌어요. 그럼에도 기본 입자가 왜 충돌로 각각 다른 질량을 갖는지는 여전히 미궁이에요.” 이런 생각은 그가 기존의 입자물리학을 넘어 가속기물리학으로 연구 분야를 확장한 계기가 됐다. “핵물리든, 생명물리 연구든 물질의 가장 작은 알맹이인 입자를 찾아내기 위해선 입자 가속기가 필요해요. 마치 별자리를 살피기 위해선 아주 좋은 망원경이 필요한 것처럼요.” 그는 방사광가속기 등 여러 종류의 가속기를 잘 활용할 수 있는 방법과 더 작고 효율적인 가속기를 만드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 “가속기는 공장 기계처럼 무조건 크게 만든다고 좋은 게 아닙니다. 제가 기초과학자로서 가속기를 만드는 과정에도 함께하는 이유예요.”

  2017년부터 김영기 교수는 6년간 시카고대 물리학과장을 역임했다. 김 교수는 모든 연구의 학과 간 벽을 없애는 데 집중했다. “만약 모든 물리학자가 똑같은 사람이라면, 개개인의 강점은 한없이 강해지지만 약점도 한없이 강해질 거예요. 이러한 사람들이 만들어 낸 연구가 의미 있을까요?” 그가 경험한 미국 물리학의 성공 요인은 사람과 사람, 학문과 학문 간 연결이었다. “시카고대에선 연구에 있어 연구자 소속이 아무런 의미를 갖지 않아요. 물리학 전공으로 입학한 대학원생이 화학과 지도교수를 선택할 수 있는 자유로운 분위기가 만들어졌죠.”

  김영기 교수는 시카고대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다음해 미국 물리학회장 취임 후 물리학을 매개 삼아 국가 간 연결을 더욱 강화할 계획이다. “이미 미국 물리학회원의 25% 이상은 미국 외 국가의 연구자입니다.  외국인 학회원에 대한 지원을 넘어 미국 밖 국가와 더 적극적으로 협력해야 해요.” 그는 아프리카와 남아메리카 국가 등 여전히 기초과학 육성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국가에 직접 손을 내밀고자 한다. “미국 물리학의 높은 연결성을 북미 대륙 바깥 공간으로 더 확장해 보고 싶어요.”

 

  선진국의 과학은 열린 교육에서

  올해 6월까지 김영기 교수는 재미한인과학기술자협회장으로서 국내 과학 인재 육성에 힘썼다. “한국의 기초과학을 위해 돕는 게 당연한 도리라고 생각해요.”그는 지난 6월 충북과학고 학생들과 화상으로 만난 데 이어 지난달 26일에도 시카고대를 찾은 서울과학고 학생 80여 명을 대상으로 강의를 진행했다. 학생들과 만나며 도리어 자신이 많은 걸 배웠다. “연구자는 자신의 연구를 대중에게 말로 전할 수 있을 때 더욱 성장해요. 학생들과의 강의를 준비하며 제 연구를 되돌아보기도 하고, 연구에 대한 학생들의 생각지 못했던 반응에서 새로운 보람을 느끼기도 해요.”

  김영기 교수는 한국이 과거의 연구 방식에서 탈피하길 바란다. “우리는 선진국들이 이미 만들어 놓은 기술 체계를 빠르게 베껴 생산에 적용했어요.” 선진국 대열에 들어선 한국도 이제 기초과학을 기반으로 기술 우위를 선점해야 한다는 뜻이다. “기술 분야 기업, 연구자들도 결국엔 기초과학에서 앞서야 한다는 걸 점점 느끼는 것 같아요. 선진국의 과학은 기초과학에서 출발해 응용과학기술이 한데 어울려 생태계를 갖추는 것이에요.” 김 교수는 인류 사회 공동의 문제 해결을 위해서도 기초과학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과거와 달리 기후 변화처럼 기초과학이 답을 줘야 할 문제가 더 이상 한 나라만의 힘으로 풀리지 않아요.”

  모교에 대한 애정도 꾸준히 드러냈다. 2012년 ‘자랑스러운 고대인상’을 수상한 김영기 교수는 지난해 10월 고려대 하나스퀘어에서 ‘꿈꾸는 청년들과 함께 나누는 과학의 길 그리고 미래’를 주제로 기초과학 대중강연을 진행했다. 그는 고려대 역시 포용성을 바탕으로 이공계 교육이 더욱 발전하리라 믿는다. “더욱 열린 사고로 연구와 교육의 내실을 강화했으면 해요. 협력의 범위를 같은 대학, 같은 국가 등으로 제한하지 말고 모두를 포용할 수 있는 연구를 해야 합니다.”

 

글|이경준 기자 aigoya@

사진제공|김영기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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