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우물 안 개구리’라는 표현에 십분 공감한다. 반복된 루틴에 지쳐 뉴욕 빙햄튼 대학교에 교환학생 생활을 시작한 것도 그러한 이유다. 루틴은 내 세계를 조르는 덩굴이다. 그러나 도망친 곳은 또 다른 우물일 뿐이었다.

  처음에는 그저 내 세계가 넓어졌다고 느꼈다. 미국은 나무조차도 한국과 달랐다. 미국 나무는 옆으로도 거대하게 자란다. 마치 외계 생명체를 보는 기분이다. 같은 뉴욕 주안에서도 차로 3시간씩 걸리며 이동하고, 도시마다 분위기도 매우 다르다. 발음도 달랐다. 알파벳 ‘O’를 울리게 발음하지 않으면 사람들이 이해하질 못했다.

  도착한 첫날, 마트에서 지나가던 사람이 일행에게 갑자기 말을 걸었다. 인종차별일까 움츠러들었지만, 패딩이 예쁘다고 말할 뿐이었다. 어느 날은 대학생 무리가 다가와 “너라면 무슨 맛 아이스크림을 살 것 같아?”라 물어봤고 내가 골라준 맛을 사갔다. 이런 스몰톡에 익숙해지는 데 꽤 시간이 걸렸다. 스스로 E 성향이라 생각했지만 미국인의 친화력에 기가 눌렸다. 미국에 온 지 2달이 넘어가는 지금, 이제는 이 문화도 루틴이 돼간다. 하지만 답답함을 느끼진 않는다. 이곳도 여러 제약이 있는 우물이지만, 어떤 우물에 있는지 인식하고 언제든 다른 우물로 넘어갈 준비도 할 수 있게 됐다.

  미국 생활에서 ‘personal space’를 배웠다. 미국인들은 최소한 두 뼘 거리는 떨어져 있어야 예의라고 생각한다. 장을 보다가 서로의 카트가 가까워지면 “my bad, sorry”라고 말하는 것이 생활화돼있다. 룸메이트에게 사생활을 아낌없이 말하지만, 조언은 최대한 아껴서 듣는다. 한 번은 라면을 처음 먹어 보는 룸메이트가 너구리에 다시마도 넣지 않고, 납작한 접시에 물만 붓고 요리하는 것을 봤다. 나는 “다시마랑 스프 안 넣어?”라 물었다. 룸메이트는 본인 알아서 하고 싶은 대로 하겠다 대답했다. 설령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어도 상대는 과한 반응으로 느껴졌을 수 있겠다는 점을 새로 배웠다.

 

 

  마지막으로 우물 안에 있더라도 배움은 행동에 따라 현저히 달라진다는 점을 배웠다. 영어 실력에 부족함을 느껴 학교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동아리에서 스몰톡을 하고, 수업에서 짧은 영어로 발표도 했다. 그랬더니 말하는 속도가 생각하는 속도를 앞지르기 시작했고, 춥게만 느껴졌던 빙햄튼의 바람에서 파릇파릇한 흙냄새를 느끼고 있다. 우물은 여전히 우물이지만, 때로는 목을 축일 수 있는 소중한 환경이기도 하다는 점을 미래의 나도 꾸준히 기억하길.

 

임지수(문과대 영문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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