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80년대는 우리나라 출판계가 약진했던 시기입니다. 해직기자, 해직교수들이 주축이 돼 지식사업으로서의 출판업의 위상을 한껏 드높였기 때문입니다. 정당성에 근거하지 않은 정권은 판매금지 도서 목록을 정해 책을 모두 압수하고 저자나 책을 발행한 출판사 인사들도 같이 단압했습니다. 『해방전후사의 인식』,『우상과 이성』등의 금서를 출간한 김언호 한길사 대표는 그 시대의 대표적인 출판인입니다. 본지에서는 김언호 대표를 찾아가  △당시의 책들이 판매금지 처해진 이유는 무엇인가 △정권들이 금서목록을 정함으로써 얻고자 했던 결과는 무엇이었나 △한국출판계에서 1970∼80년대는 무슨 의미를 지니는가 △현재 출판시장에 있어서 왜곡된 모습은 없는가 등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한국 사회 금서의 연유는 무엇입니까?
- 저는 책의 기능을 세 가지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지식과 정보 전달기능이고, 또 다른 하나는 정서적 기능입니다. 마지막으로 책은 우리에게 사회를 인식하게 하지요. 이러한 기능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출판계에 종사하게 됩니다. 이런 책이라는 매체는 대중에게 굉장한 전파력을 행사합니다. 바로 여기에 금서 생성의 논리가 숨어있습니다.
당시 정권의 입장에서는 젊은이들이 오늘날의 현실을 개선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고, 그런 생각을 촉구하게 되는 매체가 바로 책이라는 생각에 금서조치를 내렸던 것입니다. 실제로 유신정권 때, 지식인들은 유신정권에 대항하는 당시 지식인들은 권력을 비판하고 민족적 가치를 증대하려는 책을 출판하려고 했습니다. 결국 권력과 지식인, 권력과 출판사는 갈등관계에 놓이게 됩니다.  

△‘판금도서’하면 보통 1970∼80년대를 일컫습니다.
- 한국의 출판문화는 1970년대 중반이후부터 새롭게 전개됩니다. 양심적인 민족주의자들, 진보적 자유주의자들, 이런 사람들이 유신정권과 대결체제를 갖추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박정희 군사정권이 비상조치를 통해, 강압적으로 정권을 유지하려 하자 지식인들은 자유로운 성향을 표출하게 됩니다. 사실 자유로운 언론이 지식인들의 특성이고, 사회의 원동력인데 본능적으로 언론과 학계에는 막혀 있었으니, 책이라는 매체를 통해 글을 쓰면서 의견을 표현해 해결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죠.

△우리 사회에서 금서의 의미는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
- 국가 보안법, 이를테면 사회주의 또는 북한을 찬양하는 주제의 내용이 한국에서 금서로 규제됐다는 것은 분명 분단 상황의 소산입니다. 분단을 전제로, 북한을 예찬한다, 사회주의 집단을 예찬한다, 그 이데올로기를 높이 평가한다, 이렇게 해서 기본적으로 분단의 상징을 설명하는 것조차 금서현상으로 인해 억압당했습니다.
당시 해직교수, 해직 언론인, 노동자, 교사들은 개인적으로 고통을 많이 받았지만, 그들이 조직적으로 새로운 출판운동에 가담함으로써 한국 정신사에 굉장히 위대한 유산을 창출해냈습니다. 지식인들이 감옥에 가고, 출판계에서 출판한 많은 책이 압수되는 상황에서 그 시대 시대상황과 조건을 극복해내려는 에너지와 이론의 기반이 조성된거죠. 금서야말로 시대를 변혁시키는 상징적인 존재라 할 수 있죠. 금서가 생기면서 금서를 없애야겠다는 의식을 창출해내는 그런 점은 오히려 역사발전에는 다행이라고 볼 수 있죠. 

 

  금서는 정당성 없는 정권이 낳은 결과물
  1970∼80년대 한국 정신사 금서 반영돼

 

△당대 정권은 금서를 통해 어떠한 효과를 얻으려 했습니까?
- 정권은 금서로 인해 권력이 행여 무너지지 않을까 하고 염려했습니다. 또한 그들은 특정도서가 사회의 미풍약속을 교란시킨다고 생각합니다. 본질은 사실 권력자들의 민주적이지 못하고 비합리적인 데서 비롯된 것인데, 그 사람들은 그것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유신정권이 무너진 것이 어떤 책 한 권 때문에 무너졌겠어요? 그 자체가 갖고 있는 문제점들, 그런 것들 때문에 허물어진 것인데, 정치권력자들은 자신들 때문이 아니라 외부요소에 의해 그렇게 됐다고 주장하는 거죠.

△판금도서의 대표적인 예로는 리영희 한양대 대우 교수의 『우상과 이성』, 『전환시대의 논리』등이 있습니다. 그 중 「한길사」는  『우상과 이성』을 발행했습니다.
- 『우상과 이성』 필화 사건이 가장 전형적인 예입니다. 책이 금서로 지정되면서 저자가 구속되고 출판사는 조사를 받게 됐습니다. 그 사건은 이후 「한길사」가 정부의 감시를 받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습니다. 「한길사」의 경우 그 책을 발행한 후에, 『민족경제론』이란 책을 펴냈습니다. 처음에는 괜찮을 것이라고 짐작했지만 석 달 뒤에 금서 조치가 적용되더군요. 

△『해방전후사의 인식』을 통해 무엇을 말하려 하셨습니까?
- 그 책은 해방전후 식민지 해방운동, 독립하는 과정에서 분단된 이유, 통일을 이루지 못한 이유에 대해 논의를 담고 있습니다. 유신정권이 마지막 이후 박대통령 시해사건이 생기면서 계엄령이 선포되고, 이 책은 판금도서로 낙인찍히게 됐지요. 친일파 이야기를 집중적으로 했다는 것이 그 이유였습니다. 친일파들의 군상이 어떻게 형성됐고, 해방 이후에 어떻게 정권을 잡는 데 참여했느냐는 것을 담은 임종국 씨의 글이 문제가 됐지요. 결국 판금됐는데, 후 일부를 수정되고 80년대 ‘서울의 봄’을 통해 살아났습니다.

△1980년대는 한국출판계의 전환기로 불리고 있습니다.
- 아마 1980년대에만 해도 판금된 도서가 500여권은 됐을 겁니다. 재미있는 것은 1980년대에는 젊은이들이 갈 곳이 마땅치 않아 출판사에 취직을 하게 됐다는 점입니다. 그들은 대부분번역 작업을 맡았는데 덕분에 해외 양서들이 예전에 비해 많이 소개될 수 있었습니다. 사회과학의 시대였던 80년대, 출판업계에서는 사회과학적 인식을 담아내는 책들이 대거 발행됐습니다.

출판, 미래의 향방을 끊임없이 모색해야

독자·지식인·사회, 더 열린 자세 가져야 
  
 

△오늘날 출판업계 환경은 어떠합니까?
- 우리사회가 암울한 시대를 지나 억눌렸던 정서를 분출하게 되는 등 자유로운 상황에 놓여있다고 생각하는데, 그렇다면 한국 출판이 문제가 없느냐 그것은 아닙니다. 물론 국가차원에서 마련된 금서와 같은 제재가 자취를 감춘 것은 사실입니다. 우리사회가 지난 1970, 80년대 보다 급격하게 자유로워졌죠. 언론의 자유 또한 요즘은 또 너무 자유로워서 탈 아닌가요? 
오늘날 출판은 너무 상업주의를 좇고 있어요. 그러나 먼저 진정한 수용가치가 인정될 수 있을 정도의 인프라가 구축이 선행돼야 합니다. 1980년대에 열렬하게 민주화를 외치고, 우리 사회를 개혁하겠다고 주장하던 사람들이 어떻게 보면 현실에는 너무 안주해있지 않나 생각이 듭니다. 끝이 아니거든요. 앞으로, 가령 2000년 현재 우리가 가야할 길, 인간으로서 궁극적으로 탐구해야 하는 일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모색해봐야겠죠. 그런 의미에서 좋은 책을 기획해서 만들고, 읽히게끔 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출판과 관련해, 한국 사회 기저에 깔려있는 문제점은 무엇입니까?
- 한국만큼 출판사가 많은 나라도 없어요. 너무 쉽게 회사를 만들고, 책을 출판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다음으로는 독자들의 성향에 있다고 보는데요. 책을 ‘너무’ 좋은 책, 나쁜 책으로 규정짓지는 말라는 겁니다. 그것도 위험한 흑백논리예요. 가령, 과일도 사과, 배, 포도, 복숭아 모두 고유한 맛이 있듯이 책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가 좋다고 그것만을 고집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독자 스스로 이런 책, 저런 책 읽어서 직접 판단하게끔 하는 문화가 형성이 되어야 해요. 이 책의 이 부분이 좋다 하면 받아들이는 거죠. 우리사회가 양서다, 악서다 구분하는 이상한 병폐가 있어요. 1970, 80년대 판금도서를 규정한 것도 그러한 구분에 의한 것이었지요. 독자들도, 지식인들도, 사회도 조금씩 더 열려야 해요. 독자는 책을 통해 다양한 정서를 수용해서 총체적으로 인격을 형성하고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을 길러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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