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자유주의의 득세와 함께, 대학도 예전의 지위와 역할로부터 많이 변화되고 있다. 고대 역시 Global Pride를 모토로, 국내 대학 뿐 아니라, 세계 명문 대학과의 경쟁을 위해 좀 더 효율적인 시스템으로 구조 조정을 하고 있다. 재정적 여유가 있는 학생만이 등록 가능한 액수로 등록금을 인상하고, 선진대학의 이미지를 부각시키기 위해 각종 건물들을 증축하고, 경쟁력이 있는 분야에 집중 투자하는 등 변화를 꾀하는 모습들을 이곳저곳에서 볼 수 있다. 

내 느낌만 그런 것일까? 예전의 고대가 사립대임에도 공적인 교육기관의 이미지를 풍겼다면, 지금은 세련되고 날렵하게 가꾸어진 기업체의 모습을 닮아가는 것 같다. 물론, 외국 대학에 교육시장이 개방되고, 점점 더 첨예화되어 가는 경쟁사회에서 살아남는 대학이 되기 위해선 구태의연한 예전 모습에만 매달릴 수 없다고 할지 모르겠다.

그렇다면 묻고 싶다. 시스템은 기업형이 되어 가는데, 왜 아직도 마인드는 권위적인 학교의 그것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지. 학생들이 더 이상 학교의 주체가 아니라, 대학교육이라는 서비스를 소비하는 소비자의 위치로 변모당한 이상, 그에 맞는 혜택을 누리는 것이 마땅하지 않는지. 서비스업의 대표 주자인 이동통신업체의 간드러지는 안내에 비교하자는 것이 아니다. 재단에서부터 각 단대의 학사지원부에 이르기까지, 엄연한 소비자를 전통적 의미의 학생 대하듯 하는 태도는 적어도 이 정도의 규모를 지닌 서비스업체의 것으로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개개인의 태도뿐만이 아니다. 지금까지 학교를 다니면서 어느 한 순간도 내가 소비자로서 대우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던 적이 없다. 학교 정책을 입안하면서 학생들에게 설문 조사 한 번을 했던 기억이 없고, 불만사항을 접수할 창구가 마련되어 있다는 소식도 들어본 적이 없다. 소비자의 대표단체 격인 총학생회의 지위를 우습게 여김은 물론, 작년에는 총학생회장의 제적을 강행하기도 하였다. 현재의 재학생은 혜택을 볼 수 없을 공사를 진행하면서도 불편에 대한 양해의 말 한 마디 듣지 못했다.  

강압적인 초중고 교육의 결실인지, 우리 학생들 역시 그러한 위치에 너무 길들여져 있는 것 같다. 물론 대학이란 서비스 품목의 특성상, 만족스럽지 않다고 해서 이용하던 상품을 다른 학교의 것으로 바꾸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그렇기에 더욱더 소비자가 스스로의 위치를 자각하고 당당히 요구해야만 기업의 잘못된 점을 바로잡을 수 있다.

학교 당국은 기업과 교육기관의 사이에서 입장을 분명히 해야 한다. 두개의 잣대를 가지고 유리한 쪽으로만 학교와 학생의 관계를 규정하는 행태를 바로잡지 않는 이상, 명문 사학으로서의 명성도, Global Korea로서의 경쟁력도, 그 성장의 한계를 벗지 못함을 알게 되길 바란다.    

이돈욱  (생명과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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