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은 한국영화의 선구자 춘사(春史) 나운규(羅雲奎) 선생의 탄생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춘사 나운규 선생은 21세 때 신극단 「예림회」의 회령공연을 계기로 영화계에 입단, 식민지시대의 민족 정신을 일깨우고자 1926년 우리 민족의 수난과 저항을 소재로 한 『아리랑』을 발표했다. 그의 대표작인 『아리랑』은 쇼트(샷)를 연결하여 새로운 의미를 창조하는 몽타주 기법이 우리나라 최초로 도입된 작품이며, 무성영화 시대 한국영화 중에서 가장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처럼 예리한 관찰력과 풍부한 상상력을 바탕으로 영화에 새로운 기법을 도입하고 발성영화를 기획하는 등 초창기 한국영화의 중심에 서있는 춘사 선생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고자 여러 가지 행사가 준비되고 있다.

먼저 한국영화감독협회와 춘사나운규기념사업회는 오는 12월 26일 「제10회 춘사 나운규 영화예술제」를 개최할 예정이다. 임원식 춘사나운규영화예술제 집행위원장은 “재정상의 문제로 행사를 준비하는데 어려움이 있지만, 다른 영화제와의 차별을 통해 춘사 나운규의 진정한 영화정신인 창의성, 예술성, 민족성을 기리고자 한다”는 취지를 밝혔다. 또한 김규동 시인이 쓴 춘사 탄생 100백주년 기념시비 건립, 춘사 나운규 영화총람 출판, 선생에 대한 심포지엄 개최 등의 기념행사도 준비되고 있다. 특히 영화제 전야제에 열리는 나운규 선생에 대한 심포지엄은 선생에 대한 연구적 성격의 심포지엄이라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춘사정신' 담은 기념행사 준비 중 
 영화계, 선구자 조명작업 관심 필요
 

뿐만 아니라 춘사 나운규 선생의 대표작 『아리랑』이 촬영돼, 현재까지도 ‘아리랑고개’로 불리워지는 돈암사거리에서 정릉으로 이어지는 1천3백 미터 구간이 ‘영화의 거리’로 새단장된다. 성북구청 홍보과 이봉호 씨는 “나운규 선생의 『아리랑』이 촬영됐던 구간을 한국 영화예술 정보의 산실로 만들고자 하는 계획이 진행 중”이라며  “2003년까지 공연장, 영화기념관, 예능도서관, 테마공원이 들어서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춘사 나운규 선생 탄생 100주년을 맞아 그의 대표작 『아리랑』의 필름 존재여부에도 다시금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아리랑』은 지금까지 아베 요시시게(安部善重) 라는 일본인 영화수집가가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왔으나, 만일 보관돼 있더라도 당시 질산염 필름이 사용된 이상 현재 상당부분 훼손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임원식 집행위원장은 “나운규의 『아리랑』 필름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며 “현재 남아있는 시나리오를 통해 『아리랑』의 영상을 그 시대 모습대로 재현하려는 노력이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한편, 그동안 나운규 선생과 관련해 그가 『아리랑』의 진짜 감독인지에 대한 의문과 일본인의 자본을 동원해 영화를 만든 것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가 제기돼 왔다. 이에 대해 임원식 집행위원장은 “일본의 탄압을 피해 일본인을 감독으로 내세웠던 것일 뿐”이라며 “영화를 관람했던 사람들의 증언을 통해 나운규가 『아리랑』의 감독임이 확인된 바 있다”고 말했다. 또 안숙원 시민모임 두레 연구위원은 “그가 일본인의 자본으로 영화를 제작했다는 사실보다는 그가 한국 영화에 남긴 업적과 민족주의가 반영된 그의 작품을 더 높이 평가해야 할 것”이라는 견해를 밝혔다.

우리나라 근대문학을 이끌어온 선각자들에 대한 연구 및 조명작업이 활발한 문학계와 비교해 볼 때, 선각자들에 대한 이렇다할 조명이 이뤄지지 않는 영화계의 현실은 영화계의 급속한 세대교체와 영화계 전반에 팽배한 상업주의로 인해 더욱 심화되고 있다. 탄생 100주년을 맞는 나운규 선생의 삶과 영화를 규명하는 이번 행사들은 한국 영화의 진정한 뿌리를 찾는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있다. “나운규는 한국영화의 오늘을 있게 한 북극성”이라는 강신성일 춘사나운규기념사업회장의 말처럼 그가 한국영화에서 차지하고 있는 위치에 비해 그를 조명하려는 작업은 다소 늦었지만, 영화인들은 물론 영화를 사랑하는 이들의 관심이 모아진다면 한국 영화가 보다 튼튼한 뿌리를 갖고 발전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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