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
내가 태어난 1984년은 우리나라 국민들에게 처음으로 해외여행의 자유가 부여된 해이다. 그 때문일까, 어쩌다 역마살이 끼어 언젠가부터 나는 시간과 경제적인 여유가 있으면 배낭을 짊어지고 어디론가 훌쩍 떠나버리는 상상을 하며 살아왔다.
나는 소위 남들이 말하는 전형적인 공돌이다. 다른 공학도들처럼 학기 중에는 아침 일찍부터 밤늦게까지 도서관에 박혀서 레포트쓰랴 숙제하랴 시험 공부하랴 대학생활의 진정한 낭만(?)이라고는 느끼기 어려운 생활을 하며 살고 있다. 그러다보니 2달 동안 주어지는 방학기간은 정말 꿀맛과도 같을 수밖에! 그리고 그 소중한 시간동안 나를 재충전시키고 학교에서는 배우지 못한 또 다른 무언가를 배우기 위해 어디론가 훌쩍 떠나곤 했다. 내 나이 23세인 지금까지 대략 30여 개국 정도를 여행 했던 것 같다. 부모님과 함께한 여행도 있었고 한푼 두푼 모은 과외비를 털어서 다녀온 적도 있었다. 여행의 진정한 맛을 알고 있다고 하면 건방진 소리일까, 하지만 나는 나름대로 나만의 여행 스타일과 가치관을 가지고 그것을 지키려고 노력해왔다.

우선, 여행경비는 가능하면 스스로 해결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경비의 전부를 스스로 충당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겠지만 자신의 능력껏 경비를 모아서 총 여행경비에 보태는 것이다. 기껏해야 한 달이 채 안 되는 여행기간을 위해서 학기 내내 밥 한끼 먹을 때마다 계산대 앞에서 고민하고 사고 싶은 옷과 물건이 있어도 항상 망설이다 결국 포기하고, 이러한 내 모습을 볼 때면 답답하기도 하지만, 여행을 위해 평소 절약하는 습관을 몸에 익숙하게 하는 것과 큰 목표를 위해서 작은 것을 희생하는 방법을 배우는 과정, 이것이 모두 다 여행의 일부라고 생각한다.

둘째, 문화적인 괴리를 인정한다. 문화적 이질감이라는 울타리에 들어갔다 도로 뛰쳐나올지언정 겁을 내어 그 안으로 들어가지도 못하고 주변에서 맴도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나와 다른 생각과 문화가 몸에 익숙해져있는 사람들의 공간으로 과감하게 내 마음과 몸을 던지고 그 낯설음을 즐길 수 있는 역량이 필요하다. 자신과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지구촌 어딘가에 분명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새삼 확인한다. 그러면서 자신의 생각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돌아올 수 있고 이러한 과정에서  좀더 열린 사고방식과, 자신의 사고방식에 대한 아집을 버릴 수 있는 능력을 키우게 된다. 이것은 우리가 평생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윤활유와 같은 역할을 해줄 것이다.

셋째, 나에게 여행의 묘미를 알게 해주신 아버지께서는 높이 나는 새가 멀리 본다는 말이 있듯이, 철저한 사전 준비는 그 여행의 성공을 보장한다고 하신다. 여행을 준비하는 과정에 있어서 수많은 난관과 시행착오를 겪게 된다. 하지만 이것들이 다 여행의 일부일 뿐이고 자신의 부족함을 느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다. 마지막으로, 여행에서의 위기를 즐겨줄 알아야 한다. 여행을 다니다 보면 예상치 못한 일로 곤경에 처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중요한 물건을 잃어버렸다든지, 체력이 떨어져 돌아다니는 것이 너무 힘들다든지 이런 상황들은 자신의 역량과 위기 대처능력을 시험해볼 수 있는 절호의 찬스이다.

딜레마에 빠지다
여행을 가기 전 빠지게 되는 딜레마는 이곳을 갈까 저곳을 갈까, 여행지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겪게 된다. 몇몇 딜레마 중 가장 여행자를 힘들게 하는 것은 바로 새로운 곳을 찾아 떠나느냐 아니면 이미 검증된 곳으로 다시 떠나느냐 하는 것이다. 나에게 가장 인상 깊었던 여행은 어디냐고 묻는다면 나는 망설임 없이 호주라고 답할 것이다. 호주는 내가 처음으로 혼자서 여행을 한 곳이기 때문인지 몰라도 그곳에서의 일거수일투족이 기억에 남아 아직까지 내 마음속에서는 최고의 여행지로 기억되고 있다. 호주를 다녀온 이후에 여행계획을 세울 때마다 나는 딜레마에 빠졌다. 나에게 소중한 기억들을 안겨준 호주로 다시 떠나느냐, 아니면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또 다른 세계를 찾아 떠나느냐로 많은 고민을 해야 했다. 특정 국가 혹은 도시의 매력에 빠진다는 것, 내가 항상 살고 있는 이 도시가 아닌, 전혀 다른 풍경과 다른 문화를 간직한 도시를 찾아가는 것, 어찌 보면 단순히 물리적인 이동으로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정말로 가슴 벅차고 뭉클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누구나 자기가 살고 있는 동네가 가장 익숙하고 편하기 마련이다.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이 살고 있는 공간, 그 틀 속에 갇히게 된다. 익숙해짐. 내가 살고 있는 이 울타리, 이 틀 속에서 몸을 맡긴 채 살아가고 있고,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그런 생활을 당연한 것으로 간주한다. 여행을 통해서 그 틀을 잠시 벗어나는 순간, 나는 말로 표현하기 힘든 쾌락을 느낀다. 그동안 무의식적으로 갇혀있었던 틀을 깨고 벗어나는 것. 그것이 여행의 묘미 중 하나아닐까.

내가 떠나는 이유
너는 왜 그렇게 여행이 좋으냐고 묻는다면 나는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다. 세계는 평평하고 나는 그 세계 안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계속해서 여행을 갈망하는 이유는 새로운 곳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 머릿속 어딘가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나와는 전혀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들, 다른 문화에 젖어 있는 사람들과 마주치며 살아보고 싶은 꿈이 있다.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사람 이지만 한국인이기 이전에 난 그냥 남들과 똑같은 '지구촌 사람들' 아닌가. 한국에서 태어난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하지만 난 한국인 이라는 존재 이전에 60억 명과 똑같은 지구촌 사람으로서 자부심을 느껴보고 싶다.

“여행을 다녀오면 내 주머니에 남는 것은 동전뿐이다. 하지만 내 가슴속에는 세계가 있다.”

김우진·공과대 기계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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