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여성을 닮은 칙북, 변화된 가치관을 말하다
현대여성을 닮은 칙북, 변화된 가치관을 말하다
  • 정지은 기자
  • 승인 2007.04.08 22: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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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쾌하고 가볍게 도시 속 생활과 꿈 표현해
▲ <브리짓 존스의 일기>와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에서는 도시 여성들의 삶이 표현된다. 위 사진은 이들이 각각 영화화 된것
“너 칙북 읽어봤니?” “그게 뭔데? 새로 나온 책 이름이야?” “그럼 아직도 <여자생활백서> 못 읽어 본거야?” “그 책은 지난달에 읽긴 했는데, 칙? 칙 뭐라고?”

일상생활에서 익숙할 법한 이야기도 색다른 표현으로 말하면 낯설어진다. 단어는 낯설지만 생활 속에서 친근한 문학 장르가 바로 ‘칙북(chick-book)’이다. 최근 국내 서점가에서 <달콤한 나의 도시>나 <쇼퍼홀릭>과 같은 책이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정작 이들을 가리키는 ‘칙릿(chick-lit)’이라는 말에는 고개를 갸우뚱하는 사람들이 많다.

칙릿이란 여성을 의미하는 속어 'chick'과 문학 ‘literature’을 결합한 신조어로, 도시 여성들의 일과 사랑을 가볍게 풀어낸 소설을 말한다. 칙릿은 지난 1996년 영국에서 헬렌 필딩의 <브리짓 존스의 일기>부터 시작됐다. 이후 여주인공의 색다른 직업이나 패션, 쇼핑 중독 등 흥미로운 소재가 가미되면서 하나의 문학 장르로 자리 잡았다.

국내 칙릿의 대표작으로는 정이현 작가의 <달콤한 나의 도시>를 들 수 있다. 이 작품은 서른한 살 여주인공을 통해 미혼여성들의 도시생활 이야기를 풀어내 독자들에게 좋은 반응을 이끌어 냈다. 실제로 인터넷 서점 ‘YES24’에 따르면 <달콤한 나의 도시>의 구매자 중 20대 여성 구매자는 37%에 달하는데 30대 구매층까지 더하면 70%를 넘어선다.

이러한 칙릿의 대표적인 특성으로는 경제적 독립과 욕망을 중시하는 젊은 여성들의 감성을 담아내고 있다는 점이다. 칙릿에는 몇 가지 공통적인 흐름이 있다. 우선 주로 광고나 언론, 패션업계에 종사하는 여주인공이 등장한다. 또,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가벼운 분위기의 글이 대부분이다. 그리고 결말 역시 ‘주인공이 인생의 교훈을 얻고 성장한다’는 내용이 많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를 출판한 문학동네 편집부 직원 이현자 씨는 “아무래도 패션이나 트렌드가 극중에 많이 등장해 젊은 여성층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킨 것 같다”며 “순수문학에 비해 문학성은 떨어진다고 하지만 주인공의 자아탐색 과정에 많은 이들이 공감한다”고 말했다
.
칙북은 칙릿의 특징적 요소는 그대로 담되 소설의 틀을 벗어나 에세이나 자기계발, 생활지침서의 형태로 진화한 것이다. 주로 20대의 젊은이들이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정보 제공 역할을 하거나 인생에 필요한 조언을 하는 내용이다.

대표적인 예로 남인숙의 <여자의 모든 인생은 20대에 결정된다>는 1권에서 여성의 사고방식과 철학을 다뤄 인기를 얻었다. 이후 속편에서는 ‘후천적 귀족으로 진화하라’는 주제로 총체적인 자기관리법을 제시했다. 이와 비슷하게 직설적이고 감각적인 주제로 현대 여성들의 인생에 대해 충고하는 <여자생활백서>는 작년 4월 출간 이후 지금까지 35만부 이상 판매됐다.

물론 지금까지 이런 종류의 책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지난 1993년에 출간된 <나는 초라한 더블보다 화려한 싱글이 좋다>는 잡지 <코스모폴리탄>의 편집장이었던 헬렌 브라운이 젊은 여성들을 향해 쓴 자기계발서로 당시 최고의 베스트셀러였다. 이 책은 칙북의 초기 모습을 잘 보여준다.

그 후 칙북은 스스로 발전을 거쳐 최근 문학의 새 분야로 떠오르게 됐다. 최근 한 인터넷 서점의 통계에 따르면, 2006년도 자기계발 분야에서 남성독자는 2005년에 비해 2배 정도 증가한데 비해, 여성독자는 4배 가량 증가했다.

해냄 기획편집부 장한맘 팀장은 “딱딱하고 진지한 형태에서 벗어난 칙북의 출간과 인기는 당분간 계속 되겠지만 내용 없이 가볍기만 서적은 외면 받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 (사진-정회은 기자)
칙북에 대한 의견은 다양하다. 공감대 형성과 새로운 여성상의 등장에 대해 긍정적으로 보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작품성 없는 통속물이나 화보가 연상되는 패션잡지 같다는 비판도 있다. 이에 대해 이혜원 문학평론가는 “칙북은 문학성에서 미흡한 부분이 있지만 순수 문학과는 달리 대중의 이야기를 무겁지 않게 다뤄 부담 없이 볼 수 있다”며 “문학을 보는 시야가 넓어졌다는 점에서 또 다른 의미 있는 문화적 현상”이라고 말했다.
출판업계에서는 사회적 우려나 비판과 관계없이 젊은 세대의 다양한 시대적 욕구를 담아내는 칙북의 인기가 올해도 지속될 것으로 예상한다.

이에 이경수 문학평론가는 “칙북은 변화된 젊은이들을 대표하는 현상이긴 하나, 무조건 책 한 권만 읽으면 성공적인 20대를 보낼 수 있을 거라는 환상을 부르기도 한다”며 “성공 방향을 세속적인 기준에 맞춰 일러주는 방식으로 나아가서는 곤란하다”고 지적했다. 더불어 “칙북이 일시적 유행을 넘어 독자들에게 인정받는 책으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자기 성숙의 과정이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최근 우리 사회의 독서 경향에서 나타나는 특징은 ‘여성’이다. 독자들은 딱딱하고 진지한 형태의 책에서 벗어난 새로운 감각의 책을 원하고 있다. 칙북은 이에 발맞춰, 독자들이 더 쉽고 재미있게 접하도록 색다른 편집과 솔직담백한 문체, 일러스트 등을 통해 기존 자기계발서보다 경쾌하게 만들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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