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이론물리학자로 명성을 얻었던 이휘소. 지금으로부터 30년 전인 1977년 6월 16일 미국의 한 고속도로에서 42세라는 젊은 나이에 비극적인 죽음을 맞기 전까지 그는 물리학계에 많은 업적을 남겼다.

서울대 재학 중이던 그는 지난 1955년 미국 오하이오 주립대학에 편입했다. 여기서 그는 심층적인 이론물리학 공부에 필수적인 현대대수학을 수강했다. 하지만 현대대수학은 매우 추상적이고 어려워 결국 많은 수강생이 포기했고 끝까지 강의를 들은 것은 이휘소 뿐이었다. 이휘소는 박사 학위 취득 후 유명한 논문들을 쓰게 되는데 이때 배운 현대대수학을 비롯한 관련수학이 이 논문들의 밑거름이 됐다.

피츠버그 대학 대학원에서 석사를 마친 그는 펜실베니아대학 대학원에 입학했다. 박사학위 자격시험을 통과한 이휘소는 <Kπ중간자 산란과 분산 이론>을 발표했다. 이 논문은 당시 중요한 관심사였던 중간자의 역학적 원리를 명쾌하게 규명해 권위 있는 물리학회지 <물리평론>에 실렸다. 이후 <ππ산란에서 p-파동공명현상>이라는 논문을 <물리평론속보>에 게재했는데 이 학술지는 말그대로 물리학계에 중요한 연구들을 알리는 ‘속보’와 같은 것이었다. 이로인해 이휘소는 전 세계 물리학계에 알려지게 됐다.

박사 학위를 얻은 후 이휘소는 프린스턴의 고등연구원에서 연구했다. 이 무렵 이휘소는 당시 물리학계의 관심사였던 핵력의 상호작용에 대한 연구 논문들을 지속적으로 게재해 많은 주목을 받았다. 이후 펜실베니아, 뉴욕, 스토니브룩 대학에서 교편을 잡기도 했던 그는 페르미 국립가속기연구소의 이론물리학부장으로 지내며 연구에 매진했다.

지난 1971년 네덜란드 출신의 젊은 학자 토프트('tHooft)에 의해 약작용과 전자기 작용 현상을 통합하는 장(場)론이 재규격화될 수 있다는 주장이 나왔다. 이휘소는 이 문제를 끝까지 연구해 실제로 재규격화되며 가상적인 스칼라 중간자와 관계되는 모든 현상이 상쇄돼 물리적인 관측량이 유한한 값으로 주어짐을 1972년 <재규격화가 가능한 질량이 있는 벡터 중간자 이론-힉스 현상의 섭동이론>에서 증명했다. 이는 이휘소의 100번째 논문으로, 이 논문의 발표이후 소립자의 약작용과 전자기 작용을 통합하는 게이지이론이 본격화됐다. 이후 1973년 <물리비평>에 <게이지장이론>을 발표했는데 이는 모든 소립자물리학자들이 꼭 읽어야할 논문 중 하나가 됐다.

1979년, 와인버그(Steven Weinberg), 살람(Salam), 글래쇼(Glashow)는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했다. 이들은 이휘소가 발표한 <비가환 게이지이론의 재규격화>란 논문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 살람은 수상소감 중 “이휘소는 현대물리학을 10여년 앞당긴 천재이다. 이휘소가 있어야할 자리에 내가 있는 것이 부끄럽다”고 말했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1999년에는 네덜란드의 이론물리학자 벨트만과 토프트가 공동으로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했다. 토프트는 이 자리에서 “이휘소 박사를 만난 것은 하늘이 내려준 행운이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휘소의 연구에 기초해 이미 5명의 물리학자가 노벨상을 수상했다. 이휘소가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발표한 140여 편의 논문 중 60편 정도가 현재까지 1만회 이상 인용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는 향후에도 물리학자들에게 회자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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