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첫 기사는 고대신문 1659호에 실린 ‘농구부 2010대학농구리그서 탈락’이다. 박스기사 하나를 쓰기 위해 점프볼(http://www.jumpball.co.kr)에서 수차례 VOD를 돌려보며 선수들 움직임 하나하나를 묘사하려 애썼다. 하지만 기사는 내 노력과 시간이 무색하게 여러 번의 교정을 받고 평범한 기사로 전락했다. 기사는
아직도 ‘때’를 기다리는가화사한 파스텔 톤 봄빛이 가득 차오르던 3월 즈음, 학교 곳곳엔 0911선임기자들의 얼굴을 전면에 내세운 고대신문 수습기자 모집 포스터가 붙어있었다. 이를 보고 나는 주변에 고대신문 수습기자 지원에 대한 뜻을 밝혔지만 나에게 돌아오는 대답은 “애써서 시간낭비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재수생 시절, 난 꿈같은 대학생활을 꿈꿨다. 잔디밭에서 점심을 먹으며 책을 읽고 공강 시간에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며 방과 후엔 내가 좋아하는 동아리에 가입해 취미 생활을 여러 동기 및 후배들과 같이 보내는 그런 꿈. 정말 그냥 꿈이었다. 재수생활이 끝나고 난 고려대학교 문과대학 인문학부(곧 국어국문학과지만) 10학번이 됐다. 그런데 지금 내 꿈과는 달리 난
수습일기를 쓰게 되다니... 이것도 매우 시간이 흐른 뒤에 쓰는 거지만.... 벌써?!란 생각에 신기하다. 어쩌다가 시작된 이 생활에 이런 흔적을 남기게 되다니 조금 무섭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시간은 참 더럽게도 빨리 간다. Time flies란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아 그런데 수습일기를 어떤 내용으로 채워야 하나 고민이다. 신문사 지원하고 쿠키
2009년 9월, 고연전의 열기가 채 가시지 않은 어느 무렵. 나는 무언가에 이끌려 고대신문 기자를 지원했다. 지원서를 작성해놓고도 고민을 거듭하며 제출하지 않다가 결국 1차 모집 시기를 놓쳤다. 지원해도 그만, 안해도 그만이었다며 스스로 위안하며 용기없던 내 행동을 정당화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내 모습이 실망스러웠다. 그런 내게 2차 모집이란 기회가 찾아
‘이번 학기만 끝나면 나가 버려야지.’ 지난 학기 취재부 기자로 있는 동안 머릿속에 맴돌았던 생각이자 동기들에게 입버릇처럼 했던 말이다.내 주변 사람은 고대신문이 사람 잡는다고 한다. ‘넌 도대체 뭐 하고 살길래 잠도 제대로 안자냐, 수업도 잘 안 나오느냐, 얼굴 한 번 보기 왜 이렇게 힘드냐’는 말이 친구와 선후
작년 내 생일, 11월 21일 밤. 휴대폰이 울리며 고대신문 인턴기자 합격통지가 날아왔다. 생일 선물이라며 기뻐했던 기억이 난다. 그 후 두 학기(사실은 한 학기 조금 더)가 흘렀고 결자해지의 정신으로 버텨온 나는 이제 시사부 정기자가 되어가는 중이다.기자는 대통령보다 높지 않고 거지보다 낮지 않습니다사회에서 기자가 된 선배가 던져 준 말이다. '고대신문
어른들 말에 10대에는 시간이 10km/h로 가고 20대엔 20km/h, 30대엔 30km/h로 나이가 들면 들수록 시간이 더 빨리 간다고 한다. 사실 나는 20대의 20km/h가 너무 느린 것 같아 빨리빨리 살아보려고 신문사에 들어왔다. 결과적으로 말하면, 신문사에 들어온 나의 20대는 적어도 20km/h보다는 빨리 가는 것 같다.모든 일이 그렇듯 좋은
수습기자가 되면 각자 취재처를 정한다. 본부, 총학, 각 단과대 등 수 많은 취재처가 있는데 난 다른 건 몰라도 꼭 맡고 싶은 취재처가 있었다. 바로 체육위원회다. 실제로 취재처를 정하는 면담 때도 다른 건 몰라도 체육위원회 만큼은 꼭 맡고 싶다고 말했다. 그래서 맡게 된 체육위원회는 생각보다 많은 기사거리가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찾지 못한 것일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