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관습적으로 일본의 국가폭력에 사과를 요구한다. 그리고 손쉽게 한국의 국가폭력에 대해 침묵한다. 한국은 일본을 너무도 존경한 나머지 화려한 근대화 과정만이 아니라 전쟁 범죄마저 답습했다. 일본 정부의 대쪽 같은 피해자 외면은 한국 정부에게 훌륭한 교과서가 됐다. 모방으론 만족하지 못했는지 이젠 한술 더 떠 피해자와 증인을 조롱하고 모욕한다. 1968년 2월, 베트남 꽝남성 퐁니·퐁녓 마을. 한국 해병대는 무고한 주민들에게 총부리를 겨눴다. 원거리 포격과 자동화기 앞에서 어린아이도, 임산부도 예외는 아니었다. 8살이었던 응우옌티
내 이마엔 붉은색의 긴 점이 있다. 나는 내 얼굴에 익숙해서인지 그 점이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하지만 다른 사람의 눈엔 그 점이 꽤 크게 보였나 보다. 초등학교 1학년 땐 급식실에서 ‘이마에 김치가 묻었다’란 말을 들어보기도 했고, 미용사는 유난히 내 이마에 손을 대지 않았다. 부모님도 아들의 이마에 난 점을 걱정했다. 결국 난 대학 병원에서 피부 수술을 받기에 이르렀다. 안타깝게도 수술 이후 점은 더욱 커졌다. 돌이켜보면 그 수술은 순전히 남의 시선 때문에 진행한 것이었다. 정작 나는 아무렇지 않은데 주변에서 내 이마를 바라보
새 학기를 맞아 학교가 들떠있다. 2월까지 잠잠했던 캠퍼스가 점심, 저녁 밥약으로 북적이고 하나둘 피어오르는 꽃봉오리들은 활기를 더한다. 매일 같이 있는 행사들로 학교는 오늘도 조용할 틈이 없다. 화려한 동아리박람회 부스, 1초 만에 마감되는 합동응원전 티켓 배부는 모두의 관심사지만 민주광장에서 선거 유세를 하는 선본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지난해 12월 제54대 서울총학생회장단 선거는 유효 투표율 33.33%를 넘기지 못해 무산됐다.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는 학생 사회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함을 모두가 알고 있지만 정작 투표소로
지난 2월 28일 통계청에서 발표한 2023년 출생·사망 통계 잠정 결과에 따르면 2023년 출생아 수는 23만명이며, 합계 출산율은 0.72명, 인구 1000명당 출생아 수를 나타내는 조출생률은 4.5명을 기록했다. 대한민국의 저출산 위기가 여실히 드러난 발표였다. 저출산 현상 자체만을 두고 본다면, 대한민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비슷한 현상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2023년 출산율 1.68명의 프랑스는 육아휴직 개혁과 불임 퇴치를 골자로 한 저출산 대책을 발표하며 “인구학적 재무장”을 언급했고, 예측 출산율 1.20명의 일본은
신문사 생활을 시작한 후 유독 이런저런 물건을 깜빡하는 실수가 늘었다. 지난 학기 동안 두 손을 다 꼽아야 셀 수 있는 개수의 우산들에 이어 필통과 핸드폰까지 잃어버리고 나선 내가 ADHD인가 의심하기도 했다. 이런 고민을 한 사람이 나뿐만은 아니었나 보다. 최근 스스로를 ADHD라고 의심해 병원을 찾는 성인들이 늘어났다고 한다. ADHD 증상으로 진료받은 성인 환자가 지난 5년간 5배로 급증했다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통계 결과도 있다. 그러나 병원을 방문하는 사람 중 실제 ADHD가 아닌 경우도 많다. 여러 정신과전문의가 이들 중
지난 2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부산 가덕도 신공항 부지 방문 일정 중 김모 씨(남·66)가 휘두른 칼에 의해 목에 1.4cm의 자상을 입었다. 피의자는 이 대표의 지지자로 가장해 사인을 요청하며 접근한 뒤 흉기를 휘둘렀다. 이 대표는 지난 10일 퇴원했지만, 제1야당 대표에 대한 정치 테러가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는 크다. 피습 보도가 이어지자 늘 그랬듯 여론은 반으로 갈라졌다. 피의자의 당적과 범행동기, 이 대표의 호송까지 쟁점은 다양했지만 한 가지만은 명확했다. 극단 정치에 대한 자성과 비판보다 극단 정치를 부추기는 목소리
메이플스토리 캐릭터의 손 모양이 대한민국을 흔들었다. 지난달 23일 게재된 넥슨 ‘메이플스토리’의 한 캐릭터 홍보영상에서 ‘남성 혐오 손 모양’으로 의심되는 장면이 등장하면서다. 김창섭 메이플스토리 총괄 디렉터는 지난달 26일 유튜브 라이브를 통해 “맹목적으로 타인을 혐오하는 데 부끄러움을 느끼지 못하고, 몰래 드러내는 데 희열을 느끼는 사람들에 단호히 반대한다”며 홍보영상을 만든 외주사 ‘스튜디오 뿌리’에 대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 밝혔다. 당사자로 지목된 외주업체 소속 직원은 과거 SNS에서 ‘SNS 계정 막혀 몸 사리고 다닌 적
본지 1986호 ‘사람들’면 에 실린 허태균 교수님 인터뷰 촬영을 다녀온 날이었다. 교수님은 행복에 무뎌진 한국인에 관한 말씀을 하셨다. “자극에 과하게 노출되면서 행복에 무뎌진 사회가 됐다”라는 말과 “우리 모두 착각에 빠져 산다”는 말에 전적으로 공감했다. 사람은 누구나 본인은 예의 바르며 정중하게 행동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본인의 생각은 무조건 올바르며 틀리지 않다고 확신하기 때문에 누군가가 의문을 제기하거나 불만을 제기하는 경우 불쾌해하며 납득하기 힘들어한다. 현대인들은 돈이나 외모, 지위와 명예 등에 큰 가치를 두고 있어
정부가 식용 개의 사육과 도살, 유통 및 판매를 금지하는 법안을 제정하고 2027년부터 단속을 추진하기로 했다. 이후에는 축산법상 가축에서 개를 제외해 반려동물의 지위를 공고히 하겠다고 밝혔다. 개인적으로 나는 개를 먹지 않는다. 친척 중 개를 키우는 분이 계시기도 하고 나 역시 귀여운 개를 좋아한다. 다만 남이 먹는 것은 별개다. 남이 개를 먹는 것을 나서서 반대할 이유나 명분은 없다. 나도 다른 동물의 고기를 먹는다. 개가 돼지나 소, 닭과 같은 가축과는 달리 인구 대다수에게 반려동물로 인식되고 있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2주 전 ‘혐오표현 규제’ 관련 취재를 했다. 소수자에 대한 차별을 심화할 수 있는 언어 표현 등에 대해 배웠다. 혐오표현은 소수자만을 대상으로 하는 것인지, 그렇다면 그 소수자는 누구인지 등 범주 자체도 논쟁의 여지가 있다는 것 또한 알게 됐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정치권에서 관련 소식이 들렸다. 이준석 전 국민의힘 당대표와 인요한 국민의힘 혁신위원장 사이에서 생긴 에피소드다. 인요한 위원장은 지난 4일 이준석 전 대표의 토크콘서트를 찾았다. 인 위원장의 당내 통합 시도의 일환이었다. 돌아온 건 차가운 면박이었다. 그 면박은 평소와
과거 학생운동을 자랑했던 고려대에서는 ‘좌파는 학생회관으로, 우파는 도서관으로’라는 농담이 유행했다. 독재 정권과 싸웠던 학생들이 주로 정문 왼편의 학생회관에 모여 시위했기 때문이다. 당시 시위는 총대를 멘 소수 덕분에 가능했다. 4.18 의거 때 박찬세(법학과 55학번) 본지 편집국장처럼 ‘선언문’을 써준 누군가가 있었다. 한편 흑백 사진 속 그 시절을 ‘낭만의 시대’로 칭하는 이들도 있다. 2023년 캠퍼스에서도 그 시절 낭만을 찾아볼 수 있을까? 안타깝게도 구국대장정 참여 인원은 매년 줄고 있다. 시대가 달라졌어도 정부나 학교
오는 10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가 시작된다. 여기에 프랜차이즈 ‘왕가탕후루’를 운영하는 달콤나라앨리스의 김소향 대표가 증인으로 출석한다. 탕후루는 과일에 설탕물을 입혀 먹는 중국의 길거리 음식이다. 탕후루가 유행하자 청소년의 당 과다 섭취가 도마 위에 올랐다. 딸기나 포도 등 탕후루에 사용되는 과일은 기본적으로 당이 높은데 설탕물까지 입혀서다. 탕후루가 건강에 나쁜 것은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이미 우리는 라면, 과자, 탄산음료 등 몸에 좋지 않은 음식을 거리낌 없이 먹는다. 긴 시간 꾸준했던 전문가들의 경고에도. 탕후루
우크라이나의 든든한 지원국인 폴란드가 무기 지원 중단을 선언했다. 농산물 수입 금지를 둘러싼 폴란드와 우크라이나 간 무역 분쟁이 격화됐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에서 농산물을 들여온 폴란드 등 5개국의 현지 농산물 가격이 폭락하자 EU는 우크라이나산 곡물 수입 금지를 허용했다. 지난 15일 EU가 수입 금지 조치를 해제했으나 폴란드ˑ헝가리ˑ슬로바키아는 이를 유지하기로 했다. 이에 우크라이나는 세계무역기구에 제소할 것을 선언했고, 폴란드는 자국에 대한 부당한 발언이라며 기존에 약속한 무기만 제공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후 의도가 와전됐
최근 묻지마 범죄가 급격히 증가했다. 경찰청 범죄통계 자료와 한국형사정책연구원에 의하면 대부분의 가해자는 사회성이 결여된 히키코모리 성향을 지녔으며, 동시에 취약계층에서 반사회적 행위를 저지르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일각에서는 묻지마 범죄 행위를 저지르는 자들을 ‘도태남’이라 칭하곤 한다. 도태남과 범죄자를 정말 동일시할 수 있는 걸까. 도태남이란 주로 외모, 재산, 사회성 등이 부족해 이성과의 연애나 결혼을 정상적으로 불가능한 남성들을 의미하는 혐오 용어다.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다양한 이유로 연애나 결혼하지 않으면, 그런
“너는 고집이 너무 세. 여기서 딱 반만 줄여도 엄마 아빠는 참 좋겠다.” 고집이란 자기의 의견을 바꾸거나 고치지 않고 굳게 버티는 성미를 뜻한다. “고집부리지 마.” 대체로 부정적인 어투로 듣던 기억밖에 없던 탓일까? 장단점을 소개할 때 고집은 거의 단점에 들어간다. 그리고 덧붙여진다. “타협을 잘하고 다른 사람의 의견을 잘 수용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항상 긍정적으로 사고하자는 신념이 있었기에, 내가 가진 이 고집도 좋은 쪽으로 생각하는 걸 고집했다. ‘우유부단한 것보다는 낫지 않을까?’라고 합리화하며 살았지만, 시간이 가면 갈
‘우리의 주적은 간부.’ 대한민국 군인이라면 군 생활 내내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는 말이다. 해병대 군 생활 시절 간부들의 친절이 선임병의 갈굼을 버티게 해줬기에, 나는 저 말을 믿지 않았다. 저 말을 다시 떠올린 건 전역하고 1년이 지나서다. 구명조끼 없이 실종자를 수색하던 전우가 급류에 휩쓸려 죽은 일과, 원칙에 따라 사망 경위를 밝히던 해병대 수사단장이 고초를 겪는 일 때문이다. 故 채수근 해병이 속했던 부대는 경북 포항의 해병대 1사단. 7월 19일 해병대원들이 실종자 수색에 투입되기 전날 ‘사단장님 강조 사항’이 내려왔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에 대한 국회의 탄핵심판 청구가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기각됐다. 헌법은 “직무집행에 있어서 헌법이나 법률을 위반”할 것을 탄핵 요건으로 하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피청구인이 재난안전법과 국가공무원법을 위반해 국민을 보호할 헌법상 의무를 다하지 못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9대 0이라는 결과는 반반 정도를 바라보던 일각의 예상을 뒤집었다. 전원 기각이 우리에게 말해주는 것은 정치적 성향과 무관하게 일반적인 법리 판단으로는 애초에 야권이 이기기 어려운 싸움이었다는 것이다. 민주당 등은 정치적 문제를 사법
이번 학기에 쓴 기획 기사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기사는 1968호에 실린 MZ세대의 특징을 다룬 기사다. MZ세대의 이야기는 곧 내 이야기이기에 애착이 갔고 그만큼 아쉬움이 남는다. ‘요즘 젊은 애들은 하고 싶은 말 다 하고 살더라’는 취재하면서 가장 많이 들은 20대의 이미지였다. 정말 20대는 앞뒤 안 가리고 하고 싶은 대로 할까? 친구들과 이야기 나눌 때 빠짐없이 나오는 주제는 아르바이트하면서 만난 진상이다. 관련법이나 가게 규정상 안 되는 걸 막무가내로 요구하고 폭언도 거침없다. 이런 사람들은 20대가 아닌, 사회에서 어느
1974호에 담긴 부모 교육, 대학생 부모 기획을 준비하며 만난 가족·아동 전문가분들 모두가 한 말이 있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아프리카 속담이다. 약속이나 한 듯 인터뷰마다 이 속담을 들으니 궁금증이 생겼다. 나는 어떤 마을에서 자랐던가? 문득 중학생 때 만났던 나쁜 어른이 생각났다. 처음 만난 내게 “치아 교정을 해야겠네”, “키에 비해 비율이 좋지 않구나”라는 외모 품평을 아무렇지 않게 뱉은 사람이다. 성인이 된 지금은 대꾸조차 하지 않을 말이겠지만 15살에겐 판단조차 못 한 채 뇌리에 박혔으리라. 나
요즘 들어 최근 들은 음악 목록에 항상 ‘퐁크(phonk)’라 불리는 노래 장르가 있다. 퐁크는 미국 남부 힙합이 섞인 장르다. 느린 템포와 공포영화에 나올 법한 으스스한 멜로디가 특징이다. 특히 808드럼과 반복적으로 들리는 카우벨 소리가 매력이다. 듣다 보면 발가락이 들썩거리는 이 장르에 빠진 이유는 내가 이 세상 최고가 된 기분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항상 남과 비교하며 살아오도록 교육‘당했다’고 생각한다. 특히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는 관습은 고쳐야 한다. 예의라는 이름으로 창의력과 상상력을 극도로 제한시켰다. 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