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 일상으로부터 벗어나 미지의 세계를 경험하고 자신이 살고 있는 세상을 돌아다볼 수 있다는 점에서 분명 즐겁고 유익한 일이다. 교통과 통신이 발달한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세계 여러 나라를 여행하고 자신의 견문을 적어놓은 여행기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우리나라 사람이 쓴 근래의 여행기 가운데 흥미롭게 읽은 것은 홍은택과 김난희의 글이었다. 이들 여행기는 자기만의 안목으로 세상을 보고 있으며, 자기 나름의 독특한 글쓰기를 선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여타 여행기와 구별됐다. 소개하는 <열하일기>는 조선 후기 실학파의 거장 박지원(1737-1805)이 중국 여행의 견문을 적어 놓은 책으로, 이 책은 발표되자마자 당시 독서계의 상당한 반향을 일으켰다. 정조 시대 문체 파동의 도화선이 됐으며, 심지어 ‘되놈의 연호를 쓴 글’이라는 비방을 들을 정도였다. 그 후 <열하일기>는 불온한 서적으로 낙인찍혀 금서처럼 취급받게 됐다.

연암 박지원은 <열하일기>에서 남다른 열의와 식견 및 예리한 관찰력으로 청나라의 문명과 동아시아의 국제 정세를 살펴본다. 그는 동아시아 세계의 중심부인 청나라의 선진 문물을 눈으로 직접 목도하면서 조선의 낙후하고 답답한 현실을 올바르게 직시하는 한편 세계의 움직임을 직접 호흡하고자 했다. 중국 대륙을 여행한 사람들은 많았지만 대개는 중국 산천의 아름다운 경관에 관심을 둘 뿐이었고, 그나마 당시 일반적 풍조는 소중화로 자처하면서 청나라 문물을 오랑캐의 것으로 폄시(貶視)했다. 따라서 연암처럼 조선의 뒤떨어진 경제 현실을 타개할 구체적 방안을 모색해 보거나, 당시의 최근 학술과 문단 동향, 그리고 서양 학문 등에까지 관심을 넓혀 소개하고자 한 여행기는 별반 찾아볼 수 없는 실정이었다.

<열하일기>에서 중요하게 거론되어야 할 것은 한 변방의 구석진 위치와 좁은 안목에서 벗어나 세계정세의 변화와 그 전망에 대해 연암 박지원의 주체적인 인식과 시각을 보여 주고 있다는 점이다. 당시 청나라는 ‘세계 최대의 문화 국가’였다. 대외적으로 정복 전쟁을 통해 사상 최대의 영토 확장에 성공했으며, 대내적으로는 상공업의 발달과 재정 수입의 증대에 따라 대대적인 문화 사업을 추진하였다. 연암은 이처럼 번영을 구가하고 있는 중국의 현실에 대해 단순히 피상적으로 관찰하거나 찬탄하는 것에 만족하지 않았다. 그 같은 번영과 안정의 이면에 도사리고 있는 한족(漢族)의 민족적 저항, 몽고와 티베트 등 변방 제민족의 움직임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일국의 좁은 울타리에서 벗어나 복잡하게 얽혀 있는 세계정세와 정치적 역학 관계에 주목하고 있는 것이다.

여타의 중국 연행록들이 단순한 견문기의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였던 것과 달리 <열하일기>는 중국의 현실을 생생하게 증언하는 한편, 그 이면을 날카롭게 파헤치고 있다. 또한 그는 문제의식을 파격적이며 다채로운 문학적 장치를 통해 효과적으로 표현해냈다. 세계가 1일 생활권에 편입된 오늘날 외국을 여행하고 돌아와 그 곳의 풍속과 문화 등을 기록한 글들이 넘쳐나고 있다. 하지만 그들 가운데 <열하일기>에 필적할만한 여행기가 얼마나 있을까.

정우봉(문과대 국문학과) 교수

<세계 최고의 여행기, 열하일기 >
출판사 : 그린비
출판년도 : 2008년
저자 : 고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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