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등학교 시절 나의 가장 큰 고민은 ‘어떻게 성적을 올릴까’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자퇴할 수 있을까’였다. 여러 면에서 학교는 나와 맞지 않았다. 정말 좋아하는 일을 열정을 다해 해냈을 때와 누군가를 짝사랑했던 기억을 제외하곤 대부분이 우울하고, 암울했다.

기술가정 수업시간. 어디에 써먹을지 모르는 자전거의 부품을 왜 전부 외우고 있어야 하는지, 영어문장의 형식을 구분하는 것이 과연 영어실력 향상에 도움을 줄 수 있을지, 내가 읽고 느낀 시와 소설의 주제가 참고서의 답과 다른 것이 틀리다 말할 수 있는지, 틀린 수학문제 때문에 종아리에 멍이 들도록 회초리를 맞는 것이 납득하기 어려웠고 이해할 수 없었다.

내가 생각한 교육은 현실과는 너무나 달랐다. 지식을 전달하는 것이 교육의 올바른 모습일까. 그렇다면 현장에서 이뤄지는 지식의 전달 방법과 내용은 올바르다 할 수 있는지. 하루에도 수십번씩 현실과 이상과의 괴리를 느끼며 알 수 없는 상대를 원망하고 분노했다. 용기를 내 도움을 요청한 적도 있지만 나의 존재를 당혹하게 생각할 뿐 변화를 주진 못했다. 학교를 탈출할 계획이 거의 성공할 뻔 했지만, 무산. 결국 날 도울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과 스스로도 아무런 일을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세상과의 타협. 아니, 현재 상황과 내가 내리게 될 선택(대한민국의 일반적인 고등학생으로 돌아가는 것에 대한)에 대해 정당성을 부여하고 합리화 시켰다. 그 대가는 대학생이 되어서까지 지속되는 지독한 두통이었다.

일제고사가 부활하고, 국제중이 설립된다. 어느 어린이 교양지가 초등학생 4~6학년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 결과에 따르면 행복하다고 답한 초등학생은 48%. 무엇이 이뤄지면 가장 행복할 것 같냐는 질문에 40.3%가 ‘좋은 성적’이라 답했다. 시간이 지나면 교육 환경은 개선될 줄 알았지만, 아무것도 나아진 것은 없다. 씁쓸하다. 행복하지 않은 52%의 대한민국의 어린이들이,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좋은 성적이라고 생각하는 40.3%의 어린이들이 진심으로 행복해질 날이 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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