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을 '존파이'라고 쓰면 우리는 굉장히 기분이 나쁘거든요" 미주취재에서 만난 뉴욕의 한인 조각가 John Pai의 인터뷰 기사를 쓰고 있었다. '존파이'라고 써야할 지 ‘존배’라고 써야할 지 고민하던 찰나, 뉴욕에서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내게는 단순히 영어이름의 표기문제였지만, John Pai의 가족에게는 무척 예민한 일이었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보면 John Pai에게 ‘Pai’란 단순히 알파벳 3개의 나열을 넘어 정체성이자 한국인으로서의 성이다. 그렇게 보면 오히려 이름이라는 중요한 문제를 내가 너무 사소하게만 생각한 건 아닌지 의문이 든다. 이는 누구의 관점에서 보느냐와 어떤 문제로 보느냐의 차이에서 기인한다. 
중요한 건 누구의 관점이든 어떤 문제로 보든 나에게 사소하다고 해서, ‘그런 거에 목숨 걸지 말라’고 할 수는 없단 거다. 나에게 사소한 문제가 누군가에겐 큰 문제가 될 수 있다.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들이 ‘애게’라며 작다고 여기는 것들이 나에겐 그 무엇보다 중요해 지기도 한다.
사실 종종 기사를 접한 취재원의 미움을 살 때가 있다. 그러나 취재원이 지적하는 사항이 글을 쓰는 기자에겐 큰 문제로 안보이는 경우가 많다. 만약 내가 전화를 받지 못한 채, ‘존파이’라고 기사를 냈다면 어땠을까. 나의 사소한 고민이 내린 결정에 신문을 받아든 John Pai씨의 가족들은 무척 불쾌했을 것이다.
그러니 별것도 아닌 걸로 왜 그러냐는 핀잔을 줄여야겠다. 이토록 큰 문제를 아무렇지 않게 넘어갈 순 없지 않느냐는 억울한 설득도 그만두겠다. 어차피 우리는 각자의 사소함을 안고 살아갈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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