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 | 구민지 기자 wow@

1년 가까이 지속된 정치권의 무상급식 공방은 현재진행형이다. 실현이 ‘가능하다’와 ‘불가능하다’로 맞붙은 논쟁은 타협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 와중에 서울시 성북구는 지난해 10월부터 ‘친환경무상급식 시범사업’을 시작해 올해 3월, 전면실시에 들어간다. 성북구 친환경무상급식추진위원회에서 위원장을 맡았던 본교 조대엽(문과대 사회학과) 교수는 무상급식이 복지가 아닌 사회적 투자라고 말한다. 그는 위원회에서의 경험을 담아 김영배 성북구청장, 이빈파 친환경무상급식 전국네트워크 대표와 함께 쓴 <작은 민주주의, 친환경 무상급식>을 펴냈다.

◆ 위원장을 맡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
학자로서 현실에 참여한다는 부담이 있었지만, 학교가 속한 지역에 도움이 되면서 내 전공과 어느 정도 부합하는 일이라고 판단했다. 진정으로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서는 우리 삶의 기반을 더 안정적으로 만들어야 한다. 무엇보다 복지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필요하다.

◆ 현장과 이론은 어떻게 달랐나
일을 하다 보니 이론적인 뒷받침이 많이 부족하다는 걸 알았다. 무상급식은 복지이론을 넘어선 문제다. 정치사회학적 관점뿐만 아니라 운영단계에서는 공동 거버넌스(co-governance), 즉 협치(協治)가 필요하다. 지역공동체 모두의 참여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친환경 무상급식은 생산지의 농·축산업과도 밀접하게 연관돼있다. 이런 부분들이 복잡하게 맞물려 있기 때문에 보다 체계적인 이론이 필요하다.

◆ 위원회의 추진 속도도 매우 빠른데 원동력은 무엇이었나
의지가 충만한 사람들이 모였기에 가능했다.
무상급식 문제는 곧 어떤 가치에 더 무게를 두느냐에 대한 이야기다. 복지나 먹을거리와 같은 ‘우리의 기본적인 삶’이냐, 아니면 가시적인 정책적 사업이나 외형을 바꾸는 것이냐의 문제인 것이다. 말하자면 성장주의적 가치와 복지지향적 가치 중 어느 것을 더 중요시하는지 묻는 일종의 철학 문제다.
이런 철학과 가치가 선택되면 그다음은 과감한 시행이다. 무상급식을 현실화하려는 구청장의 의지가 강했고 이에 대한 구민들의 합의가 빨랐기 때문에 큰 무리 없이 진행될 수 있었다. 공청회를 했을 때도 호응이 높았다.

◆ 이번 성북구의 사업은 학자와 행정가, 시민운동가의 합작이라는 점에서 흥미롭다
보통 위원회라는 것이 형식적일 수 있는데 실무와 관련된 분들이 많았다. 특히 학교 현장과 밀접한 영양교사, 학교장을 비롯해 시민단체 관계자도 참여했다. 위원회에서 깊이 있는 논쟁을 할 수 있었다.
일례로 친환경무상급식에 우유급식을 포함시키느냐를 두고 논쟁을 한 적이 있었다. 영양사는 우유의 영양적인 측면에 주목했고 환경운동가는 목축산업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어떻게 보면 사소하지만 위원 모두가 저마다의 열정을 가지고 폭넓은 관심을 가졌다는 점에서 상당히 의미 있고 건강한 논쟁이었다.

◆ 친환경 무상급식을 추진하면서 특별히 어려웠던 점은
당시에는 전면적 시행이 아니라 시범실시였기에 그렇게 큰 어려움은 없었다.
다만 공청회와 간담회를 할 때 다소 충돌이 있었다. ‘학교’는 우리 사회의 가장 폐쇄적인 현장 중 하나다. 처음엔 학교 측에서 재정적 지원만 해달라며 학교 일은 자신들이 전문가니까 알아서 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어떤 기구라도 투명하게 운영하려면 개방해야한다. 이런 트러블은 있었지만 심각한 정도는 아니었다.

◆ 무상급식을 시행하던 뉴욕의 경우, 최근 재정난으로 이를 축소했다. 무상급식이 얼마나 지속가능하다고 보나
무상급식과 같이 국민의 일상적인 삶과 관련된 문제는 ‘얼마나 지속될 수 있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지속가능하게 할 수 있을까’로 접근해야 한다. 반대하는 입장에서 무상급식은 한번 수혜를 주기 시작하면 되돌릴 수 없다는 얘기로 압축된다. 성장에 써야 할 재원을 복지에 돌리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 골방에서 가난과 질병에 시달리던 한 시나리오 작가의 죽음을 보라. 이게 지금 우리사회의 모습이다. 그렇다면 돈을 어디에 쓰는 게 맞는지에 대한 분명한 답이 나온다.
아이들에게 보다 안정된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은 당대의 기성세대가 해야 할 의무이자 책임이다. 다른 나라가 어떻게 한다고 얘기할 필요는 없다. 우리의 가치와 철학, 여건 속에서 선택해야 할 문제다. 그동안은 국민의 삶의 내용을 공적으로 관리하는 데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오로지 파이를 키우고 경제 규모를 늘리고 대기업을 살찌우는 데에만 몰두했다.

◆ 무상급식을 놓고 왜 정치적 대립이 불거진다고 보나
우리 사회에서 갈등을 만들어내는 가장 핵심적인 요소는 보수와 진보의 이념 충돌이다. 이는 이슈를 이념적으로 다뤄지게 만든다. 무상급식도 그 수많은 이슈들 중 하나다.
그러나 친환경무상급식을 기존의 이념적 잣대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이는 이념을 뛰어넘어 추구해야할 문제다. 나라의 격을 높인다는 건 G20을 열었다고 해서 달성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나라의 문화산업을 살찌울 시나리오 작가가 굶어 죽고 있는데 나라의 격이 높다고 할 수 있겠나. 내 집의 아이들은 배를 곯고 있는데 그럴듯하게 차려입고 나가 외국 사람들을 맞이한다고 해서 국가의 격이 높아지겠나.
이것을 기존의 이념적 잣대로 해석해 자신들에게 유리한 쪽으로 각색하는 것은 상당히 가식적이다. 정치 이익을 겨냥한 행위일 뿐이다.

◆ 맞춤형 복지, 선별적 복지, 서민형 복지 등의 용어가 있다. 이처럼 환경에 맞게 지원하는 복지 형태가 현실에 더 적합하지 않을까
나는 복지 전문가가 아니다. 그러나 이걸 선별 복지나 보편 복지냐의 논쟁으로 이끌어 가는 것은 문제가 있다. 무상급식은 일정 수준의 부를 달성한 사회가 장기적으로 건강하게 재생산되기 위해 가장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사회적 투자’다. 물론 복지와 중첩되는 부분이 있지만, 무상급식은 사회의 근본적 기반을 구축한다는 점에서 보편복지보다도 사회적 투자에 가깝다.

◆ 철학적이고 이론적인 수준에서 친환경 무상급식의 의미는 무엇인가
먼저 이론적인 측면에서는 균형사회로 가는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경제적·사회적 측면에서는 격차가 줄어드는 사회를 만들고 가치의 측면에서는 도덕적 사회, 그리고 공정한 사회의 요소들을 갖추고 있다.
친환경무상급식은 생활의 정치, 일상의 정치, 현장의 정치라는 맥락에서 미시민주주의다. 이번에 출간한 책의 제목인 ‘작은 민주주의’란 표현도 여기에서 나온 것이다. 민주화는 거대 담론이 아닌 문화적이고 일상의 영역에서 비롯되어야 한다.
친환경무상급식이 안착되면 우리 사회 자체가 바뀌고 변화하게 된다. 우리 사회가 전반적으로 나아가야 할 건강한 사회로의 변화와 관련한 내용들이 이 제도에 거의 다 담겨있다고 봐도 좋을 정도다. 이것을 복지 수혜라는 관점으로만 접근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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