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한국사회에서 세계화의 열풍이 미치지 않는 곳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IMF구제금융시대를 경험하면서 그 열풍은 더욱 거세어졌다. 여기서 말하는 세계화란 사회의 모든 부분의 운영을 시장의 원리 혹은 경쟁의 원리에 기초해서 수행하는 것으로 정의할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이 상품뿐만 아니라 모든 것이 국민국가의 경계를 넘어 유통되는 시대에 세계적 차원에서 벌어지는 경쟁관계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라는 상황인식에 근거하고 있다는 것은 이미 주지의 사실이다. 교육부문도 예외가 아니어서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서 발표된 잇따른 대학개혁방안들도 바로 이러한 상황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교육의 세계화, 즉 교육부문에 경쟁의 원리 혹은 시장의 원리를 도입하려는 움직임은 고이즈미 총리가 등장한 이후 일본사회에서도 그 힘이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특히 지난 3월 문부과학성 산하 「국립대 독립법인화 조사검토위원회」가 내놓은 최종의견서는 경쟁의 원리를 교육부문에 도입하려는 일본정부의 의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독립법인화는 국가의 보호에 안주해 온 국립대에 기업의 경쟁원리를 도입하기 위한 것으로서, 대학이 법인화 되면 국가의 지휘 감독에서 벗어나면서 대학의 재량권은 늘어나지만, 교직원의 신분은 ‘국가공무원’에서 각 대학이 채용하는 직원으로 바뀌고 급료에도 차이가 생기게 된다. 즉 급료의 차이를 통해 교직원간의 경쟁을 유도한다는 발상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경상비를 지금처럼 국가에서 받는 교부금으로 충당하는 것은 그대로 이지만, 법인화 되면 사용처에 구애받지 않고 대학이 독자적으로 결정한 목표와 계획에 따라 사용할 수 있는 것으로 바뀌고, 그 대신 각 대학은 6년 간의 중기목표와 계획을 세워 외부의 평가를 받도록 되어있다. 또 전문가들로 구성된 「국립대학평가위원회」가 각 대학의 실적을 평가해 운영비의 증감 여부를 결정하게 된다. 지원급의 차별지급이라는 수단을 통해 국립대간의 경쟁을 유도해서 경영효율성을 높이겠다는 것이다. 등록금도 정부가 정한 틀 안에서 대학이 자율적으로 정할 수 있게 되어있다. 이와 같이 이 최종의견서는 국립대의 운영에 경쟁의 원리를 도입해서 국립대의 경영효율성을 높이겠다는 발상에 기초하고 있다.

이러한 국립대 개혁안이 이른바 ‘작은 정부’를 표방하는 고이즈미 정권의 정책기조의 결과물이라는 것은 분명하지만, 여기에는 대학지원자수가 대학정원을 밑도는 사태가 예견되는 상황에서 정부가 국립대에 경제적 지원을 계속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게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즉, 대학지원자수의 감소라는 외부요인이 정부의 국립대 개혁을 더욱 부채질했다고 볼 수 있다. 사실 이러한 외부상황의 변화는 올해 초부터 국립대간의 통합이라는 현상을 초래하고 있다. 이것은 대학이 처한 환경의 변화에 적응하면서 정부가 추구하는 경영효율성의 목표에 부응하기 위한 하나의 방편으로서 취해진 것인데, 쓰쿠바 대학의 경우도 지난 1월 도서관정보대학과 통합을 결정한 바 있다.


 
일부 학과 편중 현상 등 역효과 우려 목소리도


현재 일본의 국립대에 불고 있는 이러한 변화의 바람은 대학지원자수의 감소라는 외부요인도 작용하고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이러한 환경의 변화를 교육의 기업화, 경쟁원리의 도입이라는 처방을 통해 해결하려는 고이즈미 정권의 교육정책에 의한 것이라고 불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교육정책은 정부지출의 감소와 작은 정부의 실현이라는 신보수주의적 정책기조가 불러온 것임은 두말한 나위도 없다. 오늘날 미국을 비롯해 유럽, 한국, 일본에서 채택되고 있는 이러한 신보수주의적 정책이 세계화의 핵심적 내용을 이루고 있다는 것도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현재 한국의 대학도 국립대와 사립대를 불문하고 대학운영에 기업의 경영원리를 도입하려는 추세를 더욱 강화하고 있으나, 그러한 조치가 가져올 경제적, 교육적 결과에 대해 회의적인 시선을 보내는 이들도 적지 않게 존재하고 있다. 교수노조의 결성은 교육의 시장화가 초래한 교육부문의 내부 갈등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대학간, 학과간 경쟁이 일부 인기학과를 중심으로 한 편중현상을 불러오고 있는 사태에서 이러한 경쟁원리의 도입이 교육적으로 올바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가에 대한 비판적 목소리에 그 힘을 실어주고 있는 현실도 지금 우리사회에 존재한다.

일본의 국립대가 한국과 다른 환경과 역사 위에서 존재해 왔던 만큼 이번 개혁안을 통해 다른 결과를 내올 가능성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경쟁이 자신과 타자를 일종의 대결상황 속에서 파악하는 인식이라면, 교육은 공동체 구성원간의 의사소통과 통합을 중요한 가치로서 인식해 왔다. ‘진리’란 경쟁의 수단이 아니라 공동체 구성원이 함께 신뢰할 수 있는 하나의 신념체계이다. 따라서 진리의 상아탑이기를 추구했던 대학의 이상에는 공동체의 구성원이 신뢰할 수 있는 정당한 신념의 체계를 생산하고 보존하려는 의지가 녹아있다고 볼 수 있다. 전 세계적으로 교육의 시장화, 교육부문에 경쟁원리의 도입이 확산되는 상황에서 이러한 대학의 이상이 앞으로 어떠한 모습으로 존재해갈 수 있을지 냉정하게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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