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토사양구팽(狡兎死良狗烹)’는 한나라의 장군 한신의 말에서 비롯된 고사성어로 교활한 토끼가 잡히면 충실했던 사냥개도 쓸모가 없어져 잡아먹게 된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 한신은 뛰어난 전략가로 한고조 유방을 도와 초나라 항우를 무찌르는데 큰 공을 세웠으며, 천하가 평정된 뒤 제왕(齊王)이 된다. 그러나 그 뒤 초왕(楚王)을 거쳐 회음후(淮陰候)로 격하됐으며, 결국 참살당하게 된다.

반면 한나라의 책사였던 장량은 한신과 같은 유방의 공신이었지만 인생의 마지막이 한신의 그것과는 매우 달랐다. 그는 천하가 평정된 후 한신과 마찬가지로 나라에서 높은 관직과 녹봉을 내렸지만, 그것들을 마다하고 나라를 떠나 산 속으로 들어가버렸다. 공을 세운 뒤에 나라에 머물지 않고 산 속으로 떠났던 그는 천수를 누렸으며, 확인되지는 않았지만 도를 닦아 신선이 됐다고 한다.

한신과 장량의 이야기에서 찾아볼 수 있는 그 둘의 차이점은 한 명은 자신이 떠나야 할 때를 알지 못했다는 것이고, 한 명은 자신이 떠나야 할 때를 정확히 알고 있었다는 점이다. 언 듯 보면 바닷가에 던진 돌맹이처럼 작은 차이였지만, 그 돌맹이는 거대한 파도가 돼 한 명의 인생을 송두리째 앗아갔다.

한신과 장량에게 벌어진 일과 비슷한 것은 요즘에도 자주 찾아볼 수 있다. 남녀간의 연애현장에서 술과 이야기가 넘쳐나는 술자리에서 돈이 오가는 도박판 등에서 찾아 볼 수 있고, 국가 권력의 핵심인 정치권에서도 이러한 예는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여기서 떠나야 할 때를 알아채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시기에 떠날 수 있는 과감성이 더욱 중요하다.

하지만 과감하게 떠난 장량이 신선이 됐다는 고사에서도 알 수 있듯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지위나 기회, 권력 등을 버리고 떠난다는 것은 범인들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도박판에서 승승장구하던 사람이 결국에는 밑천까지 다 잃는 것이나 박정희 대통령의 예를 봐도 알 수 있듯 제 때 떠나지 못한 사람들의 결말은 대부분 비극적이었다.

모든 일에 처음과 중간과 끝이 있지만, 어떤 일이든 겪어본 후에야 그 결과를 알 수 있는 것이라며 제자리를 맴돌아 보겠다고 말한다면 특별히 반론할 순 없다. 하지만 떠나야 할 시기를 몰랐다면 모르겠으나 적어도 떠나야 할 때를 알았다면 그 곳을 떠나는 것이 추함을 면하는 길이고, 자신이 살길이라고 생각한다.

시인 이형기는 그의 시 ‘낙화’에서 ‘가야할 때가 언제인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라며 제 때 떠나는 이의 모습을 예찬했다. 이 시처럼 모두가 제 때 떠나는 아름다운 뒷모습을 지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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