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의 한일 월드컵은 축구에 미쳐있는 독일인들이 일상에서 겪고있는 삶의 노고를 잠시나마 잊도록 만들어주었다. 물론 오래 지나지 않아 현실세계로 돌아온 사람들은 그들을 괴롭혀온 제반 사회문제들-여전히 높은 실업률, 연금 및 의료보험의 만성적 적자, 계속해서 머리를 쳐드는 인종주의 등-과 변함없이 맞닥뜨려야만 했다. 그리고 지금은 이 문제들을 누가 해결할 수 있을까 라는 질문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오는 9월 22일의 선거를 통해 새로운 의회와 수상이 선출되기 때문이다.

지난 8월 25일 베를린에서는 ‘내일의 권력을 둘러싼 경주’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집권 사민당의 슈뢰더 후보와 야당인 기민련/기사련의 슈토이버 후보간에 1차 TV토론이 있었던 것이다. 여론조사에 의하면 현재 슈뢰더 후보에 대한 지지율은 38%, 슈토이버 후보에 대한 지지율은 39%로서 박빙의 대결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번 선거에서도 실업 및 복지 문제가 가장 중요한 화두이다. 현재 전체영업인구의 13% 이상, 즉 300만을 상회하는 인구가 실업상태에 놓여 있다. 이처럼 높은 실업률은 사회보장제도의 기초를 뒤흔들어 놓았다. 실업 확산으로 인해 봉급생활자의 납부금이 줄어든 반면, 연금, 의료, 실업보험의 지출액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령 독일의 공공 의료보험조합은 금년 상반기에만 21억 4천만 유로의 적자를 기록했다. 일부에서는 지금의 사회보장제도가 변화된 환경에 걸맞지 않게 비효율적이라는 비판마저 제기되는 실정이다.

상황이 이렇고 보니 다시 정치, 그리고 선거가 중요해진다. 문제의 실마리를 잡아내고 적절한 해결방안을 제시할 수 있는 정치적 행위자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이제 독일국민들의 정치의식이 중요한 역할을 담당할 때가 되었고, 특히 젊은 세대들의 적극적 관심이 요구되는 시점이 되었다. ‘사회국가’ 독일이 앞으로 어떠한 형상을 지니게 되느냐에 따라서 젊은이들이 영위하게 될 삶의 형상 역시 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행인지 불행인지 독일의 젊은이들은 최근 두드러지게 탈정치적 성향을 보여주고 있다. 20세 전후 청소년들의 의식을 조사한 ‘쉘-보고서’에 따르면 설문대상 2500명 중 34% 만이 정치에 관심을 보였으며, 35% 만이 9월의 연방의회 선거에 참여할 의사를 밝혔다. 이들에게 관심의 대상이 되는 것은 ‘보다 안정적인 생애’를 꾸려갈 수 있는 기회의 획득이다. 하지만 ‘보다 안정적인 생애’의 모반을 주조할지도 모를 정치영역에 대해서는 별반 관심이 없는 것이다.

이와 같은 현상은 빠른 속도로 변화하고 있는 젊은이들의 관심과 욕구가 기성 정치무대 위에서 해소되기 어렵다는 것을 알려준다. 아울러 그것은 인습과 타성에 물들어 있는 제도권 정치인들에게 보내는 무언의 경고일 수도 있다. 하지만 새로운 무대는 아직 건설되지 않았고 해결해야할 일들은 산적해있는 것 또한 현실이다. 

독일 청년층의 탈정치화 경향이 앞으로 얼마나 지속될 것인지, 그리고 독일 사회에 어떤 식으로 영향을 미칠지 예측하기는 아직 이르다. 하지만 젊은이들의 비판의식과 정치적 역동성이 독일 사회 발전의 중요한 추진력 중 하나였다고 믿는 이들은 독일 청년층의 왜소해진 정치의식에 대해 우려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어떻게 될 지 좀 더 지켜볼 일이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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