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쑥날쑥한 외형. 벽돌과 화강암이 불규칙하게 연결된 다각형 건물인 ‘구산동도서관마을’은 10여 년에 걸쳐 주민들이 사업 기획부터 예산 확보, 운영까지 전 과정에 참여해 만든 도서관이다. 2004년, 제대로 된 공공도서관이 은평구립도서관 한 곳일 정도로 은평구의 도서관 사정은 열악했다. 이를 아쉽게 여긴 대조초등학교 학부모들이 뜻을 모아 동사무소 구석에 ‘대조 꿈나무어린이도서관’을 건립했다.
이 경험을 바탕으로 2006년 주민들은 마을에 제대로 된 도서관을 만들자며 서명운동을 벌여 11일 만에 2000개 이상의 서명을 모았다. 2008년, 구산동에 있는 낡은 빌라와 주택 여덟 채를 구비로 매입해 건립을 준비했지만, 예산이 부족해 결실을 맺기 힘들었다. 건립이 실현된 건 2012년 서울시 주민참여예산사업에 선정된 덕택이다. 건물을 짓는 전 과정은 은평구 내 5개 시민단체를 주축으로 한 ‘은평도서관마을협동조합’이 주도했다.
예산 지원을 받았지만, 건물을 철거하고 새로 짓기엔 역부족이었다. 주민들은 논의 끝에 리모델링을 결정했다. 마치 도서관을 위해 모인 것처럼 주민들이 각각의 건물을 모아서 도서관을 만들어보려고 한 것이다. 구입한 구옥 여덟 채 중 안전상 문제가 되는 다섯 채는 허물고, 세 채의 외관을 살린 도서관이 만들어졌다.
리모델링을 전반적으로 거쳤지만, 일부 공간에 남은 구옥의 흔적에서 옛 구산동 마을의 추억은 여실하다. 골목은 복도가 되고, 주차장은 미디어실, 거실은 토론의 공간이 됐다. 붉은 벽돌의 건물, 회색의 화강석들…. 시대별로 유행을 탄 건축 자재의 향연이 벽면마다 자리한다.
여러 건물을 연결한 형태라 도서관 구조가 복잡하긴 하다. 하지만, 주민들 손길이 모여 만들어진 공간이라고 생각한다면 그 단점도 이 공간만의 특색이 된다. 윤지영(여·31) 씨는 “다른 도서관과 같이 네모나지 않고 울퉁불퉁, 꼬불꼬불한 게 이 도서관만의 매력인 것 같다”며 “고택을 연결해 만들었다는 특징이 우리 동네의 시그니쳐가 될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붉은 벽돌을 뒤로하고 책을 읽던 김진화(여·45) 씨는 예전 정취가 좋아 이곳에서의 독서를 즐긴다고 했다. 김진화 씨는 “건물을 아예 무너뜨리고 새로 짓는 데 들어가는 환경비용이 크기에, 건물을 재사용하는 예시는 좋은 본보기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주민의, 주민을 위한, 주민에 의한
건물 곳곳에는 주민들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어린이들이 자유롭게 뒹굴며 책을 읽을 수 있도록 어린이자료실을 온돌 바닥으로 만들고, 좁은 공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강당(청소년 힐링캠프)에 입출식 계단 좌석을 설치했다. 마을에서 활동 중인 미디어팀들의 제안으로 녹음 스튜디오도 만들었다.
그중 만화자료실은 말 그대로 주민의, 주민을 위한, 주민에 의한 공간이다. 설문조사 결과, 주민들이 가장 필요로 해서 만들어졌다. ‘만화의 숲’이라고 불리는 이 자료실은 건물 2층에서 4층까지 걸쳐 있다. 도서관이 소장하고 있는 만화자료는 9월 기준으로 7524권. 2층은 어린이를 위한 만화, 3층은 만화 및 관련 이론서, 4층은 만화 및그래픽 노블로 구분돼 있다. 이곳을 찾은 가족단위의 방문객들은 어른아이 할 것 없이 취향에 맞는 만화책을 골라 읽을 수 있다.
구산동도서관마을의 직원도 대부분 동네 사람이다. 박현주 관장은 “다른 공공도서관보다 굉장히 주민 친화적”이라고 말했다. 새것처럼 휘황찬란하지도 않고, 다른 데와 비교해 현대화된 것도 아니지만, 결국 이 도서관은 사람 중심이라는 큰 강점이 있다.
“생활SOC 사업의 핵심도 결국 사람 중심이잖아요. 여기서 무엇을 하는가가 아니라, 여기서 어떻게 아이들과 어울리는가를 고민해야죠. 우리가 실패하는 건 항상 형식만 남을 때예요. 사업을 위한 사업이 아니라, 사람이 중심이 돼야죠. 한정된 예산, 한정된 땅, 기존 주택의 활용처럼 제약이 많았지만, 주민들과 함께했기 때문에 이렇게 주민들의 발걸음이 이어질 수 있지 않을까요.”
글│남민서 기자 faith@
사진│최낙준 기자 choig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