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대면 수업 지속으로 설 곳 잃은 대학가 문화사
비대면 수업 지속으로 설 곳 잃은 대학가 문화사
  • 이현민 기자
  • 승인 2021.05.16 16: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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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이후 급격한 매출 감소

무인 인쇄소·태블릿 PC 영향도

 

  본교 정경대 후문을 나서면 골목길을 사이에 두고 일렬로 늘어선 문화사들을 볼 수 있다. 문화사는 수십 년간 학교 구성원들의 출력, 복사, 제본, 분철 등 다양한 인쇄 작업을 맡아왔고 동시에 대학의 ‘문화’를 축적해왔다. 여전히 가게 문은 열려있지만, 드나드는 사람은 많지 않다. 코로나19의 여파로 대면 수업이 이뤄지지 않고 학교에 찾아오는 사람이 감소하면서 본교 인근 문화사들은 위기를 맞았다. 적게는 30%, 많게는 70%까지 매출이 줄어 인건비와 임대료 등 가게 유지도 힘든 상황이다.

  26년간 정경대 후문을 지켜온 ‘한컴문화사’는 계속된 적자에 이번 달 운영을 끝으로 폐업한다. 텅 빈 가게에서 텔레비전을 보던 ‘한컴문화사’ 사장 A씨는 “장사가 안돼서 가게를 닫는데 무슨 할 말이 있겠냐”며 씁쓸한 심정을 드러냈다. 조용한 문화사 안에서는 프린터 대신 텔레비전 소리만 맴돌았다.

학생들로 북적였던 '현대문화사'에는 이제 손님들의 발걸음이 뜸하다.
학생들로 북적였던 '현대문화사'에는 이제 손님들의 발걸음이 뜸하다.

 

비대면 수업에 직격타

  학교 인근 문화사가 직면한 매출 저하의 가장 큰 원인으로 비대면 수업이 꼽힌다. 코로나19로 인해 대부분의 수업이 비대면으로 진행되면서 학교를 찾는 학생들의 발걸음이 끊겼다. ‘가나안문화사’ 사장 B씨는 “당장 바깥을 내다봐도 사람이 별로 없다”며 “안 그래도 학교에 없는 학생들이 복사집까지 찾아오길 바라는 것은 무리”라고 말했다. 본교 기숙사에 거주하는 권준혁(미디어21) 씨는 “인쇄를 해야 해도 학교에 갈 일이 없으니 기숙사 내 시설을 사용하지, 굳이 문화사에 가진 않는다”고 밝혔다.

  교내 강연이나 세미나 또한 온라인으로 열리는 경우가 많아지며 문화사는 단골손님을 잃었다. 이전까지 주로 책자 형태로 배포되던 자료 제작이 줄었기 때문이다. ‘현대문화사’ 사장 유진(남·60) 씨는 “예전에는 교수님들이 자주 와서 논문이나 자료들을 대량으로 인쇄해가고는 했는데, 요즘은 교수님들도 문화사를 이용하지 않아서 매출이 크게 줄었다”고 말했다.

  강의 자료를 맡겨두면 학생들이 찾아와 복사하거나 제본하던 문화도 사라진 지 오래다. 문화사가 교재를 주문받고 도맡아 판매하는 경우도 있지만, 최근에는 택배 거래 수요가 높아지며 교재 판매 매출도 줄었다.

 

다른 대체 서비스에 경쟁력 잃어

  기존 문화사들이 심각한 매출 저하를 겪은 것과 반대로 무인 인쇄소는 확산 중이다. 작년 11월과 올해 3월, 본교 정경대 후문과 정문 앞에 무인 인쇄소인 ‘프린트카페’가 개업했고, 지난 4월에는 정경대 후문에 ‘밤새출력’이 새로 생겼다. 넓고 쾌적한 시설과 24시간 운영, 소액도 카드 결제가 가능하다는 점 등의 장점이 있다. 프랜차이즈 업체인 ‘프린트카페’의 경우, 60개 가맹점의 한 달 이용자 수가 60만 명을 기록할 정도로 빠르게 성장했다.

  무인 인쇄소가 생기기 전까지는 문화사를 애용했다는 정경대 16학번 C씨는 “코로나19 이후로 무인 시스템을 이용하는 게 훨씬 안심된다”며 “사람이 없어서 더 편하게 느껴진다”고 밝혔다. 이선우(미디어20) 씨는 “밤늦게 인쇄할 일이 생겨도 항상 열려있는 게 가장 큰 장점”이라고 말했다. 이어 “강의 자료 이외에 개인적인 문서를 출력할 때도 있는데, 무인 인쇄소에선 다른 사람 눈치를 볼 필요도 없다”고 덧붙였다.

  태블릿 PC의 보편화 또한 전반적인 인쇄업 쇠퇴와 문화사 매출 감소에 영향을 미쳤다. 현재 본교 강의 자료의 대부분은 블랙보드 시스템을 통해 pdf와 같은 웹 파일 형태로 제공된다. 태블릿 PC를 사용하면 별도의 변환이나 출력 없이도 화면 위에 바로 필기할 수 있다. 김나영(미디어20) 씨는 “필기를 포함한 대부분의 작업을 태블릿으로 한다”며 “태블릿 위에 필기한 것은 굳이 다시 인쇄해서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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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밤, 사람들이 정문 앞 무인 인쇄소 '프린트카페'를 이용하고 있다.

 

대학 문화의 일부였던 문화사

  현재 대부분의 본교 인근 문화사들은 운영난을 겪고 있다. 계속되는 적자에 폐업을 결정한 점포도 있지만, 여전히 가게를 유지하기 위해 애쓰고 있는 이들도 많다. 30년 넘게 ‘후문사’를 운영하고 있는 D씨는 “가겟세도 안 나오고 힘든 상황이지만 가게를 닫고 싶지는 않다”고 말했다. ‘가나안문화사’ 사장 B씨는 “코로나19 이후 가게 임대료를 낮춰줘서 겨우 버티고 있다”고 전했다. ‘현대문화사’ 사장 유진 씨는 “나중에 문화사가 모두 폐업해 무인 인쇄소만 남으면 제본 등 학생들에게 필요한 인쇄 작업들이 제대로 이뤄질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코로나19 경제지원정책의 일환인 소상공인 대출을 받아 가게를 유지 중이다.

  과거 문화사의 모습은 현재와는 사뭇 달랐다. 시험기간이면 가게 밖으로 학생들의 줄이 길게 늘어섰다. 학생운동이 한창일 때에는 시위에 참여하느라 결강한 친구를 위해 자기 노트를 복사해주러 옹기종기 모였다. 많은 복사물에 다른 과목의 자료를 복사하는 실수도 있었다. 꾸준히 본교에 수익금의 일부를 기부해온 유진 씨는 “예전에는 가릴 것 없이 학생들과 호형호제하며 각별한 정을 나눴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는 “시간이 흐르면서 문화사만 없어지는 게 아니라 과거의 대학 문화도 함께 사라져가는 것 같아 아쉽다”고 말했다.

 

글 | 이현민 기자 neverdie@

사진 | 서현주 기자 zm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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