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간 인세보고 없어도 ··· “출판사 말만 믿는 수밖에요”
10년간 인세보고 없어도 ··· “출판사 말만 믿는 수밖에요”
  • 박다원·이주은 기자
  • 승인 2021.07.24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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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란 속 출판계 불공정 관행
전산망을 통해 출판사·서점·유통사별로 분산된 도서유통정보를 실시간으로 한 번에 확인할 수 있다.

  지난 5월 소설가 장강명 씨는 SNS를 통해 출판사가 인세와 계약금 일부를 제대로 지급하지 않고 사전 협의 없이 오디오북을 발행한 사실을 지적했다. 이에 출판계 대표 단체인 대한출판문화협회(출협) 측은 한국의 출판계에서 이번 사태는 일부 출판사의 대단히 예외적인 일탈 행위라고 해명하고 나섰다. 하지만 곧바로 작가들의 거센 반발이 이어지며 출판계의 오랜 폐습과 불공정한 관행들이 수면 위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국내 유통구조는 서점이 출판사로부터 책을 위탁해 판매하는 복잡한 구조인 데다, 유통망이 통합돼 있지 않아 출판사와 저자는 출고된 책의 행방과 판매부수를 알 수 없다. 이러한 도서 유통의 불투명성을 해결하기 위해 출판유통통합전산망을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출판사, 유통사, 서점별로 분리돼 있는 책의 생산, 유통, 판매 정보를 통합해 도서 유통의 불투명성을 해결하려는 취지다. 1일부터 출협이 전산망의 시범 운영을 시작한 가운데 문화체육관광부 역시 오는 9월 단계적 구축을 마친 전산망의 본격적인 운영에 나설 예정이다. 출판사 김영사고세규 대표이사는 그동안 출판사들은 출고된 책의 행방을 알기 어려워 불필요한 추가 인쇄를 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출판유통통합전산망에 모든 서점이 참여한다면 책의 판매가 어디서 어떻게 이뤄지는지 실시간으로 알 수 있어 훨씬 효율적인 업무가 가능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통보식 인세지급에 저자들은 속수무책

  “출판사의 불공정한 관행들을 공론화해봤자 이득보다는 손해가 더 크거든요. 괜히 문제 작가로 찍히기도 하고요.” 지난 1월 베스트셀러 <90년생이 온다>의 저자 임홍택 씨는 종이책 판매부수와 인쇄부수를 확인하다, 인쇄부수가 판매부수보다 10만 부 더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인쇄됐지만 판매되지 않은 책이 발생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 수가 너무 컸다. 이에 임홍택 작가는 수차례 출판사 측에 판매부수를 재확인해달라고 요청하고 미지급된 인세의 추가지급을 항의했다. 그 결과 2개월이 지나고서야 출판사로부터 뒤늦게 인세 15000만 원을 받을 수 있었다. 국내 출판 유통 구조상 작가는 출판사가 통보하는 자료 이외에는 정확한 판매부수를 파악할 길이 없는 탓에 벌어진 일이다.

  오래전부터 작가들은 저자에게 공개되지 않는 출판유통구조로 입은 피해를 호소해왔다. 출판사로부터 제때 인세보고를 받지 못하거나 그 진위가 의심돼도, 정보가 없어 조치를 취하기가 어려운 처지였다. 현재 작가들은 출판사에서 책이 나오면 분기 혹은 해마다 인세보고를 받지만, 판매량이 없을 경우 인세가 발생하지 않아 인세보고를 받을 수 없다. 책 판매량을 직접 확인할 수 없는 작가들은 출판사의 말만 믿는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조정현 소설가는 계약 당시 받은 선인세를 제외하고 10년 가까이 단 한 번도 인세보고를 받지 못했는데 직접 서점에서 책을 확인해보니 3쇄까지 진행된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 전했다. 그는 인세보고를 요청하자 아직 인세가 나올 만큼 팔리지 않아 보고할 수 없다는 답변만 돌아올 뿐이었다팔리지 않은 책에 대해 책임을 느껴 섣불리 내 책이 어떻게 관리되고 있는지 궁금해도 차마 물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설명했다.

  출판사로부터 인세보고를 받지 못하면 작가들은 자신의 책 판매부수를 물류창고의 재고 부수 확인증이나 인쇄소의 인쇄발주증서를 통해 확인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마저도 어려운 실정이다. 조정현 작가는 물류창고, 인쇄소는 작가보다는 출판사와 협력해 일하는 곳이라며 만약 증빙자료를 위조하더라도 작가는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주장했다. 한국과학소설작가연대 측은 유통, 수입분배, 크게는 납품과 반품까지 모두 출판 전문가의 영역에서 관리되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이어 출판계의 관행에 대해 잘 모르는 작가는 그 중간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매우 한정적이기에 불공정한 상황을 겪어도 적극적인 대응이 어려울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현실적 어려움 많아 해묵은 논의만

  출판계 종사자들은 우리나라 출판 유통구조 특성상, 출판사가 판매부수에 대한 정확한 인세를 바로 지급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우리나라의 출판유통 구조는 위탁판매구조로, 서점이 주문하지 않아도 출판사는 우선 책을 보낸 후, 나중에 팔리지 않은 책을 다시 반품받게 된다.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는 위탁판매 구조에서 출판사는 출고부수와 반품부수만 알 수 있다출고는 되었으나 전국 곳곳의 서점에 팔리지 않은 채 남아있는 책의 수를 파악할 길이 없다고 설명했다. 고세규 대표도 출판사와 직거래한 서점이라면 수량 파악이 어느 정도 가능하지만, 많은 경우 출판 유통 시 도매상과 소매상을 거친다도매 서점이나 소매 서점에 책이 몇 부가 남았는지 파악하는 것이 상당히 더딜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출판사들은 출고부수만큼 인세를 지급하거나 반품률을 추정해 인세를 지급하는 방식을 채택해왔다. 초판의 경우 출고부수대로 저자에게 인세를 지급하고 2, 3판이 계속될 경우에는 출판사가 자사의 평균 반품률을 토대로 판매부수를 추정해 작가들에게 인세를 지급했다. 장은수 대표는 출판사가 반품률을 추정해 인세를 정산하는 기존 체제는 오차를 감수해야 하고 증빙이 어렵다는 점에서 분쟁의 소지가 크다고 밝혔다. 서점과 출판사 각각의 전산망을 통합해 책의 실제 판매부수를 공개하는 시스템을 구축하려는 움직임은 오래전부터 계속됐다. 하지만, 운영인력과 비용문제로 현실적인 한계에 부딪히는 경우가 많았다. 해마다 8만 종가량의 책이 출간되는 데다, 서점들은 저마다 다른 분류체계를 가지고 있어 통합이 쉽지 않았던 탓이다.

 

  ‘출판유통통합전산망’, 해결책 되나

  문화체육관광부는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과 함께 오는 9월부터 시행될 출판유통통합전산망 운영 계획을 발표했다. 2018년부터 단계적 구축과정을 거친 출판유통통합전산망은 예산 60억 원을 들여 구축한 전산망으로, 도서 유통의 불투명성을 해결하고자 마련됐다.

  지금까지 출판사는 주요 대형서점들의 공급망 관리 시스템(Supply Chain Management, SCM)에 접속해야만 개별적으로 판매 현황을 확인할 수 있었다. 출판유통통합전산망이 구축되면, 출판물의 생산, 유통, 판매과정을 실시간으로 정보화해 분산돼 있던 출판유통정보를 통합 관리할 수 있게 된다. 이에 판매부수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는 불투명한 기존의 출판 유통 구조 탓에 인세가 누락되어 발생한 피해들이 개선될 전망이다.

  한편, 정부 주도로 통합전산망을 운영하는 것에 대한 우려도 적지 않다. 출판유통통합전산망은 개별 판매 정보를 제삼자에게 함부로 공표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출판계 종사자들은 개별 서적의 판매 정보를 정부가 별도의 공식 절차 없이 감시하는 것은 출판이 가진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소지가 있다고 주장한다. 통합전산망 운영 주체를 둘러싼 논란에 대해 고세규 대표는 국가에서 계속 운영하게 되면 공적 자금의 투자로 사기업의 부담을 덜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면서도 정부가 각 사기업들의 데이터를 통제할 수 있다는 위험성도 있을 것이라는 입장을 전했다.

 

  정부 아닌 민간 주도 전산망 운영 주장도

정부가 출판유통통합전산망의 운영 주체가 될 경우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다는 우려에 따라, 출협은 책 판매부수를 확인할 수 있는 저자 출판사 도서 판매정보 공유시스템을 자체적으로 구축해 1일부터 시범 운영을 시작했다. 지난 630일 기자회견에서 윤철호 대한출판문화협회 회장은 전 세계적으로 유통망 정보 관리는 서점, 출판계가 운영하고 있는 것이 상식이자 통례라며 문화체육관광부 주도의 출판유통통합전산망의 추진 계획에 동의하기 힘들어 자체 전산망을 구축하게 됐다고 전했다. , 출판계는 캐나다의 북넷캐나다, 독일의 엠파우베(MVB), 일본의 출판인프라센터(JPO) 등 대부분의 출판선진국이 출판유통통합전산망 운영에 정부가 직접 관여하지 않는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장은수 대표는 대부분의 국가는 정부가 시스템 구축 및 운영에 필요한 자금을 지원하고, 전산망 운영을 전적으로 민간의 자율에 맡기는 구조를 채택하고 있다반드시 민간 거버넌스가 구축돼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일각에서는 출협의 도서판매정보 공유시스템과 문체부의 출판유통통합전산망의 중복운영이 혼란을 제기할 수 있음을 지적한다. 이에 대해 고세규 대표는 중복운영에 대한 우려는 이르다도서판매정보공유시스템이 임시방편으로 전산망의 기술적 문제를 연구하고, 출판사들의 참여 동의를 받는 과정에 기여한다면 나름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출협과 진흥원의 전산망이 장기적으로는 통합될 것이라는 예측도 있다. 장은수 대표는 정부와 출협이 협력 구조를 만들어내는 게 행정상 가장 효과적일 것이라며 불필요하게 두 전산망을 운영하지 않도록 서로 양보하고 상생하는 관계로 나아가야 한다고 제안했다.

 

  전문가들은 출판유통통합전산망의 시행이 향후 출판계 전체의 공신력을 높일 것이라 전망한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투명한 출판문화를 일궈가기 위해서는 창작자, 출판사, 정부 각자의 노력이 합쳐져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장은수 대표는 출판계와 저자는 상생하는 관계라며 정부와 출판계 전체, 저작권자들의 협력구조를 만들고 대화를 지속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 고세규 대표는 출판사와 정부가 신뢰를 회복해 서로 협력하고, 작가와 출판사는 상호 입장을 존중하는 계약 문화를 만들어나가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 박다원·이주은 기자 press@

일러스트 | 조은결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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