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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총학, 청소노동자 설문조사

좁은 공간·하수관 누수 등 문제 색인

학교 측도 환경 개선 필요성 공감해

 

  백주년기념관 청소 노동자 A씨는 공식적인 출근 시간보다 30분 이른 5시 30분에 학교에 도착한다. 정시에 출근하면 시간 안에 아침 업무를 끝낼 수 없기 때문이다. 아직 학생들이 등교하지 않아 에어컨은 나오지 않는다. 업무를 마치고 나면 목에 두르고 있던 수건이 흠뻑 젖는다. 샤워하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지만, 마땅히 샤워할 곳은 없다. 9시부터 한 시간 주어지는 휴식 시간, 좁은 휴게실에서 지친 몸을 달랜다. 이후 화장실 관리와 계단 청소가 시작된다. 하루에 한 번은 담당 화장실 변기가 막혀 물이 넘친다. 몸에 밴 화장실 냄새는 잘 빠지지 않는다. 또 한 번의 고된 노동이 끝난 후 그는 다시 휴게공간으로 향한다. 이제 휴게실은 식당이 된다. 건물 사용자의 민원으로 냄새나는 반찬은 먹지 못한다. 열악하고 초라하지만, 휴게실은 지친 노동자가 쉬고 밥을 먹을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다. 8시간의 노동과 2시간의 휴식이 끝난 후 A씨는 집으로 향한다.

  서울총학 인권연대국(국장=김수민)은 8월 17일부터 본교 64개 건물에 근무하는 청소노동자 268명을 설문조사했다. 자료에 따르면 노동자 45.8%가 ‘개선이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으로 휴게공간을 뽑았다. 임금 인상은 38.4%로 뒤를 이었다. 이종선 노동문제연구소 부소장은 “청소 노동자 휴게 공간이 교직원과 학생의 휴게공간과 동일한 조건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며 “노동자들이 휴게공간에서 피로와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청소노동자들의 휴게공간에 구체적으로 어떤 문제가 있는지 들여다보았다.

 

에어컨 미작동과 비좁은 공간

  백주년기념관 여자 휴게실은 D라운지 열람실 바로 옆에 위치한다. 취재진이 들어가니 남은 공간이 없었다. 청소노동자 6명이 사용하기에 턱없이 비좁았다. “모두 앉으려면 퍼즐 맞추듯 차곡차곡 앉아야 해요.” 공간이 좁고 사람이 많다 보니 쉽게 더워졌다. 에어컨은 나오지 않았고, 청소노동자들이 사비로 구매한 선풍기만 돌아가고 있었다. “창문이 없으니 에어컨이라도 작동해야 해요. 그런데 휴게공간에 에어컨을 틀면 열람실이 추워져서 틀 수 없다고 하더라고요.” 좁은 공간과 에어컨 미작동은 비단 백주년기념관 여자 휴게실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인권연합동아리 고려대지부의 휴게공간 실태조사에 따르면 본교 44개 휴게공간 중 10곳이 최소 전체면적 6m2 를 확보하지 못했고, 5곳은 냉방 시설이 없었다. 휴게공간이 열람실 옆에 있어 겪는 불편은 또 있었다. “학생들이 공부하고 있으니 작은 소음도 조심스러워요. 휴게공간이지만, 편하지 않은 곳이죠.” 휴게실 옆에 있는 열람실 출입문에는 대화나 통화를 자제해달라는 쪽지가 붙어있다.

백주년기념관 여자 휴게실 옆 열람실 출입문에 붙어있는 메모이다. 열람실 옆 휴게공간에서 노동자는 작은 소음에도 조심스럽다.
백주년기념관 여자 휴게실 옆 열람실 출입문에 붙어있는 메모이다. 열람실 옆 휴게공간에서 노동자는 작은 소음에도 조심스럽다.

  용역업체 IBS인더스트리 김홍학 소장은 “에어컨 배관 추가 설치나 휴게공간 확장은 학교가 담당해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 학교가 건물 설계와 설비를 담당하는 상황에서 용역업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는 것이다. 학교 측은 백주년기념관 여자 휴게실의 문제점을 몰랐다는 입장이다. 이용재 총무부 차장은 “용역업체가 휴게공간의 문제점을 조사하고 총무부에 보고해야 한다”며 “용역업체로부터 보고 받은 바 없어 문제점을 알 수 없었다”고 말했다. 학교에서 자체적으로 휴게실 조사를 하지 않기 때문에 환경 개선은 용역업체의 문제 제기가 없으면 제대로 이뤄질 수 없다. 용역업체의 정밀한 휴게실 조사와 문제 보고가 필요한 상황이다.

  백주년기념관 남자 휴게실은 누수로 인해 천장이 갈색으로 물들었다. 휴게실 내부 벽면에도 누수로 인한 자국이 남아 있었다. “하수관 물이 새서 악취가 나요” 청소노동자 B씨가 물이 떨어지는 청소 도구 수납공간을 보여주며 말했다. 창고 가장자리에 놓인 양동이가 물로 가득 차 있었다. 하수구 냄새가 진동했다. 창문은 없었고, 환풍기는 작동하지 않았다. “휴게실 문을 닫아 놓으면 냄새가 빠지지 않아요. 사람 사는 곳인데 너무 합니다.” B씨에게 휴게실은 옷을 갈아입기 위해, 겨울엔 밖이 추워서 ‘어쩔 수 없이’ 오는 공간이었다.

  학교 본부는 용역업체의 보고에 따라 백주년기념관 남자 휴게실의 에어컨을 정비했으며, 고장 난 난방시설을 수리 중이다. 그러나 근본적 문제인 하수관 누수 사실은 놓치고 있었다. 지금도 하수관 정비 계획은 잡혀 있지 않다.

국제관 휴게공간에 싱크대가 없어 노동자들은 장애인 화장실에서 설거지한 다.
국제관 휴게공간에 싱크대가 없어 노동자들은 장애인 화장실에서 설거지한다.

  청소노동자는 주로 휴게공간에서 점심을 해결한다. 이들은 싸 온 음식을 전자레인지에 돌리지 못한다. 먹고 싶은 음식도 먹지 못한다. 냄새가 난다는 민원 때문이다. 국제관 청소노동자 C씨는 “사람이 어떻게 밥만 먹나요. 용역업체가 식비를 좀 더 지급해 밖에서 점심을 먹게 하거나 학교가 환풍시설을 강화해 휴게공간에서 편하게 먹도록 해줘야죠”라고 말했다. 이용재 차장은 “환풍시설 추가 설치는 비용 문제로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밥을 먹고 난 이후도 문제다. 싱크대가 없어 장애인 화장실에서 식기를 설거지한다. “세면대가 작으니 설거지하기 불편해요. 학생들에 눈치도 보이고요.” 공기청정기나 제습기 등의 비품이 필요하지 않냐는 질문에 C씨는 “공기청정기고 뭐고 바라지도 않는다”며 “인간이 살아갈 수 있는 기본적인 구조는 마련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LG-POSCO 경영관 노동자와 백주년기념관 남자 노동자는 이 곳에서 샤워한다.
LG-POSCO경영관 노동자와 백주년기념관 남자 노동자는 이 곳에서 샤워한다.

씻을 수 있는 권리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 제79조 2항에 따르면 사업주는 청소노동자가 사용할 수 있는 세면·목욕 시설을 설치하고 필요한 용품과 용구를 갖춰 둬야 한다. 본교 청소노동자의 오전 업무는 에어컨이 작동하지 않는 6시부터 9시까지 이뤄진다. 업무를 마치고 나면 온몸에 땀이 흘러 씻을 공간이 필요하다. 인권연합동아리의 실태조사에 따르면 44개 휴게공간 중 28개 휴게공간이 샤워 시설을 갖추지 못했고, 설령 있더라도 사용하기 어려울 정도로 질이 낮았다. 백주년기념관 여자 노동자 A씨는 “땀을 흘리고 씻지 못해 감기에 자주 걸린다”고 말했다. 백주년기념관 남자 노동자와 LG-POSCO경영관 노동자는 ‘마포간’이라 불리는 마포 걸레 빠는 곳에서 몸을 씻는다. 백주년기념관 노동자 B씨는 “땀이 흐르니 더러운 마포간에서라도 씻어야 한다”며 고충을 토로했다. 법학관 구관의 샤워 시설은 샤워 시설이라 부르기 민망할 정도로 초라하다. 공간을 둘러싼 벽이 존재하지 않으며, 바닥엔 타일이 깔려있지 않다. 비교적 샤워 시설이 잘 갖춰져 있던 학생회관도 단수돼 지금은 사용할 수 없다.

법학관 구관의 샤워 시설. 공간을 둘러 싼 벽도, 바닥 타일도 없다.
법학관 구관의 샤워 시설. 공간을 둘러 싼 벽도, 바닥 타일도 없다.

학생들의 연대 활동 이어져

  휴게공간의 열악한 환경을 접한 학생들은 노동자와 연대했다. 서울총학 인권연대국은 ‘교내 청소노동자 처우 개선 사업’의 일환으로 64개 건물의 휴게공간을 1차 설문조사했다. 이후 사업에 참여한 인권연합동아리가 민주노총 고려대분회와 함께 33개 건물을 2차 현장 조사했다. 총학은 조사 결과를 토대로 30페이지 분량의 환경 개선 요구안을 오는 14일 학교 측에 전달할 예정이다. 김수민 인권연대국장은 “요구안을 학생들에게도 공개할 것”이라며 청소노동자 처우 개선 사업에 관심을 촉구했다. 권기유 인권연합동아리 팀장은 “청소노동자가 학교의 구성원으로 존중받을 수 있도록 학생들의 지속적인 관심과 참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뉴스1 보도 이후 경영본관 휴게실에 제습기가 설치됐다.
뉴스1 보도 이후 경영본관 휴게실에 제습기가 설치됐다.

  8월 7일, 뉴스1은 본교 법학관 신관과 경영본관 휴게실의 열악한 환경을 보도했다. 이후 학교는 법학관 신관 휴게실의 곰팡이 및 매연 냄새 처리를 위해 환풍시설을 수리했다. 지하에 위치한 경영본관, LG-POSCO경영관, 현대자동차경영관 휴게실엔 제습기를 설치했다. 법학관 신관 노동자는 “휴게실의 환기가 잘 돼 냄새가 많이 없어졌다”고 말했다. 경영본관 노동자는 “방이 아주 쾌적해졌다”며 만족감을 표했다. 학교의 작은 조치에도 휴게공간은 크게 개선됐다. 그러나 계단 밑 가건물 애기능생활관 휴게실과 사람 두 명이 겨우 들어갈 수 있는 동원글로벌리더십홀 휴게실 등 열악한 공간이 남아있다. 이용재 총무부 차장은 “용역업체로부터 보고된 문제점을 수용하고 개선하고 있다”며 “앞으로도 필요한 부분을 개선하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종선 노동문제연구소 부소장은 “청소노동자에 좋은 휴게공간을 제공하는 것은 우리 사회 노동 환경과 삶의 질을 전반적으로 높이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글 | 류요셉 기자 sonador@

사진 | 김예락 기자 emancip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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