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정 집단 향해야 성립 가능

국민 10명 중 7명 경험하기도

“형사 처벌만이 능사 아니다”

 

  ‘틀딱’, ‘급식충’, ‘~조무사’, ‘쪽발이’, ‘짱깨’, ‘개슬람’, ‘한남충’, ‘똥꼬충’…. 인터넷에서 어렵지 않게 마주하는 혐오표현이다. 누군가는 이를 유머로 소비하지만, 누군가는 노골적이고 저속한 표현으로 인한 피로감을 호소한다. 사회적 참사의 피해자도 익명인 가해자의 공격 대상이 된다. 최근 1년간 이태원 참사에 관한 댓글 230여만 건 중 69만 건(30%)은 악의적 평가와 혐오성 댓글이었다.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는 10월 참사 1주기와 인접한 27일부터 31일까지 “언론사엔 선제적 댓글 창 닫기를, 양대 포털사업자 네이버, 카카오엔 일시적 댓글 서비스 중지를 요청한다”고 호소했다.

  한국인터넷자율정책기구(KISO)는 지난 4월 ‘혐오표현 자율정책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온라인상 혐오표현 관련 인터넷 사업자 공통 가이드라인이 최초로 마련된 것이다. 가이드라인은 온라인 공간에 개재된 표현이 △특정 속성에 대한 것이고 △특정 집단이나 그 구성원을 대상으로 하며 △차별을 정당화·조장·강화하거나 폭력을 선전·선동하면 혐오표현으로 판단한다. KISO 회원사 중 하나인 네이버는 6월 제정된 가이드라인에 따라 혐오표현 규정을 구체화했다.

  혐오표현 규제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다는 비판도 있다. 나쁜차별금지법반대기독교연합전국모임 등은 7월 반대 성명을 발표했다. 성명에는 “KISO와 회원사가 인터넷상의 의견, 표현, 게시물에 대해 소위 혐오표현이라는 이유로 삭제 등을 조치하는 행위는 정보 게재자의 언론의 자유라는 기본권을 직접 침해하는 것”이라는 내용이 포함됐다. 혐오표현은 무엇이며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혐오표현≠혐오스러운 표현

  혐오스러운 표현과 혐오표현은 구분이 필요하다. 국가인권위원회가 2019년 발표한 ‘혐오표현 리포트’는 혐오표현을 ‘성별, 장애, 종교, 나이, 출신 지역, 인종, 성적지향 등을 이유로 어떤 개인·집단에게 모욕, 비하, 멸시, 위협 또는 차별·폭력의 선전과 선동을 함으로써 차별을 정당화·조장·강화하는 효과를 갖는 표현’이라 정의했다.

  특정 속성을 이유로 차별받는 혐오표현의 대상 집단은 시대와 공간에 따라 바뀔 수 있다. 박아란(미디어학부) 교수는 “혐오표현은 선천적·후천적 이유로 형성된 사회적 약자 또는 소수자 집단에 대한 차별과 혐오, 증오를 드러내는 것”이라며 “소수자가 누구냐, 소수자를 겨냥하는 것만을 포함해야 하는가에 대한 논란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준일(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장애인과 성소수자처럼 다수자가 될 수 없는 절대적 소수자에 집중해야 한다”며 “소수자가 권력자에 대해 조롱의 언어를 하는 것은 괴롭힘이 아니라 해학, 풍자, 권력 감시, 비판이라고 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권력 위계가 작동하는 현실에서 일률적으로 혐오표현을 판단하긴 어렵다는 것이다.

  ‘가짜 뉴스’와 ‘역사 부정’ 역시 혐오표현 논의에서 빼놓기 어렵다. 소수자 집단은 거짓 정보를 빠르게 퍼뜨리는 가짜 뉴스의 피해자가 되기 쉽다. ‘스웨덴에서 발생한 성폭력의 92%가 이슬람 난민이 저지른 것이며 피해자 절반이 아동이다’, ‘아프간 이민자의 성범죄율이 내국인보다 79배가 높다’와 같은 가짜 뉴스로 난민에 대한 편견이 퍼져나갔다. ‘제주퀴어문화축제 차량이 목회자를 밀고 지나갔다’는 성소수자 대상의 가짜 뉴스도 퍼진 바 있다.

  역사 부정은 객관적으로 평가가 이뤄진 전쟁, 독재, 학살 등에 의한 피해를 부정하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홀로코스트는 유대인이 지어낸 것으로 존재하지 않거나 과장된 것이다’와 같은 주장이 있다. 국내에서도 광주 북한군 개입설과 위안부 자발적 성매매설 등 역사 부정이 있었다. 이준일 교수는 “역사적 사실을 부정함으로써 피해자 당사자뿐 아니라 유족들의 명예를 훼손하게 된다”며 “역사 부정 역시 역사적 진실을 왜곡해 당사자들의 법적, 사회적 지위를 떨어뜨리는 혐오표현”이라고 설명했다.

 

  농담처럼 소비되는 혐오표현

  2021년 국가인권위가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지난 1년 동안 온·오프라인에서 혐오표현을 접한 경험이 있는 비율은 전 국민의 70.3%에 달했다. 2019년 64.2%에 비해 6.1% 증가한 수치다. 대한민국에서 혐오표현을 보지 않는 것이 더 어려워졌다.

  형사정책연구원이 2017년 발표한 보고서 ‘혐오표현의 실태와 대응방안’에 따르면 2016년부터 2017년 6월 15일까지 1심 판결이 선고된 온라인상의 모욕 사건 376건 중 혐오표현은 119건으로 31.6%를 차지했다. 혐오표현은 다양했다. “한국 땅에 티베트인 씨를 뿌려 좋을 게 없다”, “○○역으로 나와라, 니 휠체어 도로로 확 밀어버리게”, “장애새끼”, “누가 바텀이냐” 등 노골적인 적대 댓글이 만연했다. 젠더에 기반한 혐오표현이 114건으로 압도적으로 많았는데, ‘룸망주’ 등 성적 문란함을 표현한 경우가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했고, ‘김치년’, ‘메갈’ 같은 여성 집단 전체를 비하하는 표현도 있었다.

  특히 우리나라에선 혐오표현이 농담으로 소비된다. <보통 일베들의 시대>를 쓴 김학준 작가는 “인터넷 시대가 열리고 딴지일보처럼 큰 규모의 게시판이 생기면서 한국형 밈(meme)의 원초적인 씨앗이 탄생했다”고 설명했다. ‘슬픈 개구리 페페’처럼 그림에 자막을 다는 미국 밈과 다르게 한국은 실사를 합성·변형시키는 것이 기본적인 형식이 됐다. 인터넷 발달 초기 당시 여당 정치인 이회창을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 포스터에 합성하는 식으로 웃음을 유발하는 것이 유행했다. ‘일간베스트 저장소’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과 코알라를 합성한 ‘노알라’도 같은 맥락이다. 이후 2010년을 전후로 패륜성 유머들이 등장했다. 김 작가는 “나치 독일에서의 혐오표현은 ‘유대인들을 죽여야 우리 민족이 산다’는 식의 비장한 투였지만 21세기 한국 온라인 커뮤니티 온라인의 혐오표현은 농담이라는 맥락에서 나온다”며 “혐오표현을 지적하면 ‘웃자고 한 말에 죽자고 달려드는 진지충, 선비’라는 대응이 만연해졌다”고 말했다.

  박아란 교수도 2010년 이후 혐오표현 문제가 불거졌다고 분석했다. 박 교수는 “2010년도 들어 다문화 가정과 해외 노동자 유입이 늘어나면서 다른 인종이나 민족에 대한 혐오가 댓글에서 나타나기 시작했다”며 “2016년 강남역 살인사건을 계기로 성별 혐오가, 최근 코로나 사태로는 중국인, 특정 종교 혐오가 확산됐다”고 말했다.

 

  까다로운 혐오표현 규제

  혐오표현을 규제해야 한다는 인식은 있지만, 실제 규제를 도입하기는 까다롭다. 개념 정의가 어렵고 역사적·사회적 맥락이 국가마다 달라 일괄적으로 반영할 수 없으며 처벌 대상 규정, 법규 적용도 애매하기 때문이다. 기술 발달로 혐오표현 확산 속도가 빠르다는 것 역시 난점이다.

  현재 국내에서는 모욕죄나 명예훼손죄를 통해 혐오표현을 처벌할 수 있다.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허위사실 적시 명예훼손죄와 모욕죄 양형기준에 혐오 또는 증오감에서 범행을 저지른 경우를 특별 양형 인자로 포함하고 있다. 그러나 피해자를 특정하기 어려운 혐오표현 처벌을 규정하는 법은 마련되지 않았다. 박아란 교수는 “특정 인종이나 민족에 속한 개인이나 집단에 대한 혐오표현은 명예훼손죄나 모욕죄로 처벌이 가능하지만 특정 인종·민족 전체에 대한 혐오표현은 현행법상 처벌이 어렵다”고 말했다.

  법적 공백을 메꾸기 위해 형사 처벌 조항을 신설하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위험이 있다. 헌법 21조 1항은 “모든 국민은 언론·출판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를 가진다”고 규정하지만 4항에서는 “언론·출판은 타인의 명예나 권리 또는 공중도덕이나 사회윤리를 침해하여서는 아니된다. 언론·출판이 타인의 명예나 권리를 침해한 때에는 피해자는 이에 대한 피해의 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고 표현의 자유 한계를 규정했다. 박 교수는 “표현의 자유는 절대적인 자유가 아님을 인지할 필요가 있다”며 “선을 넘는 표현을 사용할 때 제재가 들어올 수 있음을 각오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가는 헌법이 보장하는 권리가 타인에 의해 침해됐을 때 입법을 통해 그 기본권을 보호해야 할 의무도 있다. 보호입법은 주로 형사입법의 형태로 나타나는데, 혐오표현이 인격권이나 평등권을 침해했을 때 역시 이 법리가 혐오표현 처벌법의 근거로 작용할 수 있다.

  그러나 기준이 모호한 혐오표현에 대한 형사입법이 이뤄질 때는 명확성의 원칙을 위배할 위험이 있다. 이준일 교수는 혐오표현 규제 방법으로 △형사입법 △불법행위 손해배상 등을 통한 민사적 규제 △행정기관의 행정 처분 △자율적 분쟁 해결 방식을 제시했다. 민사적 규제는 혐오표현으로 손해를 발생했을 때 가해자에게 민사상 불법행위 손해배상책임을 지우는 것이다. 행정 처분은 법원을 통한 권리구제가 많은 시간이 소요되므로 신속한 권리구제를 위해 행정기관이 개입하는 방식이다. 혐오표현에 대한 시정 명령 부여와 시정 명령 불이행 시 과태료 부과 등의 방법을 이용한다. 자율적 해결 방식은 차별금지법을 근거로 이뤄진다. 국가나 국가인권기구와 같은 제3기관은 중재자 역할을 하고 가해자와 피해자 당사자끼리 문제 해결을 하도록 한다. 강제성은 없으며 당사자가 받아들일 수 있도록 기관과 전문가가 조정안을 제시, 권고해 자율적으로 중재에 이를 수 있게 하는 방법이다. 이 교수는 “차별 시정을 위해 권고할 수 있는 내용으로는 사과, 재발 방지 약속, 피해가 발생한 경우 손해배상 등이 있을 수 있다”며 “혐오표현에 대한 피해의 범위, 정도, 악의성 여부에 따라 4가지 방법을 통해 달리 규율하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라고 전했다.

  혐오표현의 책임을 단순히 개인에게 지우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시각도 있다. 플랫폼 서비스제공자가 해결해야 할 영역도 있다는 것이다. 김학준 작가는 “인간은 집단적인 열광 상태에 들어가면 본인이 생각한 것보다 훨씬 말을 많이 하는 경향이 있다”며 “포털 댓글의 경우, 글을 쓰는 이유는 사람들이 보고 반응해주기 때문인데 많은 글이 동시에 올라오는 상황에서 결국 자극적으로 격화되는 것은 구조상 당연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사람들에게 도덕 교육을 하는 것보다는 문제가 생겼을 때 디시인사이드 등 서비스제공자에 벌금 등 책임을 지우고 혐오표현 문제를 방지하기 위한 기술적인 토대가 마련하는 것이 옳을 것”이라고 전했다.

 

박지후 기자 fuj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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