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 강연

유학 중 사회생물학의 길 찾아

“도전 속 거듭난 피카소처럼 되길

 

지난달 29일 문과대 명사 초청 특강에서 최재천 교수가 사회생물학자의 길을 소개하고 있다.
지난달 29일 문과대 명사 초청 특강에서 최재천 교수가 사회생물학자의 길을 소개하고 있다.

 

  고려대 인문융합연구원 디지털인문센터(센터장=송상헌 교수)가 주최한 문과대 명사 초청 특강 마지막 강연이 지난달 29일 고려대 대강당 아주홀에서 열렸다. ‘아름다운 방황-아인슈타인과 피카소’라는 주제로 강단에 선 최재천(이화여대 에코과학부) 석좌교수는 끊임없이 도전할 것을 강조했다. 

 

  연구 계기 된 <모닥불과 개미>

  어릴 적 최재천 교수는 자연에서 노는 것을 좋아했다. 어머니가 놀지 못하게 한 어느 날, 그는 할 수 없이 백과사전을 집어 들었다. “어렸을 땐 참 하루가 길었어요. 아무리 놀아도 해가 안 졌죠. 마루 구석에 있던 백과사전을 읽었는데 생각보다 재미있더라고요.” 백과사전을 읽는 아들의 모습에 어머니는 적극적으로 책을 사오셨다. 최 교수는 인문학에 관심이 많았으나 주변의 조언에 따라 서울대 동물학과에 진학해 큰 흥미 없이 대학을 다녔다. 그러던 중 조지 에드먼즈(George F Edmunds, 유타대) 교수에게 유학을 권유받고 진학한 펜실베이니아 주립대에서 사회생물학을 처음 접했다. “수업 첫 시간, 교수님께서 칠판에 ‘Sociobiology(사회생물학)’를 휘갈겨 쓰시곤 사회생물학이란 일개미가 왜 자기 목숨까지 던지며 희생하는지를 체계적으로 연구하는 학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릴 적 어머니가 선물한 노벨상문학전집에서 읽은 솔제니친의 <모닥불과 개미>가 떠올랐다. 모닥불에 타는 통나무를 버리지 못하고 불길 속에 뛰어드는 개미들에 대한 묘사가 기억에 인상 깊게 남아 있었다. “수업을 몇 번 들은 후 평생 이 공부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주저하지 말고 도전해야”

  에드워드 윌슨(Edward O Wilson, 하버드대) 교수 밑에서 공부하며 민벌레 분야의 전문가가 된 최 교수는 한국에 돌아와 서울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당시 국내 연구자 중 동물행동학이나 생태학을 다루는 사람은 거의 없었기에, 최 교수는 본인의 연구 분야를 포기하고 학생들을 돕기로 결심했다. 코끼리, 기린을 연구하고 싶다던 제자들을 도와 다양한 동물들에 대한 논문을 쓰기 시작했다. “국제 학회에 가면 예전부터 알던 동료 학자들이 저를 동물원장이라 부르곤 했습니다. ‘얼마 전에 민물고기 논문 썼더라’, ‘조랑말 논문도 썼던데’ 하는 이야기를 들으니 괜히 학회도 가기 싫어지고, 제자들을 원망하는 마음도 생기더라고요.”

  분야를 막론한 연구는 결실을 이뤘다. 최재천 교수는 2010년 세계적인 과학 출판사 엘스비어로부터 동물행동학 백과사전 편찬에 편집진으로 참여해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디지털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기 위해 백과사전 편찬이 한창 활발히 이뤄지던 때였다. 최 교수는 기꺼이 제안을 받아들였다. 2016년엔 개정판의 총괄 편집장을 맡아달라는 연락을 받았다. 17명의 편집진 중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사람은 최 교수뿐이었다. 2016년부터 2019년까지 최 교수는 600명에 이르는 동물행동학 분야 연구자들과 함께 3000쪽 가량의 사전을 집필했다. “표지에 제 이름이 새겨진 사전을 받아들고 연구실에서 혼자 울었습니다. 제자들이 아니었으면 절대 이런 일을 할 수 없었어요.”

  최재천 교수는 미국의 극작가 아서 밀러가 쓴 책 <아인슈타인과 피카소>를 소개하며 도전하는 자세를 가지라고 조언했다. 밀러는 21세기를 대표하는 두 천재로 꼽히는 아인슈타인과 피카소를 각각 다르게 평가했다. 밀러에 의하면 아인슈타인은 타고난 천재지만, 피카소는 수많은 습작 끝에 거듭난 예술가다. “아인슈타인 같은 사람은 100년에 1명 나타날까 말까 한 천재예요. 우린 피카소처럼 살면 됩니다. 대학에 다니는 동안 주저하지 말고 주어진 일들에 도전해보세요. 전 지금 하고 싶은 일을 하며 누구보다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저처럼 행복한 사람이 되시길 바랍니다.” 

  강연을 들은 최예지(역사교육과 17학번) 교우는 “졸업생이지만 최재천 교수님을 좋아해 흥미를 갖고 참석했다”며 “교수님의 개인적인 삶을 들어볼 수 있어 즐거웠다”고 말했다. 민수홍(미디어17) 씨는 “대학생들에게 희망을 주는 메시지가 많아 좋았다”고 전했다.

 

글 | 나윤서 기자 nays@

사진 | 하동근 기자 hdngg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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