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사회적으로 정신건강 취약”

자조모임·멘토링 긍정적 역할

정서적 지원 강화 필요 

 

청년마음건강지원사업에 대한 자립준비청년 의견
청년마음건강지원사업에 대한 자립준비청년 의견

 

  자립은 누구에게나 어렵지만 주변에 기댈 이가 없는 경우엔 더욱 어렵다. 자립준비청년은 만 18세가 돼 시설이나 가정 보호에서 벗어나 홀로서기를 준비해야 하는 청년을 가리킨다. 시설퇴소아동, 보호종료아동으로 불리기도 했으나 청년을 아동으로 칭하는 모순과 의미의 수동성이 지적되며 자립준비청년이라는 이름이 쓰이게 됐다. 

  자립준비청년 다수가 보호종료 후 심리·경제적 어려움을 호소한다. 특히 최근 자립준비청년의 심리·정서적 지원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며 정신건강을 보살필 수 있는 지원체계를 마련하기 위한 노력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자립준비청년들은 멘토링과 *자조모임에 대해 대체로 긍정적이었지만 시설과 자립지원전담기관의 지원 연계, 보건복지부에서 진행한 청년마음건강지원사업에 대해선 아쉬움을 표했다.

 

  유년기엔 학대·방임, 퇴소 후엔 고립감

  학대, 방임, 부모 사망 등을 이유로 가정 외 보호가 필요한 아동은 아동복지법 제3조에 의해 보호대상아동으로 분류돼 가정위탁이나 공동생활가정, 아동양육시설에 맡겨진다. 가정위탁은 혈연·비혈연 관계의 위탁부모가 아동을 맡아 기르는 가정형 보호 형태다. 공동생활가정은 7~8명의 아동이 함께 주택에 생활하는 형태의 시설, 아동양육시설은 흔히 보육원으로 통칭되는 대형 시설이다.

  보호대상아동의 성장 환경은 이들의 정신건강을 취약하게 만들기 쉽고, 이는 삶에 장기적으로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2022년 보호대상아동 현황보고’에 따르면 보호조치된 아동 2289명 중 1103명의 발생 원인이 학대였다. 학대로 발생한 보호대상아동의 수는 2009년부터 꾸준히 1000명대를 기록하며 그 비율이 최근엔 절반가량을 차지한다. 서울특별시 아동양육시설 꿈나무마을 파란꿈터의 자립지원전담요원 A씨는 “파란꿈터에서 생활하는 아동의 21.8%가 가정에서 학대·방임을 겪었으며 전체 아동의 절반가량이 우울과 불안을 호소한다”고 전했다. 한국사회보장정보원 김지선 부연구위원은 “보호대상아동은 어렸을 때부터 양육자와 건강한 애착 관계를 형성하지 못한 경우가 많다”며 “누적된 심리·정서적 어려움이 제때 해소되지 않으면 성인이 돼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퇴소 전 특별한 정서적 어려움을 겪지 않더라도 보호 종료 후 고립감에 빠지기 쉽다. 한규만(안암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자립준비청년은 심리·사회적으로 정신건강 문제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며 “우리나라처럼 대학·직장·결혼·양육까지 부모가 장기간 자녀를 책임지는 사회에서 상대적으로 사회적 지지가 적은 자립준비청년은 박탈감을 갖기 쉽고, 심리적 어려움에 대한 완충 효과를 제공할 재정적 자원도 충분치 않아 무망(無望)감을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자립준비청년들은 퇴소하자마자 기댈 수 있는 주변인의 부족을 실감한다. 전 자립준비청년 활동가 백윤하(남·26) 씨는 “대부분의 자립준비청년이 시설에서 오래 지내다 퇴소하기 때문에 미리 도움받을 수 있는 곳을 알아보고 인적 관계망을 확장하지 않으면 시설에서 나온 직후 힘들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주선린(남·29) 씨는 “시설을 나오고 큰 교통사고를 겪은 적이 있었는데, 중환자실에서 일반병실로 옮길 때 보호자의 동의가 필요해 곤란했다”고 전했다. 

  보건복지부가 보호종료아동 310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20년 보호종료아동 자립실태 및 욕구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50%가 극단적 선택을 고려해본 적 있으며, 그 원인은 경제적 문제(33.4%), 가정생활 문제(19.5%), 정신과적 문제(11.2%) 순이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서 발표한 ‘2022년 청년 삶 실태조사’에서 최근 1년간 극단적 선택을 고민했다고 응답한 청년이 평균 2.4%였던 것에 비해 높은 수치다. 자살을 고려한 자립준비청년의 경우 이에 대해 특별히 대처하지 않았다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37.4%). 한규만 교수는 “노력해도 자신의 힘으로 상황이 쉽게 변하지 않는 것을 목격하면 학습된 무기력감으로 노력 자체를 포기하게 될 수 있다”고 이야기했다.

‘2022년 보호대상아동 현황보고’에 따르면 보호조치된 아동 2289명 중 1103명의 발생 원인이 학대였다.
‘2022년 보호대상아동 현황보고’에 따르면 보호조치된 아동 2289명 중 1103명의 발생 원인이 학대였다.

 

  경제지원 확대 및 법률 체계화 이뤄져

  자립준비청년이 시설 퇴소 후 어려움을 겪는 주된 이유가 경제적 어려움인 만큼, 최근 몇 년간 자립준비청년 대상 경제적 지원 확대와 법률상 지원 근거 마련을 위한 노력이 빠르게 이뤄졌다. 2021년 7월 발표된 보건복지부의 ‘보호종료아동 지원강화 방안’은 보호대상아동에 대한 국가책임을 강화하는 방침을 제시했다. 2019년에 신설된 월 30만원의 자립수당은 보호종료 후 2년까지만 지급되다 2021년부터는 5년까지로 확대됐다. 보호대상아동일 때부터 아동이나 후원자가 매달 일정 금액을 저축하면 정부와 지자체가 최대 월 5만원을 통장에 입금하는 ‘디딤씨앗통장’ 지원도 월 최대 10만원 지원으로 상향됐다. 

  2021년 12월 개정된 아동복지법은 보호대상아동의 보호기간 연장과 자립지원전담기관의 설치 및 운영 근거를 명시하고 있다. 아동복지법 제16조의3에 따라 보호대상아동이 보호조치 연장 의사가 있을 경우 만 24세까지 보호를 연장할 수 있게 됐고, 필요한 경우엔 연장 기간을 더 늘릴 수 있다. 아동복지법 제39조의2에 따라 일정 자격을 갖춘 사회복지사나 정신건강전문요원 등이 자립지원 대상자에 대한 조사·상담·사례관리 업무를 하게 됐다. 자립준비청년 활동가 박강빈(남·25) 씨는 “법이 개정되며 보호연장 결정에 청년들의 의견이 반영될 수 있는 근거가 생겨 다행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2022년 광주광역시에서 벌어진 연이은 자립준비청년 자살 사건으로 다시금 체계 개선이 촉구됐고, 같은 해 11월 보건복지부에서 ‘자립준비청년 지원 보완대책’을 발표했다. 매달 30만원씩 지급하던 자립수당을 지난해부터 40만원으로 인상했고, 대부분 지자체에서 1000만원에 미치지 못하던 자립정착금에 관해선 최소 1000만원 지급을 권고했다. 지금은 모든 지자체에서 기본 1000만원의 정착금을 지원하고 있으며, 서울 등 일부 지역은 1500만원을 지급 중이다. 지난해엔 아동복지법 제38조가 개정되며 보호 조기종료에 따른 퇴소자까지 자립지원 대상자로 포함됐다. 김지선 연구원은 “원가정 부모가 아동을 다시 데려가는 경우, 또는 **통고 제도에 따라 시설을 떠나 원가정으로 돌아가거나 청소년 쉼터에 가게 되는 경우 보호가 조기종료되는데, 이러한 아동들은 그동안 법률상 사각지대에 처해 있었다”고 설명했다.

 

  다른 청년과의 만남으로 사회적 지지 얻어

  전문가들에 의해 안정적 자립에 정신건강이 미치는 중요성이 지적되면서, 직접적인 재원 확대에 더불어 사회적 지지 체계 강화를 위한 정책들도 생겼다. 보건복지부는 자립지원전담기관의 인력 정원을 2022년 전국 120명에서 지난해 180명까지 확대했다. 시·도를 기준으로 전국 17곳에 설치된 자립지원전담기관은 자립준비청년 대상 △보호종료 후 5년까지 기본 사후관리 및 자립지원 통합서비스 지원 △취업·금융 교육 프로그램 제공 △멘토링과 자조모임 활성화 등을 맡고 있다. 황정아 아동권리보장원 자립지원부장은 “올해는 전담인력이 230명까지 확대될 예정”이라며 “자립준비청년 개별에 필요한 지원을 원활히 파악할 것”이라 전했다.

  자립준비청년들은 긍정적 영향을 미친 정책으로 자립지원전담기관 주도의 바람개비서포터즈를 꼽는다. 2011년 시작된 바람개비서포터즈는 교육을 거쳐 서포터즈로 위촉된 자립준비청년이 시설을 방문해 보호대상아동에게 선배로서 자립에 관한 조언을 전하는 멘토링 프로그램이다. 2022년 서포터즈로 위촉된 김건(남·26) 씨는 “시설에 방문해 보호대상아동을 만나면 개인적 경험을 중심으로 저축 습관을 강조한다”며 “고등학생쯤 되면 다들 자립에 대한 고민을 시작하다 보니 진지하게 이야기를 들어주는 친구들이 많다”고 전했다.

  바람개비서포터즈를 통해 만난 청년들은 지속적으로 자조모임을 가지기도 한다. 서울자립지원전담기관 자립지원 2팀 길현주 주임은 “후배들을 돕고자 모인 청년들이 서로 관계를 맺고 이후에도 연락을 이어가는 점이 긍정적”이라 전했다. 2018년부터 바람개비서포터즈로 활동한 박강빈 씨는 “비슷한 유년기를 겪은 선후배들과 만나면 마음이 편해진다”며 “서로를 있는 그대로 보여줄 수 있는 안전한 대화 환경이 마련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전주기적 정신건강 관리는 아직 부족

  기관 간 정신건강 지원 관련 업무 연계와 보건복지부에서 제공하는 상담 프로그램은 아쉽다는 지적이 나온다. 황정아 아동권리보장원 자립지원부장은 “아동보호서비스 업무매뉴얼에 따라 시·군·구청에 소속된 아동보호전담요원이 시설 배치 과정에서 심리·정서 검사를 진행하고 필요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확인하고 있다”고 말했다. 시설의 자립지원전담요원, 자립지원전담기관의 전담인력, 시·군·구청의 아동보호전담요원은 협력해 보호대상아동의 자립까지 책임진다. 그러나 전주기적 세심한 관리는 여전히 쉽지 않다. 이재유 서울자립지원전담기관 자립지원 1팀장은 “분기마다 시·구청에서 전담기관에 보호가 종료된 청년들의 명단을 보내주는데 인적사항과 특이사항만 간단히 기재돼 있고 자세한 내용은 직접 청년들에게 연락하며 파악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재유 팀장은 “아동보호전담요원은 자립지원 업무만 담당하는 것이 아니기에 자립지원전담요원과 자립지원전담인력 간 협력이 중요하다”고도 덧붙였다.

  하지만 자립지원전담요원의 별도 배치는 대부분 대형 아동양육시설에만 해당된다. 인력이 부족한 공동생활가정은 아동들을 보살피는 사회복지사가 보통 자립지원 업무까지 맡는다. 가정위탁의 경우 지자체에 설치된 가정위탁센터에 자립지원전담요원이 존재하나 자연히 여러 가정의 상황을 살피기 어렵다. 김지선 연구원은 “시설에 비해 자립지원에 관한 정보가 부족할 수밖에 없는 가정위탁 특성상 본인이 자립지원대상이라는 걸 모르는 경우도 많다”며 “특히 조부모가 위탁부모일 경우 성인이 된 청년은 스스로를 부양자로만 인식하기 쉽다”고 전했다.

  자립지원전담요원의 배치와 마찬가지로 심리상담도 보호 유형에 따라 한계가 있다. 김건 씨는 “양육시설에서 매달 보육선생님과 2회, 원장선생님과 1회 상담을 진행했지만 시설의 현실적인 재정 사정을 알기에 선생님들께 고민이나 요구를 이야기하기 어려웠다”고 설명했다. 공동생활가정에서 지냈던 조현수(남·26) 씨는 “별도의 상담 프로그램은 없었다”고 전했다.

  청년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심리상담을 제공하고자 시작된 청년마음건강지원사업은 19~39세 대상 청년에게 10회기 상담을 제공한다. 1회에 6000~7000원이며, 사업의 우선 지원대상인 자립준비청년과 보호연장아동은 전액 무료다. 그러나 2022년부터 지난해 6월까지 사업에 신청한 자립준비청년 및 보호연장아동 422명 중 222명이 기각·반려된 사실이 드러났다. 이에 대해 권민정 보건복지부 사회서비스사업과장은 “자립준비청년으로 신청을 했지만 실제 대상자가 아니어서 서류상 탈락한 경우도 있었고, 지역별로 예산을 배분하는 과정에서 지역에 따라 예산이 소진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수원에 사는 주선린 씨는 2022년 청년마음건강지원사업에 신청했지만 주민센터에서 거절됐다는 연락을 받았다. 주 씨는 “당시 큰 교통사고를 비롯해 여러 문제를 겪으며 정신적으로 힘들어서 심리상담을 받고 싶었는데 예산이 부족하다더라”며 “자립준비청년 신청자가 많지도 않았는데 예산이 왜 부족했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10회기로 그치는 것이 아쉽다는 의견도 있었다. 아름다운재단의 열여덟어른 캠페이너 신선(남·31) 씨는 “특정 시기에 개입해 일정 횟수 상담을 진행한다고 해서 심리·정서적인 어려움이 해결되긴 쉽지 않다”며 “시설에서부터 사후관리까지 일관된 상담과 멘토링 프로그램이 더 많아져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청년마음건강지원사업 개선을 비롯해 올해도 자립준비청년의 안정적 자립을 돕기 위한 정책들이 계획돼 있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11월 ‘자립준비청년 지원 보완대책’ 발표 1주년을 맞아 자립준비청년 간담회를 개최했다. 간담회에선 자립지원전담기관의 전담인력 확충과 자립수당 추가인상, 사례관리 지원대상 수 확대 등이 논의됐다. 지난 12월부터는 자립준비청년의 건강보험 본인부담률이 하향돼 요양급여비용 총액의 14%만 지급할 수 있게 됐다. 한규만 교수는 “청년들이 정신과 진료의 문턱을 높게 느끼는 이유 중 하나는 진료비 문제”라며 “의료비 부담이 낮아지면 정신건강 서비스 이용에 도움이 될 것”이라 말했다. 한편 김지선 연구원은 “청년들은 낙인에 대한 두려움도 있다”며 “각종 제도 모두 공급자 입장에서 쉬운 방법으로 확대되기보다 당사자에 다가가는 방식을 세심하게 고려해야 한다”고 전했다. 

 

  *자조모임: 비슷한 질병과 심리사회적 문제를 공유하는 사람들의 모임.

  **통고 제도: 가정이나 학교 등에서 해결하기 어려운 청소년비행을 수사기관의 관여 없이 곧바로 법원에 의뢰할 수 있는 제도 

 

글|나윤서 기자 nays@

인포그래픽|배준성 기자 jun14ba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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