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케이 따라잡을 증시 부양책 발표

기형적 지배구조 개선될지 주목

골든타임 놓치면 미래세대도 부담

 

한국거래소 서울사무소 시황판. 이날 코스피는 2748.56으로 마감했다.
한국거래소 서울사무소 시황판. 이날 코스피는 2748.56으로 마감했다.

 

  코스피가 ‘박스’에 갇혔다. 2007년 첫 2000선을 넘은 코스피는 지난해 2655.28로 마감했다. 16년간 약 1.3배 상승에 그친 것이다. 같은 기간 약 2.5배 상승한 국내총생산과 비교할 때 우리 증시의 저평가가 확연하다. 증시 저평가를 해결하기 위해 소액주주의 몫을 늘리는 대책이 쏟아지고 있다. 

 

  한 자릿수 지분으로 기업 지배

  정부가 풀어야 할 증시 저평가의 근본 원인으로 기형적 지배구조가 꼽힌다. 시장에서 이뤄지는 의사결정을 대주주 입맛에 맞추다 보니 기업의 가치를 깎는 비정상적 행태가 반복된다는 지적이다. 분할과 합병 등 갖은 방법으로 한 자릿수에 불과한 지분을 가진 대주주가 기업을 통제하고 있다.

  대주주가 지분을 보유한 작은 회사에 일감을 몰아주는 사례가 대표적이다. 2001년 현대자동차그룹의 정몽구 명예회장과 정의선 회장이 25억원을 들여 창업한 현대글로비스는 현대차와 현대제철 등 그룹 주요 계열사와 대규모 계약을 거듭하며 지난해 기준 매출액 25조6832억원의 대기업으로 성장했다. 20일 공개된 ‘현대글로비스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회사가 지난해 현대차·기아와의 거래에서 벌어들인 매출은 19조6424억원으로 *내부거래 비중은 76.5%에 달한다. 이수준(세종대 경영전문대학원) 교수는 “대주주 입장에선 주가가 올라야 할 이유와 기업에서 배당금을 많이 받을 필요가 없다”며 “회장, 대표, 이사 등의 직책으로 경영에도 참여하는 한국의 대주주는 얼마든 부를 빼돌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기업의 유망 사업 부서를 물적분할해 모기업과 자회사를 모두 증시에 상장하는 사례도 있다. LG화학은 2022년 자사의 배터리 사업부문을 LG에너지솔루션으로 분사해 상장시켰다. LG에너지솔루션은 18일 기준 기업가치가 95조3550억원으로 모기업인 LG화학의 31조606억원을 아득히 뛰어넘는 국내 2위 기업으로 성장했다. 강성광 서울보증보험 역삼하나대리점 대표는 “LG화학이 LG에너지솔루션을 떼어내지 않았다면 100조원 이상의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음을 시사한다”며 “LG화학이 제 살을 깎아 먹는 결정을 한 이유는 대주주 일가의 이득을 위해서였다”고 말했다. 배터리사업에 막대한 투자금이 필요했고, LG화학의 이름으로 다른 사람의 돈을 끌어오려면 투자받은 만큼 대주주의 지분율을 낮추거나 대주주가 필요한 투자금의 일부를 내야 했기에 이런 선택을 했다는 것이다.

  이종태(서울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자회사를 증시에 쪼개기 상장하면 모기업의 가치는 그만큼 훼손된다”며 “제한을 두지 않으면 새로운 주식이 시장에 계속 공급될 것이고 희소성이 떨어지는 만큼 주식 가격이 하락할 것”이라고 말했다. 자본시장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2010년부터 2021년까지 모기업과 자회사가 동시 상장한 국내 157개사에선 모기업과 자회사의 가치가 모두 하락했다.

 

17년째 이뤄지지 않는 박스피 탈출
17년째 이뤄지지 않는 박스피 탈출

 

  대주주 이익에 소액주주 피해 심각

  대주주로 기업의 부가 유출되며 소액주주는 피해를 보고 있다. 정찬식(동아대 경영학과) 교수는 “대주주가 작은 지분율로 기업을 휘두르니 다른 주주는 의사결정에서 배제된다”며 “이로 인해 소액주주의 재산가치가 심각하게 침해되는 현상이 지속됐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기형적 지배구조에서 발생하는 소액주주의 피해 회복과 권리 확대에 집중하고 있다.

  정부는 2022년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시행령을 개정해 상장기업이 물적분할 할 경우 이에 반대하는 주주의 주식을 의무적으로 사들여 반대 주주의 피해가 없도록 했다. 대주주의 이익을 위해 소액주주가 희생되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김민재(공과대 신소재20) 씨는 “소액주주의 투자금은 기업의 전체 지분에선 작지만 개인에겐 매우 큰 돈”이라며 “대주주가 자회사를 분리하겠다고 결정했을 때 발생할 피해를 회복해 준다니 긍정적”이라 반겼다. 정책 효과가 제한적이란 목소리도 있다. 이승준(공과대 기계22) 씨는 “자금이 적다 보니 높은 수익률을 원해 다소 위험하더라도 신사업에 적극 투자하는 대기업의 주식을 주로 산다”며 “대기업들이 신사업이 잘 되면 다른 회사로 분리해 버리는데 그 피해만 보전해 주는 게 합리적인지 의문”이라 밝혔다. 강성광 대표는 “투자의 목적은 원금 보장이 아니라 수익을 내는 것인데 반대 주주에게 돈을 쥐여줘 떠나게 하는 것이 근본 해결책은 아니다”고 말했다.

  금융당국은 기업이 더 많은 자사주를 사들여 소각하도록 유도할 계획이다. 소각으로 주식 수가 줄어들면 주식은 희소해지고 주가는 상승한다. 1월 30일 발표된 금융위원회의 ‘상장법인의 자기주식(자사주) 제도 개선 방안’에 따르면 정부는 상반기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및 ‘기업공시작성기준’을 개정해 기업의 자사주 매입 및 소각을 활성화할 방침이다. 연초부터 지난 19일까지 발표된 국내 상장사의 자사주 소각 계획은 총 4조4197억원어치로 지난해 연간 발표된 자사주 소각 계획 규모의 90.6%에 달한다. 단적으로 기아는 18일 ‘기아 제80기 정기주주총회’에서 올해 5000억원의 자사주를 사들여 절반을 우선 소각하고, 연말 실적 검토 후 나머지 절반도 소각할 계획이라 밝혔다. 자사주 소각 계획 발표 후 기아의 주가는 연일 역대 최고가를 갱신해 지난 22일 기준 현대자동차의 시가총액을 뛰어넘었다.

 

  소액주주 권리 확대, 실보다 득이 커

  기업의 반론도 만만치 않다. 지나치게 소액주주의 입장을 고려하면 부작용이 클 거란 우려다. 기업들이 그간 자사주를 사들이고 소각하지 못했던 것은 경영권 방어의 최후수단이었기 때문이다. 상법에선 대주주의 전횡을 막기 위해 감사를 선출할 때 소유 지분 중 최대 3%만 의결권을 인정한다. 이를 악용해 2003년 헤지펀드 소버린이 15%의 지분을 5개 펀드에서 3%씩 쪼개 매입한 후 SK의 경영권을 위협했다. 경영권이 흔들리자 주가는 급등했고, 법적 공방 끝에 소버린은 1조원대 단기 차익을 거두고 한국 시장을 빠져나갔다. 이수준 교수는 “SK는 이후 자사주를 꾸준히 사들여 소각하지 않고 위기가 올 때 우호 세력에게 팔아 경영권을 방어할 계획을 세웠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변화로 인한 득이 실보다 크다는 입장이다. 정찬식 교수는 “2003년 SK의 주가 상승으로 피해를 본 것은 대주주와 경영진이었고 주가 상승의 혜택은 소액주주들에게 돌아갔다”며 “대주주가 경영권을 지키는 것이 소액주주에게 이득이 되는 일이라 말할 수 없다”고 짚었다. 

  기업들이 편법 승계를 위해 자사주를 악용해 온 점도 소액주주 권리 증진에 힘이 실리는 이유다. 금융위원회는 1월 30일 발표한 ‘상장법인의 자기주식(자사주) 제도 개선 방안’에서 자사주 마법을 원천적으로 금지하겠다고 밝혔다. 자사주 마법이란 기존 회사를 지주회사와 사업회사로 분리하는 과정에서 의결권이 없는 자사주가 지주사로 넘어가면 의결권이 생기는 것이다. 김민기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자사주 마법이 있다 보니 순수한 주주환원이 아닌 지배주주의 지배력 강화를 위한 자사주 매입이 남용됐다”며 “이번 정책으로 본래 목적에 위배되는 자사주 매입이 줄어들 수 있다”고 평가했다.

 

  증시 저평가를 타개할 골든타임을 놓치면 그에 따른 피해는 청년 세대의 몫이 될 가능성이 크다. 강성광 대표는 “국가와 기업은 성장 중인데 주가가 제자리 걸음이면 청년 투자자들은 단기 수익을 좇아 급등주·테마주로 내몰릴 것”이라 전망했다. 임충혁(문과대 한국사20) 씨는 “미국의 나스닥과 일본의 닛케이지수가 사상 최고가를 경신한다는 소식을 들을 때면 혹한다”며 “우리 증시는 십수 년째 2000선을 벗어나지 못하니 관심이 떨어진다”고 말했다. 김지훈(생명대 생명과학24) 씨는 “선진국처럼 장기적으론 주가가 우상향한다는 믿음이 있을 때 주식 투자를 생각해 보려 한다”고 전했다. 강 대표는 “증시에 투자하지 않고는 청년 세대가 안정적으로 자산을 형성할 방법이 마땅히 없다”며 “청년들에게 ‘부동산이나 가상화폐를 알아보라’고 말할 수도 없지 않냐”고 증시 저평가 해소 필요성을 강조했다.

 

  *내부거래: 공정거래위원회가 지정한 대기업집단에 속한 계열사들 간에 발생하는 거래.

 

글 | 이경준 기자 aigoya@

사진 | 하동근 기자 hdngg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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